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시달릴 것" vs "침소봉대"…노동조합법 '후폭풍'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경영계 등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법파업이 활개를 치고 현장에 극심한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라는 주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노조법 개정안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며 "거부권 행사를 거부한다. 즉각 시행하라”며 정부에 법안 공포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동조합법에 대한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가 개정안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노동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나서 눈길을 끈다.
○고용부 장관 “기업들, 1년 내내 교섭에 시달릴 것”
개정안에 따르면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어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도 단체교섭의 대상자인 ‘사용자’의 범위에 포함된다.
‘실질적 지배력’의 개념도 모호해 현장에선 큰 혼란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 사용자의 개념이 무한 확장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정식 장관은 지난 10일 기자단 브리핑에서 “일부 기업은 1년 내내 교섭하고 강성노조 사업장은 1년 내내 파업을 할 우려가 크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 “1년 내내 파업하길 바라는 노동자는 없다”며 과장됐다고 비판했다. 고용부는 지난 11일 설명 자료를 내서 노동계의 주장을 즉각 반박했다.
고용부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원청은 하청 노조로부터 단체교섭을 요구받게 되고 (그때마다) 자신이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지 판단 받아야 하므로 결국 (법원에서) 지난한 소송을 거치게 된다”며 “교섭해야 할 노조가 수십, 수백개가 되면 그만큼 파업도 당연히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십·수백 개의 하청업체가 있는 원청이라면 각 하청업체 노조와 일주일씩만 교섭해도 1년은 금방 지나갈 것”이라며 “사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장관의 말이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2010년 대법원에서 나온 소위 ‘현대중공업 판결’을 근거로 만들어졌으므로, 이를 반대하는 것은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2010년 당시 대법원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사내 하청근로자들의 노조 활동을 막기 위해 사내 하청업체를 폐업시킨 사건에서 원청을 사용자성 여부를 판단한 바 있다. 부당노동행위는 ‘사용자’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원청이 사용자로서 하청 노조의 활동에 개입한 것은 위법한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이 대법원 판결문의 사용자 개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부는 2010년 대법 판결과 이번 노조법 개정안의 ‘사용자’의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2010년 대법 판결은 사용자가 노동3권을 침해하는 ‘지배·개입’ 행위에 관한 것인 반면 노조법 개정안은 ‘단체 교섭’에 대한 것”이라며 “엄연히 목적과 기능이 다른 제도인데 사용자 개념을 동일하게 해석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조법 체계 흔들 수 있다" 지적도
노동법학계와 법조계에서는 노사 교섭과 관련된 다른 법조항들은 그대로 둔 채 조항 하나만 덜렁 개정한 것은 전체 노동조합법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으로는 하나의 사업장 내 여러 개의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노조들은 사용자와 교섭할 ‘대표 노조’를 정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문제는 하청 노조도 원청과 교섭하게 된다면 하청 노조가 원청 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하청 노조의 근로자가 다수일 경우엔 하청 노조가 교섭대표 노조가 되면서 원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대신 결정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지만 노조법 개정안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원청이 하청 노조와 교섭을 진행하던 중 하청업체와의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 교섭이 없던 것이 되는지도 불분명하다”며 “사회적 낭비에 대한 실무적 고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하청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대체 인력을 투입하는 게 불가능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하청업체가 파업할 경우 예전에는 다른 하청업체를나 대체인력을 투입해 사업을 계속 운영하는 게 가능했지만, 개정 법안이 시행되면 현행 노조법 43조의 대체 근로 및 대체도급 금지 규정과 맞물려 사업의 계속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원청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교섭 대상인 ‘사용자’의 개념이 무분별하게 확대하면서 도급이나 하청을 기본으로 업계에서는 '원·하청 간 산업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해 6월 하청 노조가 51일간 파업으로 8000억 원 상당의 손해를 입혔던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 하청의 원청 상대 파업도 재발할 우려가 높다는 의견도 있다.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다단계 구조인 조선업의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은 대우조선해양 등 원청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교섭을 요구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쟁의행위를 합법적으로 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또 합법 파업이 되니 당연히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도 불가능하다.
개정안이 파업 등 쟁의행위 대상을 ‘근로조건 결정’에서 ‘근로조건’으로 바꾸면서 노사 간 분쟁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해당 조항이 ‘이익분쟁’에서 ‘권리분쟁’으로 확대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노사가 임금과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이익분쟁, 부당노동행위, 단체협약 불이행 등 이미 확정된 내용에 대한 분쟁을 권리 분쟁이라 한다. 권리분쟁에 대해서도 쟁의가 가능해진다는 것은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판단을 받아야 할 문제를 앞으로는 파업 등 쟁의행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이미 노사 간 합의로 확정된 내용이나 기존에는 법으로 허용되지 않던 무리한 요구사항도 파업이라는 ‘실력행사’로 해결하려는 관행이 자리 잡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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