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맞수' 사우디·이란, 가자지구 휴전 위해 '맞손'
"한때 이란 저격했던 빈살만의 놀라운 일탈"…"사우디 실용주의 입증"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중동에서 '앙숙'으로 통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 앞에서 잠시 반목을 거두고 손을 맞잡았다.
11일(현지시간)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이슬람협력기구(OIC) 특별 정상회의에서 한 목소리로 이스라엘을 강하게 규탄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한 것이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올 초 관계 개선 후 이날 처음으로 대면했다. 이란 정상의 사우디 방문은 10년 만이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1천400여년간 대립해왔다. 특히 2016년 사우디가 유력 시아파 종교 지도자를 반정부 시위·테러 주도 혐의로 처형한 이후 양국은 국교를 단절했다.
그러다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갈등을 접고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상대국 주재 대사관 업무도 재개했다.
양국 관계 재개 발표 후 이란은 라이시 대통령이 사우디로부터 방문을 초청받았다고 밝혔고, 양국 정상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며칠 만에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의 상징인 흑백 사각형 체크무늬 카피예(아랍 남성들의 두건)를 어깨에 걸치고 회의에 참석한 라이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또 국제사회가 가자지구 민간인을 상대로 자행된 인권 침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빈살만 왕세자도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저질러진 범죄의 책임은 점령 당국에 있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렸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 행위를 종식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며 즉각 휴전과 인도적 지원 허용을 촉구했다.
양국 정상은 연설을 마친 후 양자 회담을 위해 본회의장을 떠났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에 대한 사우디의 환대를 두고 한때 이란을 향해 팽창주의를 추구하지 말라고 직접 경고했던 빈살만 왕세자에게는 '놀라운 일탈'이라고 전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2017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사우디에서 전투가 벌어지길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사우디가 아닌 이란에서 전투가 벌어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18년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아야톨리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향해 "확장을 원했던 과거의 히틀러처럼 중동에서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만들려 한다"고 저격하기도 했다.
달라진 양국 관계를 두고 미 아랍·걸프 국가 연구소의 크리스틴 디완 연구원은 사우디식 실용주의가 입증됐다고 진단했다.
디완 연구원은 "사우디는 갈등 확산을 막고, 아마도 하마스와의 최종 단계를 헤쳐가는 데에도 이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일부 지도자들은 정상화에 갇혀있고 다른 지도자들은 더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사우디는 중도적 입장을 유지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사우디는 이번 주말 각각 아랍연맹과 OIC, 두 개의 정상회의를 계획했다가 좀 더 큰 기구인 OIC 정상회의로 합쳤으며, 이는 새로운 단합을 드러낸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회의에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도 참석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이번 회의 참석을 통해 국제 외교무대 복귀를 공고히 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자행한 잔혹 행위로 국제사회에서 기피 인물로 통하다 아랍연맹에서도 퇴출당했던 아사드 대통령은 지난 5월 13년 만에 처음으로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도 만나 양국 관계 정상화에 대해 논의했다.
이란과 이집트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관계를 단절했다가, 2012년 무슬림 형제단의 지도자인 무함마드 무르시가 이집트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관계 정상화를 꾀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이집트의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무르시가 실각하면서 결실을 맺지 못했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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