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가 평전 맡긴 이유...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으로 쓰니까
타임지 편집장 등 언론계서 30년
2년 넘게 머스크 따라다니며 취재
“새 시대 연 사람들에게 흥미 가져
머스크 평전 쓰겠다 결심했지만
그의 잔인하고 차가운 면은 불편”
“머스크는 매우 투명한 인물이 되길 열망한다. 또한 자신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낀다. 그는 내가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the good and the bad and the ugly)’을 쓰리라 믿었다.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길 원했으니까.”
월터 아이작슨(71)은 ‘잔인하리만큼 진실되게(brutally honest)’ 쓸 걸 알면서도 일론 머스크가 자신에게 평전 집필을 맡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는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1966년 작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영어 제목. 굳이 이를 인용한 것은 자신이 레오네 감독의 영화처럼 인간의 선악, 복잡하고 추악한 내면까지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글쟁이라는 자신감으로 읽혔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신작 ‘일론 머스크’ 출간을 계기로 아이작슨과 서면 인터뷰를 했다. 스물네 개의 질문을 보냈으나 아이작슨은 일정이 바쁘다며 1번부터 순서대로 열 개만 답하겠다고 에이전시를 통해 알려왔다.
◇“전기는 정확성과 진실성을 지향해야”
한국에서만 70만부 팔린 대표작 ‘스티브 잡스’에서 아이작슨은 막말을 내뱉고, 혼외 관계에서 낳은 딸을 부정하기도 한 잡스의 성격적 결함을 가감 없이 적었다. ‘일론 머스크’ 역시 신랄하기 그지없다. 머스크는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종종 ‘악마’처럼 행동하고, 연인에게 “살이 쪄서 나를 ‘쪽팔리게’ 한다”며 상처 주는 이상 성격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칭송 일색인 국내 전기류와는 확연히 다른 집필 방향. 아이작슨은 “전기의 목표는 항상 정확성(accuracy)과 진실성(truth)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대부분의 인간에겐 강점도 있고, 약점도 있다. 그것들이 성인(聖人)화돼서도, 악마화돼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영웅은 결점으로 주조된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머스크 평전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책이란 영감을 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우리는 머스크처럼 장대한 사명을 갖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사람들을 매우 친절하게 대하려고도 노력해야 한다. 머스크는 항상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진 않는다.” 이 책은 머스크를 2년 넘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밀착 취재한 결과물이다. 집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을 묻자 아이작슨은 “머스크는 주변 사람들에게 차갑고 잔인해질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잡스를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빈치, 202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제니퍼 다우드나 등의 평전을 썼다. 이번에 머스크를 택한 것은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이끄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해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잡스는 우리를 개인 디지털 시대로 이끌었다. 다우드나는 유전자 편집 시대를 열었다. 머스크는 우주여행, 전기 자동차, 실세계 인공지능의 시대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다. 잡스와 머스크 둘 다 사람들이 놀라운 일을 하도록 이끄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머스크는 잡스에 비해 제조업에 관심이 많다.”
관심이 뜨거운 만큼 책 내용이 여러 논란을 낳았다. 머스크가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인 크림반도의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을 일시 차단해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사실상 중단시켰다고 쓴 것이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반발을 산 게 대표적이다. 논란이 커지자 아이작슨은 X(옛 트위터)에 “우크라이나는 스타링크가 크림반도까지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함대에 드론 잠수함 공격을 하려고 머스크에게 크림반도까지 커버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머스크는 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생각해 이를 가능하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책이 나온 후 머스크의 반응은 어떨까? “‘책을 전부 다 읽지는 않아서’라고 농담하곤 한다. 그렇지만 공정하고 정직한 책이라 느낀다고 하더라.”
◇30년 기자 생활… “이야기 전달법 배웠다”
아이작슨은 타임지 편집장, CNN 대표를 지내는 등 언론계에서 30년 가까이 일했다. 초년 기자 때 ‘내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기자 생활을 한 경험이 평전 작가로 활동하는 데 끼친 가장 큰 영향을 묻자 그는 “저널리스트 경력을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법을 배웠다. 내 의견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정교하게 취재한 내용을 가지고 스토리텔러가 되려고 엄청나게 노력한다”고 했다.
취재력을 바탕으로 소설이나 논픽션 등 다른 장르의 책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평전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을까. 아이작슨은 “우리 시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사를 만든 사람들을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평전의 대상을 정할 때 가장 중시하는 인물의 특성은? 짧지만 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상상력과 창의력,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think different)’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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