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내 상가 앞에…분양 때 없던 조형물이 앞에 ‘떡’[주住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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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부동산중개업자 박민수씨(46·가명)에겐 오랜 꿈이 있었다. 대구 최고 입지를 자랑하는 범어네거리에 부부 명의로 된 상가를 사서 중개업소를 차리는 것이었다. 박씨의 꿈은 곧 현실이 되는 듯했다.
부부가 모두 공인중개사인 박씨네는 대구 만촌동에서 보증금 3000만원에 월 150만원짜리 사무실을 임대해 부동산을 운영해왔다. 오전엔 손님 응대, 셔터를 내린 뒤엔 부동산 블로그 홍보, 매물 접수 등으로 밤낮 없이 살다보니 점차 단골이 쌓였고 돈이 모였다. 마침 시장 상황도 좋았다. 박씨는 “2년 전까지만해도 서로 계약을 하겠다고 난리였다. 오피스텔이고 뭐고 물건이 나오면 누구나 사려고 달려들어 돈도 많이 벌었다”고 말했다.
2019년 무렵 박씨 부부는 결심했다. 대구 범어네거리에 부부 명의로 된 상가를 얻어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말이다. 범어네거리야말로 명실상부 대구 최고의 상권이다. 왕복 10차로 달구벌대로, 13차로 동대구로가 도심부를 가로지으며 교차하는 곳으로 목표를 정했다.
마침 대구 랜드마크로 떠오른 59층짜리 A아파트가 분양 중이었다. 2024년 입주 예정인 이곳은 박씨 부부의 꿈을 실현하기에 제격으로 보였다. 부부는 A아파트 상가 여러 점포 가운데서도 도로변을 바라보는 비싼 자리를 골랐다. 분양가만 3.3㎡당 1억원에 달했다. 건물 안쪽의 같은 평수보다 분양가가 3억원가량 높았지만 부부 선택은 확고했다. 범어네거리 상징인 그랜드호텔이 시야에 훤히 들어오는 이 자리는 오가는 행인의 눈에 쉽게 띄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중도금 대출을 처리하고, 잔금일을 몇달 앞둔 지난 10월 입주자 카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조경공사를 마친 상가 주변의 최근 모습이었는데 자세히보니 뭔가 이상했다. 웬 조형물이 박씨 상가 자리 앞에 떡하니 설치된 것이다.
쏜살같이 달려가 확인한 현장은 박씨의 기대와 전혀 달랐다. 갈매기가 앉아있는 둥근 원형태의 조형물이 박씨 상가를 가리고 있었다. 조형물은 높이 4m, 너비 6m였고 박씨 상가는 전면 가로 3.7m 규모다. 박씨는 “대형 조형물이 5m 쯤 앞에 설치됐는데 이 때문에 추후 간판을 설치하면 정면에서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상가를 분양 받을 때 받았던 조감도나 계약서 어디에도 조형물 위치를 표시하거나 생길 가능성을 고지한 건 없었다. 박씨는 곧 바로 시공사와 조합 측에 조형물 이전, 안되면 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시공사 측은 “상가 수분양자 중 조형물로 항의가 들어온 건 박씨가 유일하다. 오히려 조형물과 함께 길이 만들어져 상가 접근성이 더 개선됐다”고 말했다.
박씨 측은 “조감도대로 나무만 있었다면 상가가 가리지 않았을텐데 조형물 때문에 간판을 달아도 정면에서 보기가 힘들다. 재산가치가 떨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공사 측은 3주가량 아무런 답을 주지 않다가 지난 10일에서야 “조형물 이전은 불가능하다. 계약 취소도 불가하다”는 답을 줬다. 통상 조형물은 조경공사 이후 막바지 설치된다. 이때 절차상 수분양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중개사인 박씨네가 모든 계약서를 꼼꼼하게 챙겼음에도 조형물 변수를 대비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문화예술진흥법을 보면 연 면적 1만㎡이상 건물은 무조건 미술품을 설치해야한다. 법이 작품 종류나, 크기, 위치 등에 대해 기준을 갖고 있지는 않다. 지자체 심의만 통과한다면 건물 어디에나 다 설치할 수 있다. 지자체 심의만 통과하면 말이다.
1년반동안 서울시 심의위원으로 활동한 한 전문가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굉장히 주관적인 심의다. 작품이 그 근방에 어울리는지 정도를 미술가, 조경교수, 건축가 등 심의위 풀이 판단한다. 돌, 원형 이런 뻔한 작품은 대부분 프리패스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시공사 측은 전체 상가 수분양자 중 박씨만 조형물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고 경향신문에 설명했다. “조감도대로 했더라도 나무가 있어서 애초부터 상가가 잘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오히려 조경 공사 때 조감도에 없던 길을 새로 내면서 상가 전반의 접근성이 개선됐다. 수분양자 중 박씨를 제외한 그 누구도 조형물에 대해 항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씨는 이에 대해 “조감도 대로 나무였다면 나무와 나무 사이, 나뭇가지 사이 등으로 간판이 보일수 있다. 만약 대형 조형물이 생긴다고 미리 얘기했다면 애초에 이곳을 사지 않았다”라며 “다른 상가 주인들은 조형물이 직접 안가리지만 내 경우는 개방성, 효용성이 떨어져 재산상 손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민사로 가면 어떨까. 계약서만 보면 박씨가 불리한 면이 많다. 시공사 측이 경향신문에 보낸 계약서 제15조(유의사항)에는 “(출입구 등에) 조경 등 공용시설물이 설치될 수 있고 임의 변경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또 “각종 설계의 경미한 변경에 대해 계약자는 사업주체의 결정에 따르고 위탁하는데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률사무소 호연의 이동우 변호사는 “이 분양 계약은 상가를 영업에 쓴다는 게 기본 조건인데, 조형물로 영업 행위를 침해 받았다면 채무불이행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 경우 조형물 설치를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것은 불법행위가 된다”고 말했다.
유사한 판례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2021년 미사신도시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입주 때 상가 안에 큰 기둥을 발견하고 계약 해지를 요구한 사건에서 수분양자 손을 들어준 적이 있다. 이때 시행사는 ‘경미한 설계 차이는 계약 해지 사유가 안된다’는 계약서 문구를 들고 나왔지만 법원은 기둥의 형태와 면적, 크기가 이례적이라며 수분양자 손을 들어줬다.
박씨도 민사 소송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당장 원하는 건 합의다. 지금 임대 중인 만촌동 사무실 계약이 올해 말 끝나, 업무를 위해서 당장 입주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공사가 분양 취소를 해준다면 같은 상가 내 다른 점포를 매입할 계획이다. 박씨는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금리가 올라가서 개업 리스크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중개사로서 오랜 꿈이었기 때문에 3년 전 선택을 이행하고 싶다”라며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조형물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살만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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