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땐 햇빛주사, 어두울땐 촛불 켜는 지혜를"
"날마다 최선을 다한다면
행복은 우리 곁에 있어요
수녀된지 내년 꼬박 60년
하루 열개 넘는 약 먹지만
친구처럼 죽음 받아들일 준비"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듯이/ 내 몸이 힘들고 우울할 땐/ 햇빛 주사를 자주 맞는다. (중략) 우울한 맘이 이내 밝아지는 햇빛 한줄기의 주사."
수도자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78)의 신작 시 '햇빛 주사'의 도입부다. 8년 만에 낸 시집의 제목부터가 '이해인의 햇빛 일기'(열림원 펴냄)다. 햇빛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이메일을 통해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세상에 태어난 이상 한 사람의 순례자는 결국 희망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냐"며 "날마다 새롭게 뜨는 해를 보며 늘 기뻐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는 현재 부산 광안리 푸른 바다가 보이는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해방둥이로 여고 졸업 후 줄곧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워낙 많이 읽다 보니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어요. 또 13년 연상의 언니가 수녀원에 간 것을 계기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다 보니 그 길을 저도 따라서 선택하게 되었죠."
그는 "내년이면 입회한 지가 반세기도 지난 60년이 된다"며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느껴지는지"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과거와 다르게 요즘 수녀원에는 '젊은 수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 수도자가 급감하고 있다. "이렇게 빨리 성소자가 감소할 줄 몰랐어요. 제가 지원자 담당자일 때만 해도 지원자 모임에 너무 많이 와서 그만 오라고 말릴 정도였는데…."
세월의 무상함은 팔순에 가까워진 나이에서도 실감 난다. 마음은 늙지 않지만 뼈에서는 칼슘이 빠져나가고 이름도 자주 깜박깜박한다. 2008년 암 수술은 약 더미에 치이는 일상을 안겼다. "세 과에서 처방받은 약들을 하루에 열 개 이상 먹기도 하면서 일상을 버티고 있습니다."
아무리 수도자라도 아프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여전히 엄마일까. 신을 찬미하면서도 어김없이 비오는 날엔 엄마의 감자전이 먹고 싶어 눈물이 난다. 16년 전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셨는데도 말이다.
"어머니는 저를 세상에 낳아주신 존재의 뿌리이며 신앙의 본보기이고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수행의 길에 있어서도 언제나 닮고 싶은 본보기시지요. 강원도의 산을 닮은 강인함과 평정심을 잃지 않던 그리고 겸손했던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수녀원 게시판에 부쩍 부고가 많이 붙어 있다. 죽음이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잘 죽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선종(善終)이라는 뜻인데 한 송이 꽃이 피었다가 때가 되면 지듯이, 아침의 해가 저녁이 되면 지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마침의 과정일 것입니다. 병고에 시달리다 죽더라도 그것을 선하게 긍정적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의 마무리를 할 수 있다면 좋은 죽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살아서 매사에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게 사는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잘 죽은 것을 예비하는 것이지요."
그는 행복의 비결에 대해서도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하는 솔선수범의 마음을 지니고 그날그날 최선을 다한다면 멀리 있던 행복도 가까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남은 인생,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일상을 기록한 노트를 하나의 그림일기로 정리하고 싶어요. 또 애독자를 대상으로 시 낭독회와 작은 음악회도 열고 싶습니다."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시작으로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등 수많은 시집으로 그의 이름 앞엔 '치유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말을 청했다.
"그간 열심히 살아오느라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힘들어도 힘내시고 건강하세요. 일단은 몸이 건강해야 고민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어둡다고 불평하기보다 촛불 한 개라도 켜는 것이 낫다'는 중국 격언을 우리 함께 기억하면서!"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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