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매도 금지, 법 절차 건너뛰고 결정···정치적 판단 의혹 키워

윤경환 기자 2023. 11. 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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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의 공매도 전격 금지 발표 과정에 대해서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거래소가 뒤늦게 금융위원회에 공매도 금지 요청 문서를 보낸 시각(5일 오후 2시 30분)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정부가 비공개 고위당정협의회를 진행할 때쯤이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공매도 금지 요청 요건을 정리한 내부 규정은 없다"며 "공식 요청을 보내기 전에 금융위와 충분히 협의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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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금지 '졸속 처리' 논란]
금융위, 공문 접수 전 문자 공지
보도자료에도 거래소 언급 없어
거래소 "사전협의 충분히 했다"
"SSBT 서비스 중단, 사실 아냐"
당국, 외국인 이탈 가능성 진화
이복현(오른쪽) 금융감독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금융위원회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그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금융 당국이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한국거래소의 공식 요청이 있기 전 공매도 전면 금지를 정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자본시장법은 증권시장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거나 공정한 가격 형성이 어려울 때 거래소의 요청에 따라 금융위가 공매도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2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위는 이달 5일 오후 2시 30분께 공매도 금지를 요청하는 거래소 공문을 접수했다. 문제는 금융위가 이보다 앞선 5일 낮 12시 46분 출입 기자단에 이날 오후 4시 30분 임시금융위를 개최하고 오후 5시 30분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발표한다는 사실을 문자로 공지했다는 점이다. 거래소의 요청 공문이 도착하기 최소 1시간 44분 전에 당국이 내년 6월 말까지 공매도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셈이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당초 금융위가 공매도 금지에 미온적이었던 상황에서 여당의 거센 압박에 발표를 서두르다 보니 법적 절차를 요식행위로 한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금융 당국의 공매도 전격 금지 발표 과정에 대해서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거래소가 뒤늦게 금융위원회에 공매도 금지 요청 문서를 보낸 시각(5일 오후 2시 30분)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정부가 비공개 고위당정협의회를 진행할 때쯤이었다. 당시 고위당정협에서는 거래소 측 인사나 공식 요청 문서가 따로 없는 상태에서 공매도 전면 금지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여당이 정치적인 판단 아래 공매도 금지를 밀어붙이면서 시장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법의 취지까지 무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굳이 자사는 물론 관공서까지 모두 쉬는 일요일 당일에 공매도 제한 조치를 요청한 사실도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기존에 공매도를 금지한 2008년 10월 1일(금요일), 2011년 8월 10일(수요일), 2020년 3월 17일(화요일)은 모두 요청 시점이 주가가 한창 요동친 평일이었다. 금융위가 공매도 전면 금지의 근거로 삼은 문제가 거래소보다는 금융감독원이 주도한 사안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왔다. 금융위가 집중적으로 거론한 BNP파리바·HSBC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2곳의 560억 원대 불법 공매도 의혹 적발 사건은 지난달 금감원이 거래소와 별도로 단독 발표한 사안이다.

당국이 배포한 공매도 금지 관련 보도 자료에도 ‘거래소’나 ‘요청’이라는 단어는 법률 조항 설명과 실무자 소속 표시 부분 외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브리핑 장소에서도 김주현 금융위원장 옆에 이복현 금감원장만 나란히 서 있었을 뿐 거래소 인사는 보이지 않았다. 거래소는 5일 오후 5시 38분 손병두 이사장이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임원들과 공매도 전면 금지 대응 회의를 주재했다는 내용의 사진 자료만 뿌렸다. 금융위 관계자는 “공매도 금지는 원래 장이 끝난 뒤에 요청한다”며 “거래소의 요청 근거는 보도 자료에 다 담았다”고 설명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공식 요청을 보내기 전 3일 오후부터 금융위와 충분히 협의했다”며 “행정 절차인 공문 처리도 임시 금융위 개최 전에 처리해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와 거래소는 3일 오후 늦게부터 급격히 전면 중단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금융위는 3일 오후 6시쯤 언론의 공매도 전면 금지 추진 보도에 대해 “확정된 바 없다”는 설명 자료를 내놓았다가 6일 이를 공식 블로그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공매도 전면 금지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오자 금융 당국의 행보도 빨라졌다. 금융 당국은 홍콩 등에서 IB들과 만나 공매도 한시적 중지 배경을 설명하고 불법 공매도를 막기 위한 전산 시스템 개선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다만 금융위는 지금도 공매도가 허용되고 있는 시장조성자(MM)와 유동성공급자(LP)를 추가 금지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에는 신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MM의 공매도 규모가 미미하고 LP의 경우 상장지수펀드(ETF)와 연동돼 있어 공매도 금지가 쉽기 않기 때문이다.

당국은 해외 자본 이탈 가능성에 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금융 당국은 글로벌 주식 수탁은행인 스테이트스트리트은행(SSBT)이 한국 주식 전산 대여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과 메릴린치의 한국 시장 대차 서비스 내년도 수익 목표치 하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SSBT에 확인한 결과 공매도 금지 조치 이후에도 대면·비대면 대여 서비스를 지속할 예정”이라며 “전산 정비 차원의 일을 한국 시장 전체에 대한 접근성으로 볼 일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손병두(가운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공매도 전면 금지 대응·준비 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거래소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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