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스스로 만드는 기쁨
등산하는 사람에게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물으니, 산이 거기 있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그들은 산에 오르기 전 신중히 코스를 선택하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꼼꼼히 체력을 안배하며, 땀 흘리며 오른 길이 힘들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상에 도달했을 때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과 황홀한 경치는 남다른 성취감과 희열을 선사한다. 케이블카로 쉽게 정상에 오른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그 짜릿함을 다시 만끽하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닐까. 골프는 어떤가. 주위에 골프 치는 사람을 보면 필드에 나가기 전 꾸준히 실내 연습장을 찾아 연습을 거듭한다. 신중히 고른 채로 자신에게 맞는 타격감을 익히며, 골프복·골프화·골프 장갑에 이르기까지 사전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인다. 그린에서 완성할 '굿샷'이 주는 짜릿함을 위해 그 모든 준비와 노력은 당연하게 여긴다.
예술 감상도 마찬가지다.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막연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공연을 보기만 하는 관객과 공연 전부터 공연 내용과 관람 상식을 준비한 관객의 만족도는 같을 수 없다. 가끔 만나는 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아느냐, 또는 좋아하냐고 질문하면 대부분 어렵다고 느끼거나 들으면 좋은데 잘은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마도 클래식 음악을 알아보려 노력하지 않았거나, 클래식에 대해 알려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클래식 공연 한 편을 감상하기 위해 공을 치는 사람이 준비하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준비 과정을 거쳐 공연장을 찾으면 좋겠다고. 사전에 공연 내용, 작품의 배경, 작곡가의 의도나 출연자에 대한 사전 지식을 조금이나마 파악하고 공연장을 찾는다면 공연을 준비하지 않은 관객보다 훨씬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manner maketh man"이 아닌 "manner maketh fun"을 더하고 싶다.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행동양식은 새로운 경험에 더욱 높은 몰입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린 시절 처음 양식집을 가기에 앞서 나이프는 오른손, 포크는 왼손을 사용해야 한다는 작은 상식을 알고 가서 당황하지 않고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클래식 연주를 보러 갔다면 악장 사이에 박수는 연주자의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한 곡이 완전히 끝났을 때 박수를 보내야 한다든지, 휴대폰 불빛·진동음은 미리 차단하거나, 공연 시작 이후에는 마음대로 입장할 수 없다는 등의 기본 에티켓을 알면 좀 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이 식사나 술자리에서 서로 밥값·술값을 지불하겠다며 정겨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목격하지만 공연 티켓 구입에는 참으로 인색하단 느낌을 받는다. 단풍이 저물어가는 이 멋진 가을날에, 케이블카로 쉽게 오른 정상처럼 쉽게 구한 초대권으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어울리는 가장 멋진 옷을 차려입고 제대로 준비한 멋진 공연으로 인생의 새로운 쉼표를 가져봄이 어떤지 제안해본다.
[박인건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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