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극명히 대비되는 '고려거란전쟁', 난세의 영웅서사 통할까
[엔터미디어=정덕현] "고려는 죽지 않는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첫 등장부터 몰려오는 엄청난 수의 거란 군사들을 검차를 앞세워 막아내려 하는 고려 군사들이 벌이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전쟁 신이 펼쳐졌다. 점점 수세에 몰린 고려 군사들이 겁에 질려 있을 때 강감찬(최수종) 장군이 직접 나서 검차에 대고 주문을 외우듯 반복해 말하는 대목에서 그 강렬한 카리스마와 더불어 이 오래도록 이어질 전쟁의 서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가늠하게 했다.
도무지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거란에 맞서 끝끝내 군사들을 독려하고 이끌어 승리를 거머쥐었던 영웅들이 있었다는 것. 우리에게는 귀주대첩으로 잘 알려져 있는 강감찬 장군이 그 전면에 서 있다면, 이외에도 흥화진사 양규(지승현),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이원종)나 향후 왕위에 오를 현종(김동준)은 물론이고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김숙흥(주연우), 조원(김중돈), 강민첨(이철민) 같은 영웅들이 있다.
즉 <고려거란전쟁>은 거란의 침공이라는 난세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그리고 있다. 향락에 빠진 목종(백성현)과 오랜 섭정으로 김치양(공정환)의 아들을 태자 삼아 후계를 이으려는 천추태후(이민영)로 인해 이 국가적 위기를 방치하고 있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영웅들의 서사가 펼쳐진다.
최근 들어 사극은 국가적 영웅보다는 역사에는 이름이 남겨지지 않은 민초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루고 있다.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정통사극 대신 역사 바깥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 그려내는 퓨전사극들이 더 많아진 것. 이렇게 된 건 현재의 대중들이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국가적 영웅들의 전기보다는, 보다 서민적인 인물들의 서사에 더 공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MBC 금토드라마 <연인>과 비교해 보면 <고려거란전쟁>의 분명한 색깔과 차별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연인> 역시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역사적 배경으로 가져왔고 그 안에 소현세자나 인조, 최명길, 김상헌 같은 실제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건 이장현(남궁민)과 유길채(안은진)라는 당대를 살았을 허구 속 인물들의 사랑이야기다. 반면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와 거란이 치렀던 여섯 차례 전쟁을 배경으로 그에 맞서 싸운 실제 역사적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지금의 대중들은 정통사극보다는 역사와 상상력이 적절히 어우러진 퓨전사극 쪽에 시선이 더 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건 역사를 외면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역사가 채 기록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지금의 대중들이 사극을 통해서나마 채워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기록이 갖는 가치는 분명하다. KBS 대하사극의 존재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따라서 <고려거란전쟁>이 역사에 기록된 국가적 영웅들을 소환해내 고려 시대의 난세 속에서 나라를 지켜낸 인물들을 다시금 그려내는 건, 혹여나 우리가 허구의 세계 속에서 잊고 있던 우리의 진면목을 마주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또한 KBS라는 공영방송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이 치열한 전쟁의 양상들을 완성도 높게 재현해내는가와 역사적 사실들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는가 하는데 있을 게다. 또한 이미 역사가 스포일러일 수밖에 없지만 그걸 실감나게 보여주는 연기자들과 연출자들의 몫도 적지 않다고 보인다. 과연 <고려거란전쟁>이 택한 난세의 영웅들은 현재의 대중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KBS 대하사극의 명맥이 이 작품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고려는 죽지 않는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외치는 최수종의 단호한 목소리가 달리 들린다. 마치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KBS 대하사극이 끝내 살아남아 승리할 거라는 외침으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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