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된 ‘치유의 집’…알시파 병원 “전력 중단·조준 사격으로 미숙아 2명 등 사망 환자 속출”

손우성 기자 2023. 11. 12. 15: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력 끊겨 인큐베이터 작동 멈춰
이스라엘군 저격수 배치 증언도
이스라엘 “환자 이송 돕겠다” 여론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에서 지난 10일(현지시간) 의료진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다친 환자들을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가자지구 내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이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에게 완전히 포위다. 전력이 모두 끊겨 인큐베이터에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던 미숙아 2명이 결국 숨을 거뒀고, 밀려드는 환자를 살피기 위해 건물 밖으로 뛰쳐나간 의료진들은 이스라엘 저격수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알시파 병원이 하마스의 지휘본부라고 주장하며 공격을 정당화하고 있지만, 무고한 주민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의료기기 멈춰 사망 환자 속출
“환자에게 접근하는 의사까지 조준 사격”

무함마드 아부 살미야 알시파 병원장은 이날 알자지라에 “정전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인큐베이터에 있던 미숙아 2명이 사망했다”며 “다른 미숙아 37명도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각종 의료기기가 멈춰서면서 미숙아를 포함해 모두 5명의 환자가 사망했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심장병동이 완전히 파괴되는 등 이날부터 어떠한 치료도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일부터 알시파 병원 부근을 에워싸기 시작했고 폭격 강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병원 근처에 저격수를 다수 배치해 병원 안팎의 가자지구 주민과 환자, 심지어 의사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살미야 병원장은 “병원 내에서 이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저격수의 공격을 받고 있다”면서 “인큐베이터 아기를 살피러 가던 의료진 한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전했다.

‘치유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알시파 병원에서 현재 치료를 받는 부상자 수는 5000여명으로 수용 가능한 병상 개수(700개)의 7배를 넘어섰으며, 폭격을 피해 병원에 머물고 있는 피란민의 수는 5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알시파 병원에 남아있는 국경없는의사회(MSF) 소속 의료진들은 연락이 두절되기 직전까지 MSF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도움을 호소했다. 함마드 오베이드 외과의는 이날 MSF에 남긴 음성 메시지에서 “우리는 현재 병원 4층에 있다. 병원 안에 있는 환자 4명을 공격한 이스라엘 저격수가 있다”며 “환자 가운데 한 명은 목에 총상을 당했고, 다른 환자는 복부에 총을 맞았다”고 전했다. 그는 “알시파 병원엔 이날 아침부터 전기도, 물도, 음식도 공급되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홀로 남겨졌다.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절망감을 표했다. MSF 소속 한 간호사도 “포격이 너무 가까워서 아이들이 울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현지의 참담한 상황을 전했다.

이스라엘군의 대피령 때문에 알시파 병원에 가족을 남겨 놓고 남부로 쫓겨가야 했던 가자지구 주민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생후 33일 된 미숙아 쌍둥이인 미라와 다합을 병원에 두고 피란길에 오른 이스마일 야신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자식들은 치료를 위해 인큐베이터에 남아 있어야 했다”며 “갓 태어난 아이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빨리 아이들이 병원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이송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폭격으로 다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알아크사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알시파 병원은 하마스 근거지”
전쟁 전문가 “설령 그렇다 해도 국제법 위반”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알시파 병원 지하에 군사 시설을 갖추고 환자와 의료진을 ‘인간 방패’로 삼고 있다며 공격을 정당화하지만, 명확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전 가자 전쟁 당시 알시파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했던 노르웨이 출신 매즈 길버트 박사는 “그곳에서 일할 때 하마스 인사를 본 적이 없다”며 이스라엘의 주장을 반박했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설령 이스라엘군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알시파 병원에 대한 공격은 전쟁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법률 담당관인 코르듈라 드뢰게는 AP통신에 의료시설을 공격하기 전에 환자들과 의료진들이 안전하게 대피를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경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하이오주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의 군사 윤리학 전문가인 제시카 볼펜데일 교수도 군사 목표에 비해 그로 인해 발생한 민간인 피해 규모가 과도하게 큰 경우 그 공격은 국제인도법상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 검사는 가디언에 “이스라엘은 병원, 학교, 예배당 등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돼 민간인 보호 지위를 상실했다고 주장한다”면서 “그러나 이 경우 그 입증 책임은 총과 미사일을 발사하는 쪽에 있으며, 그 증거의 기준은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군의 병원 공격 중단을 요구했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사무차장은 “사람들을 전기·물·음식도 없는 상황에 몰아넣고, 탈출하려는 환자와 민간인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악화하는 여론에 이스라엘은 대응에 나섰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알시파 병원에서 내일 소아과에 있는 아기들이 더 안전한 병원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왔다”며 “(대피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베이드 외과의는 MSF에 전한 메시지에서 “수술을 받아 걸을 수 없는 환자들이 많다. 어제 아침부터 지금까지 25명의 환자를 수술했다”면서 환자를 이동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임을 호소했다. MSF는 지금 필요한 것은 대피가 아니라 “긴급하고 무조건적인 휴전”이라며 “가자지구 전체에 인도주의적 지원이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도 알시파 뿐 아니라 알쿠드스·란티시·알나스르 등 다른 병원에도 공습을 가했다. 알자지라는 “알쿠드스 병원엔 이스라엘군이 20m 거리까지 진입한 상황”이라며 “병원에 있는 1만4000여명의 가자지구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많은 피란민이 몸을 숨기고 있는 유엔개발계획(UNDP) 가자지구 사무소에도 폭탄이 떨어져 일부 주민이 숨졌다. 아힘 슈타이너 UNDP 사무총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든 면에서 잘못된 행위”라며 “민간인과 민간 기반 시설, 유엔 시설에 대한 불가침성은 언제나 지켜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