[양재찬의 프리즘] 공매도 · 전기료 · 종이컵… 국정 신뢰 흔든다
지속가능성 없는 졸속정책 많아
총선용 카드 비판 속 공매도 금지
일회용품 사용 금지 갑자기 철회
‘정치 요금’화한 전기료 문제…
합리적 정책 마련해야 할 때
총선거가 몇달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듯 정치권이 바빠졌다. 10월 말부터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은 잇따라 굵직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중에는 국가 미래와 지속 가능성 확보에 대한 성찰 없이 급조하거나 민감한 핵심 이슈를 빠뜨린 맹탕정책이 존재한다. 원칙과 일관성 없이 우왕좌왕하거나 선거에서의 표를 노린 미끼 정책도 있다.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국가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는 시대역행적 대책도 끼어들었다.
일요일인 5일 오후 임시 금융위원회가 열려 증권시장 공매도 금지 조치안을 의결했다. 공매도 금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 세차례 시행됐다. 이번에는 그런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금지해 총선용 선심 카드라는 비판을 받는다.
금융위는 "공매도는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여당이 "김포 다음은 공매도"라며 압박하자 백기를 든 모양새다. 개인투자자 표를 얻어 보려는 정략적 계산이 시장 원칙과 국제적 추세에 어긋나는 정책을 낳았고, 증시는 온탕냉탕을 오가는 혼란을 빚었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지난해 7월 개인에게 불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불법 공매도에 대한 적발과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15개월 동안 허송하고선 언제 제도를 개선하고 시장 질서를 바로잡을 텐가. 공매도 금지가 길어질수록 한국 증시의 신뢰가 약화하고, 한국-미국간 금리격차가 큰 상황에서 외국인자금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
환경부는 시행을 불과 보름 앞둔 친환경 규제에 급제동을 걸었다. 음식점 등의 종이컵 사용 금지는 오는 23일로 1년 계도기간이 끝날 예정이었는데, 7일 이를 철회했다. 종이컵과 비닐봉투 등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를 고려한 사회적 합의였다. 지난해 환경부 여론조사에서도 87.0%가 그 필요성에 동의했다.
환경부는 두달 전만 해도 일회용품 규제를 홍보하기 위한 권역별 설명회를 열었다. 갑자기 소상공인의 부담을 고려한 조치라며 취소하자 그동안 정부 방침에 맞춰 준비해온 사람들은 황당해졌다. 미리 준비한 업자들을 위한 지원 방안도 마련한다니 이중삼중의 재정 낭비이자 사회적 비용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전기요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은 4분기에도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해왔다. 4분기가 시작된 지 한달 넘게 미룬 끝에 가정용과 소상공인용 요금은 동결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주로 쓰는 산업용만 올렸다.
200조원대 부채를 해결하려면 한국전력이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원가와 수요를 기반으로 하는 전기요금 현실화가 절실하다. 전기료 정상화가 늦어질수록 공기업 한전의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민 세금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정치 요금'화한 전기료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요금 결정을 독립기구에 맡기는 식의 조치가 요구된다.
정책은 처음 세울 때 관련 데이터와 예상되는 문제점을 충분히 살피는 등 신중해야 한다. 방향을 잡아 결정했으면 이해관계자와 국민을 설득하면서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정부 정책이 상충하거나 일관성을 잃고 오락가락하면 부작용에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국민의힘 대표가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은 잇따라 발표된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이나 교육부의 교육발전 특구 추진과 배치된다.
보건복지부가 여러 차례 검토 끝에 내놓은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은 관건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수급 개시 시기가 빠진 맹탕 정책이자 국회에 공을 넘기는 무책임의 극치였다. 이는 결국 내년 총선을 의식해 표를 계산하고, 몸을 사리다가 초래한 부실 정책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부처 장관들이 앞다퉈 시장과 산업체를 찾고 정책도 내놓는다. 낡은 이념 논쟁보다는 낫지만, 졸속 오락가락 맹탕 미끼 정책은 혼선을 초래하고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이상한 나라로 치부돼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하거나 국가 이미지를 훼손할 수도 있다.
정당들이 주요 회의 장면의 사진 촬영 배경으로 활용되는 백드롭을 바꾼다고 민생이 거저 나아지지 않는다. 어느 당 무슨 정책이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에 물든 것인지, 먹는 순간 달콤하지만 건강을 해치는 '탕후루 정책'인지는 정당들 스스로 먼저 알 것이다.
다른 정당을 비판하기 이전에 그런 포퓰리즘·탕후루 정책을 삼가는 것이 우선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와 민생은 무한하고 지속가능해야 한다. 진정 국가 미래와 민생을 걱정하는 건강하고 합리적인 정책이어야 국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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