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곤의 재밌는 화약이야기]<8> 화약이 가장 먼저 이용된 무기는 대포
화약이 가장 먼저 이용된 무기는 대포라고 할 수 있다. 대포는 그전에 사용되던 투석기를 대체하는 무기로 개발됐다. 애초에 포탄은 커다란 돌이나 쇠뭉치였다. 단순한 돌, 또는 쇠뭉치로는 많은 사상자를 낼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포탄이 떨어지면 작렬하도록 만들어서 한 발의 포탄으로 더욱 많은 사상자를 내게 했다. 그러나 조금 더 효율적이고 대량 살상을 하는 길을 찾으려는 인간은 단일 포환이 아닌 여러 개의 작은 금속구 등을 넣은 포도탄이나 산탄을 만들어 냈다.
◇ 대포가 가장 앞선 나라는 다름 아닌 조선
맨 처음 포는 포탄과 화약을 앞에서, 그러니까 포구로 밀어 넣는 방식을 사용했다. 주조기술과 가공기술이 덜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포탄과 장약을 넣으려면 사람이 포 앞으로 나가야 하고, 밖으로부터 공격에 노출될 뿐 아니라 늘 장전에 따른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뒤에서 포탄을 넣는 기술은 퍽 어려운 것이라 상당한 세월이 소요됐다.
동시대에 포화기가 가장 앞선 나라는 다름 아닌 조선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보유한 천자총통은 내구성과 화력, 사거리와 명중률 모두에서 세계 최고의 성능을 보인 무기였다. 당시 포르투갈 등 서양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미끈한 대포를 만들었지만, 성능은 천자총통만 한 것이 없었다.
대포는 곧 모든 전장을 휩쓸었고, 대포를 사용하지 못하는 나라는 속속 멸망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석권한 것은 바로 대포를 가장 유효적절하게 이용했던 데에 비결이 있었다.
대포가 나온 뒤 또 한 가지의 변혁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개인 총기의 발달이었다. 포를 축소시켜 개개인이 지니고 다닐 수 있게 만든 이 무기는 그야말로 대변혁을 몰고 왔다. 오랜 기간이 걸리는 무술 훈련이 필요 없어졌고, 그 때문에 중세 기사 사회는 몰락했다.
무지막지한 갑옷도 쓸모가 없어지자 모두 벗어던져 버렸다. 그래서 총기가 나온 이후의 군대는 이제 더 이상 갑옷을 잘 걸치지 않았고, 대신 화려한 군복을 입기 시작했다. 동양에서는 총기를 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근래에 이르기까지 갑옷을 입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 군대는 갑옷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점차 총기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개인 총기는 처음에는 매우 불편한 무기였다. 화승총은 도화선을 사용했다. 그런데 도화선을 길게 하면 발사 시간이 늦어지고, 짧게 하면 조준할 시간이 없으므로 문제였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부싯돌을 쳐서 발사하는 최초의 공이치기 방아쇠 형태의 총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큰 변혁이었다. 이제 군대가 창칼을 이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총이 좋아진 것이다.
화약 무기는 총과 대포를 필두로 급속하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총의 기동성과 장거리 사격성, 대포의 파괴력은 세계를 휩쓸었다. 이에 힘입어 인간은 더욱 강한 화력의 화약을 만들어 냈으니 그게 바로 고폭약이었다. 당시 사용되던 흑색 화약은 고폭약으로 쓰기에는 화력이 약했다. 그리고 주성분인 염초의 제작이 까다로워서 서양 국가들은 주로 칠레 초석에서 이를 얻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 의해 공중질소 고정법이 발견되자 질소를 이용한 폭약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니트로글리세린이 발명되고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로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자, 줄을 이어서 고폭약들이 나왔다.
1000년 동안 부동의 자리를 고수하던 흑색 화약은 1차대전 중 무연화약이 나오게 되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포 사거리가 더 길어졌고, 포탄과 탄피를 결합하여 뒤에서 장전하는 방식이 개발됐다. 이 방법은 총에도 응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기계공학의 발달로 기관총이 등장했다. 짧은 시간 동안에 무수히 많은 총알을 쏘아 대는 이 가공할 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한편 다량의 총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규격화에 의한 대량생산 이론을 처음으로 깨달아 사용했다. 그리고 이 방식은 곧 미국의 포드에 의해 자동차 대량생산으로 이어져서 현대화된 공장의 효시가 됐다. 그러고 보면 현대의 대량 물질문명 또한 인간의 파괴본능에 의한 무기 발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 화약 무기의 융성 - 1, 2차 세계대전
화약무기가 고도화되면서 인간의 파괴본능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상상의 무기들이 실제화됐다. 총과 대포에서 기관총으로, 그리고 폭탄으로, 로켓으로, 미사일로. 1차대전은 2차대전의 서막이었다. 2차대전은 신무기의 시험장 같은 전쟁이었다. 비행기가 처음 전쟁에 등장한 것은 1차대전 때였지만 2차대전 때는 대량 공습과 같은 대규모 살육이 이루어졌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소박한 꿈은 결국 그보다 몇 배 더 큰 참화를 안겨 줬다. 비행기의 투하탄은 더욱 강력해졌고, 급기야는 로켓이 사용됐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명석한 과학자들은 나치의 핍박에 의해 비밀무기로 제트 엔진과 최초의 원거리 로켓인 V-2를 개발해 프랑스 땅에서 영국을 공습했다. 런던은 무참하게 파괴되었고, 그 보복으로 영국 공군은 독일 도시들을 거의 전멸시켜 버렸다.
또 지상의 왕자라는 탱크가 등장해 땅을 휩쓸고 다녔으며, 바다에서는 전함과 항공모함, 잠수함까지 등장했다. 개인 화기로는 경기관총과 소총, 권총, 중기관총에 이어 바주카포와 수류탄이 대량으로 사용됐다.
당시 거의 모든 유명한 과학자는 전쟁의 노예가 되어야만 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핵폭탄을 낳게 했고, 전자파의 연구는 레이더의 개발로 변질됐다. 원래 레이더는 영국 정부에서 살인광선을 만들려는 계획의 일부로 진행되다가 파생된 것이었다. 이제 원자탄과 레이더의 개발로 시작해 인류는 화약을 벗어난 타 에너지계의 무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현재 새로운 무기들 즉 핵무기와 레이저, 화학무기, 스텔스와 같은 신소재 무기, 전자 장비에 의한 고정밀 제어 무기들이 융성을 이루고 있다. 이제 인류가 지니게 된 파괴력은 거의 주체를 못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더더욱 무기를 개발하려 한다. 무엇 때문일까? 인류의 역사가 무기 개발로 인해 융성하고 더욱 풍요를 맞이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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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곤 대표. 22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지곤폭죽연구소를 창업해 30대 시절 한국 대표 불꽃연출가로 활동했다. 독도 불꽃축제 추진 본부장을 맡아 활동 하면서 본인과 세 자녀의 본적을 독도로 옮긴 바 있으며, 한국인 최초로 미국 괌 불꽃축제, 하와이 불꽃축제 감독을 맡았다. 지금은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로봇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강일 기자(ki0051@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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