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폭력 범인 "미치도록 잡고 싶던" 보좌관이 한 일

CBS 오뜨밀 2023. 11. 1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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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노동자'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12년
법에 담긴 표정 풀어낸 <법 짓는 마음> 출간
딱딱해 보이는 법안, 울고 웃는 표정 있어
"미치도록 잡고 싶던" 디지털 성폭력 범인
기자와 경찰의 마음으로 관련 법안 만들어
법안에 관련된 이해관계 조율이 핵심 업무
새벽 출근-심야 퇴근, '국회 귀신' 별명 생겨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이보라 작가 (전 국회의원 보좌관)

◇ 채선아> 10년 차쯤 되면 남한테 할 말이 생긴다. 한자리에서 10년 이상 밥 벌어 먹고 사는 각가지 생활 속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보는 시간. <10년 차>! 여러분은 국회하면 가장 먼저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편을 가르고 목소리를 높여서 싸우는 모습이 우리한테는 익숙한데 그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법에 녹이고자 고군분투한 분을 모셨습니다. 이보라 전 국회 보좌관,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세요.  

◆ 이보라> 안녕하세요. 10여 년간 보좌관으로 일한 입법노동자 이보라입니다. 반갑습니다.

◇ 채선아> 반갑습니다. 입법 노동자라고 하셨는데, 흔히 보좌관 업무를 생각하면 국회의원을 돕는다 생각하기 쉽거든요. 일단 어떤 경로로 보좌관이 되는 건가요?

◆ 이보라> 제가 보좌진으로 입직하게 된 건 좀 특이할 수 있는데요. 제가 석사 논문을 <제주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의 평화 정치학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썼거든요. 서울에서 쓰는 게 아니라 제주도에 내려가서 거기 살면서 썼어요. 그러다 보니까 처음에 마을 주민들은 '쟤가 도대체 뭐야?' 이랬을 거잖아요. 그런데 한 1년쯤 살다 보니까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제가 받게 됐죠. 저는 서울 사람이어서 고향의 감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강정마을에서 처음으로 고향이라는 감각을 알게 됐어요.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강정마을을 고향 같은 마을로 삼게 되다가 석사 논문을 마치고 한 몇 년이 흐른 후에 제주도 강정마을에 정말 해군 기지가 들어선다고 하는 거예요. '구럼비'라고 하는 그 마을의 상징적인 바위가 있는데요. 그게 해군기지 건설로 발파가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마을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바로 제주도로 내려가서 어떤 절차적인 부당성의 문제를 알리는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됐어요. 그 연장선에서 19대 국회에 해군기지 전담 보좌진을 뽑는다는 의원실이 있어서 보좌관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채선아> 그 지역에서 관련 활동을 했던 사람을 보좌관으로 뽑은 건데, 다른 보좌관들은 보통 어떤 경로로 되나요?

◆ 이보라> 공채와 특채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공채보다는 특채로 오시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 채선아> 저는 보좌관이 되면 계속 일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보좌관은 정규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종종 나오는 뉴스들 보면 의원들이 보좌관 월급 빼돌리는 뉴스도 나오잖아요.

◆ 이보라> 그런 극악무도한 상황도 있죠. 그런데 언론에 나오는 것들은 정말 일부고 특이하니까 언론에 난 거고요. 요즘은 기자들도 시민사회단체들도 국회 감시를 너무나 열심히 하기 때문에 그런 짓은 잘 못합니다.

◇ 채선아> 정규직이 아니면 임시직인 거잖아요. 그런데 12년을 일하신 거면 계속 연장된 건가요?

◆ 이보라> 연장이 됐다기보다는, 국회의원의 임기와 보좌진의 임기는 무조건 같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원이 재선이나 3선을 도전했다가 낙선하게 되면 당연히 퇴직이 되고요. 소속된 의원실은 중간에 바뀌었지만 제가 12년 동안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의원이나 동료들과 케미가 맞았던 거라 저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 채선아> 그럼 4년마다 채용 시장이 열리고 보좌관들은 일을 계속하다 보면 그 시장을 보는 눈이 생길 텐데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거 아니에요. "저 방은 매번 보좌관이 바뀌어" 아니면 "저 방은 분위기가 좋아" 그런 방이 있나요?

◆ 이보라> (웃음) 있죠. 국회에 워스트(Worst) 5가 있어요. 보좌진들이 진짜 자주 바뀌는 방들을 정말 악명이 높죠. 이를테면 폭언을 하거나 상하관계가 심각한 곳이면, 국회는 이런 소문들이 굉장히 빠른 동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얘기들을 주고받긴 하죠.

◇ 채선아> 4년마다 시장이 생기면 열리면 민주당에서 일하던 보좌관이 국민의힘으로 갈 수도 있나요?

◆ 이보라> 예전에는 드물게 좀 왔다 갔다 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정당 간에 협업이 거의 없는 상황이잖아요. 너무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다 보니까 각 당에서 보좌진을 채용할 때 어떤 당에 있었는지 일종의 당적 조회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상대 당에서 일했으면 아무래도 결격 사유가 되는 분위기가 더 강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 채선아> 우리가 싸우는 모습만 기억해서 그렇지 생각해 보면 국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정말 많잖아요. 실제로 입법 노동자로서 법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 이보라> 좁은 의미의 입법이라고 하면 법조문을 만드는 일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보통 '성안한다'고 표현하는데요. 그건 정말 좁은 의미고, 사실 국회 보좌관들은 넓은 의미에서 입버 활동을 하는데요. 많은 이해 당사자들과 조율을 해야죠. 상황이 다 다른 민원인들도 있고 더군다나 정당 간의 싸움이 있는 판이기 때문에 당 사이의 이견을 조율하는 일도 포함되고요. 동시에 이 법이 너무 중요한 법이라는 생각이 들면 기자들을 만나서 "이 법에 대한 내용 좀 알려주세요"라고 요청도 드리고요. 그래서 보좌관들은 하루 종일 사람 만나고 전화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고요. 정작 법안을 성안하는 작업은 보통 8시, 9시쯤 다시 국회로 돌아오면 밤늦게 이뤄져요.


◇ 채선아> 밤 8시, 9시에도 사무실로 돌아와서 일을 하는 건데, 출근은 몇 시에 하시나요?

◆ 이보라> 국회의 나쁜 문화 중에 하나가 조찬 회의가 있다는 거예요. (웃음)

◇ 채선아> 조찬 회의에 보좌관도 같이 가나요?

◆ 이보라> 네. 배석을 하죠. 그리고 당무와 관련된 중요한 일들이 논의되는 장이기 때문에 보통 아침 7시 반에 조찬 회의를 합니다. 그럼 6시 반쯤 가서 대기를 하죠.

◇ 채선아> 그렇게 일찍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의견 조율하다가 밤에 조문 작성하고 이 보좌관이라는 업무가 쉽지 않네요. 싸우는 모습만 계속 보다가 뒤에서는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색다른 면인 것 같은데 아까 '워스트5'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반대로 일을 정말 잘하는 의원실도 있나요?

◆ 이보라> 악명이 높은 곳도 있는 만큼 반대로 유명하고 성과가 높은 의원실도 분명히 있죠. 다만 300개 의원실을 일렬로 쫙 서열을 매길 수는 없고요. 그러니까 다 특색이 있습니다. 어떤 방은 시의성 있는 입법을 잘하는 방이 있고, 어떤 방은 실제 내용보다는 훨씬 더 포장을 잘해서 외적으로 괜찮아 보이게끔 홍보를 잘하는 방이 있고, 또 현장을 잘 지키는 방도 있어요. 이해 당사자들, 피해자들이 있는 현장이라든지 아니면 지역에 있는 현장을 열심히 방문하면서 그 안에서 정책적인 답을 찾는 의원실이 있고요. 그래서 각각의 장점들이 발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채선아> 어떤 특징들을 제일 먼저 보세요?

◆ 이보라> 제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법을 만들면서 갖게 된 저의 직업적 두려움이 있는데 '내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듣지 않고 이런 법을 만들어도 돼?'라는 불안이 아주 강하게 있어요.

◇ 채선아> 혹시나 내가 만든 법 때문에 누군가에겐 피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 이보라> 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몰라요. 이 조문 하나에 따라서 사람들의 일상이 달라지고 명운이 바뀔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면 정말 너무 무서워요. 이런 무서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입법하는 데 있어 공청회도 하고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도 청취하는 것도 분명히 합니다. 그럼에도 여의도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제가 당사자들의 얘기를 듣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너무 커요. 그러다 보니 제 입장에서는 현장과 맞닿아 있는 방이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여요.

◇ 채선아> 얘기를 듣다 보면 베테랑의 느낌이 물씬 나거든요. 그런데 처음에 보좌관 일을 시작하셨을 때는 어땠을까 궁금해요. 국회라는 곳이 화면만 봐도 검은색 양복 딱 차려입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보이는데 여성이 해군 기지 같은 군 이슈를 다룬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 이보라> 쉽지 않은 것을 돌파해 나가는 방법은 진짜 과로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잃은 건 척추 건강이요, 얻은 건 국회 귀신이라는 별명이었어요. (웃음) 그래서 선배 보좌관들한테 엄청 물어보기도 하고 쫓아다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국회 업무가 자기가 직접 돌파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업무가 거의 대부분이어서 진짜 몸으로 배웠죠. 12년 전으로 돌아가보면, 국방부의 직원들 입장에서는 제가 보좌관으로 보이지도 않았겠죠. 그래서 '국회를 X로 알고' 식으로 제가 질의 요구하는 거에 대한 답변도 거의 하지 않고 무성의한 태도를 많이 보였고 더군다나 당시엔 또 야당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제출도 안 하고 이런 것들을 많이 겪었죠.

◇ 채선아> 그동안 만든 법 중에 가장 공들이셨던 법은 뭐였는지도 궁금해요.

◆ 이보라> 제 입장에서 만든 법안들은 우열을 나눌 수 없을 만큼 다 자식새끼 같긴 한데요. 디지털 성폭력 입법이 있어요.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이고 동시에 범죄자들의 범죄 수익을 추징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었는데요. 그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저는 기자의 마음 혹은 경찰의 마음으로 움직였거든요. 살인의 추억의 명대사같이, 진짜 저는 범인들을 미치도록 잡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저의 언어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 혹은 수사 기관의 언어로 질문해서 국회 상임위의 질의가 결과적으로 경찰 병력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경험들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상임위 질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입법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국정감사 직후에 바로 입법했던 거였거든요. 그렇게 되면서 우리의 가치관만으로 질의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행정부니까 행정부의 자기 언어로 질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는 깨달음을 강하게 얻었죠.

◇ 채선아> 예시로는 법 하나를 말씀해 주셨지만 그 자식 같은 법들이 이보라 작가의 <법 짓는 마음>이라는 책에 다 담겨져 있단 말이에요. 이 책 첫 문장에 "법에도 표정이 있다"고 돼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이보라> 입법부에게 법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보는 언어거든요. 보통 법안의 입법 취지라고 하는 것들은 딱딱한 언어로 설명되어 있지만, 이 법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기자의 마음이기도 하고 경찰의 마음이기도 하고 가끔은 흥신소 직원이기도 한 (웃음) 마음이 배어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고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결과적으로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염원과 바람을 법안에 담기 때문에 각각의 법안이 울고 웃고 위로하는 표정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채선아> 그렇게 표정을 담은 법을 만들어 오셨다가 최근에 변화가 크게 있으셨던 것 같아요. 12년간 몸담았던 국회를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했는데 그게 경찰대 수사학과 박사 과정이라고 들었거든요.

◆ 이보라> 제가 n번방 방지법, 그리고 디지털 웹하드 카르텔 방지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의 언어로 질의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자의 언어로, 그러니까 이중 언어자로서 질의할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저는 피해자들의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알고 있으니 제가 잘 모르는 집행자의 언어, 즉 수사 기관의 언어를 배우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입학하게 됐고요.

◇ 채선아> 우리의 언어뿐만 아니라 법 집행자의 언어를 넘나들면서 사회 속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걸 바꿔보려는 DNA를 가지신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이보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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