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에서 훨훨 나는 정국, 솔로로 BTS 아성 이어간다

김영대 음악 평론가 2023. 11. 1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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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ven》 《3D》 《Too Much》 등으로 K팝 역사 새로 써…저스틴 비버-해리 스타일스 양분한 남성 주류 팝 경쟁에도 가세

(시사저널=김영대 음악 평론가)

정국의 새 앨범 'Golden'은 그의 목소리와 음악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머릿속에 그리고 기다려온 정국의 앨범 그 자체다. 그렇다 해도 그건 기분 좋은 예측 가능함이다. 팝적이고, 트렌디하고, 대중적이면서 세련미가 넘치는 음악들. 무엇보다도 센슈얼하고 섹시한 매력이 은근히 묻어있다. 강렬하고 치명적이지만 마초적이지는 않은 남성성, 감정이 적당히 절제돼 건조한 느낌을 주지만, 필요할 때는 격한 감정의 측면을 충분히 끄집어낼 수 있는 모던한 호소력 등은 모두 우리가 정국에게 기대했던 딱 그 모습이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 시대 남성 팝 가수들에게 두루 요구되는 덕목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빅히트 뮤직과 정국이 이 앨범을 통해,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세월 정국의 솔로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고민 끝에 결론지은, 실은 누구나 알고 있던 최적의 노선이었던 것이다.

9월23일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에서 BTS 맴버 정국(가운데)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AP 연합

새 앨범 'Golden', BTS 팝 음악의 집약체

각기 서로 다른 매력과 장점을 가진 방탄소년단(BTS)의 일곱 멤버 중에서도 정국은 '팝'이라는 카테고리에 최적화된 인물이다. 장르 음악도 충분히 가능한 재능이지만 오히려 그것은 역으로 정국의 팝적인 감수성을 희생하는 방향일 수 있고, K팝 아티스트로서 미국 팝 시장의 주류 카테고리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성향을 타고났다는 것은 재능 이상의 영역이라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Golden'은 방탄소년단의 그 어느 음악들보다도 더 팝스러운 작품들의 집약체다.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팝보다도 오히려 더 팝스러운, 매우 '의식적인' 선택들이 가득찬 팝 앨범으로 완성됐다.

이 앨범이 품은 분명한 의도와 방향성은 앨범의 프로듀서 및 작곡가 라인업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미국 주류 팝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인 애드 시런과 숀 멘데스가 각각 《Yes or No》와 《Hate You》의 송라이팅에 참여했다. 포스트 말론, 저스틴 비버, 두아 리파 등 팝 음악 신의 최고 가수들의 히트곡을 만들어온 그래미 수상자 앤드루 와트가 싱글 《Seven》에 이어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 《Standing Next to You》의 작곡과 프로듀싱에도 참여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방탄소년단 불멸의 히트곡인 《Dynamite》를 작곡해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는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3D》와 《Too Sad to Dance》 두 곡에 참여했으며, 그 외에도 세계적인 EDM 프로듀서·DJ인 메이저 레이저와 디제이 스네이크도 한 곡씩을 맡아 트렌디한 라틴 사운드를 더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K팝의 달라진 위상, 방탄소년단의 명성, 하이브의 기획력을 모두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예외적인 화려함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게 유명한 이들의 '보여주기식' 나열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의 참여가 그저 명성을 활용한 마케팅을 넘어 실제로 이 앨범의 트렌디한 만듦새로 이어졌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곡 선택 때부터 정국 본인을 비롯해 섬세한 A&R 팀들의 선별 작업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고, 앨범의 플로나 전·후반부의 정서 변화에 이르기까지 하이브가 공들인 흔적이 곡들의 퀄리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최근 K팝에는 미국 정상급 팝 프로듀서들의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는 국내 작곡가나 주문형 시스템에 최적화된 유럽 계열의 작곡가가 많이 포진돼 있지만, 여전히 그 미세해 보이지만 큰 퀄리티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정상급 팝 프로듀서들과 작곡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정국의 'Golden'은 팝에 '손색없는' K팝 음반이 아니라 또 하나의 정상급 '팝' 음반이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타이틀 곡인 《Standing Next to You》는 몇 가지 측면에서 이 앨범의 완성도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얼핏 들으면 이 곡은 최근 몇 년간 가장 유행하고 있는 디스코/훵크 스타일의 익숙한 레트로 댄스 팝으로 들리지만, 좀 더 주의 깊에 들어보면 오프닝 시퀀스부터 차별화가 이뤄짐을 알 수 있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이 계열을 시도했던 K팝 대부분이 업비트의 흥겨움과 발랄함을 강조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곡은 격렬하고 긴박한, 체감상 꽤 길게 이어지는 오프닝의 강렬한 사운드를 통해 다소 과장되게 긴장감을 설정하고 그 이후에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엇박과 레이드백 그루브를 통해 그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3분30초의 그다지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긴박한 변화들이 만들어지며 색소폰 연주와 베이스 솔로 등 보컬을 제외한 반주의 매력도 나름 돋보이는, 상당히 공들여 완성한 대중적인 작품이다. 앨범 발매 전에 발표돼 이미 큰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여전히 이 앨범의 최고 곡이기도 한 《Seven》이랄지 《3D》 역시 현재 팝의 최신 트렌드를 고스란히 반영한 곡들로, K팝을 넘어선 글로벌 팝 아티스트의 앨범임을 감안할 때 그 노골적 대중성은 오히려 미덕이 된다. 물론 이 같은 선택은 차트에서의 성공으로도 충분히 보상받고 있다. 《Seven》과 《3D》는 모두 빌보드 싱글 차트 5위권에 연속으로 진입하며 K팝 역사를 새로 썼다. 키드 라로이와의 협업곡 《Too Much》도 11월자 빌보드 차트에서 2주 연속 핫100에 오르는 또 하나의 기록을 만들었다. 이제 막 앨범이 공개된 만큼 추가적인 차트 기록이 곧 추가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22년 3월10일 BTS가 서울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BTS PERMISSION TO DANCE - SEOUL'에서 열창하고 있다. ⓒ뉴시스

세계 정상급 팝 프로듀서 및 작곡가들과 협업

정국의 보컬은 방탄소년단 시절과는 다른 복잡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보컬리스트로서의 기술적인 성장과 함께 BTS의 메인보컬이 아닌 솔로 가수로서 정국을 리브랜딩하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노골적이지 않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관능미다. 들썩이는 라틴 리듬 위에 속삭이듯 간절함을 호소하는 《Closer to You》를 비롯해 역시 라틴 음악 기반의 《Please Don't Change》, 독특한 이펙트의 보컬톤을 선보이는 R&B 곡 《Somebody》까지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곡에서 보여주는 정국의 어른스러움은 이 앨범의 가장 중요한 매력이자 지향점이다. 《Seven》과 《3D》 등 소위 '19금' 딱지가 붙은 곡이 두 곡이나 되지만 가사의 내용만을 보자면 미국 주류 팝에 비해 여전히 최소한의 성적 어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솔로 가수로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지만 여전히 BTS의 일부로서 그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큰 파격보다는 자연스러운 변신을 전달해야 한다는 고민이 느껴지는 부분으로, 방탄소년단의 1막을 정리하는 솔로 활동의 마지막으로서는 적절한 수준의 타협으로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와 지향점으로, 이 앨범에서 드러난 방향성을 봤을 때 향후 한층 더 나아간 파격과 퇴폐미가 있는 사운드와 가사를 들고 정국이 돌아온다고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닐 듯싶다.

이 앨범은 크게 보컬리스트 정국의 두 가지 측면, 리드미컬함과 서정미 두 가지를 정확히 같은 비중으로 전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건 정국이 뮤지션이자 퍼포머이기에 앞서 재능 있는 보컬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업템포 곡들은 주로 정국의 보컬이 가진 리듬감과 바이브에 최적화돼 있다. 리듬 변화에 대응이 빠르고, 음색과 비브라토가 여느 영미권 팝 가수와 함께 들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현대적인 정국의 보컬은 라틴과 R&B가 대세를 이루는 현대 주류 팝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이 앨범을 반복해 듣는다면 감성적인 미디엄 템포 혹은 슬로 넘버들이야말로 보컬리스트 정국의 가장 개인적이고 온전한 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들어도 에드 시런의 시그니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Yes or No》나 어쿠스틱한 따뜻함이 매력인 《Too Sad to Dance》도 좋지만 가요 발라드와는 사뭇 다른 팝 발라드 《Hate You》는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톤과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두터운 보이싱과 텍스처, 리듬에 대한 제약 없이 애절한 가사를 풀어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이 곡은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라 말할 수 있다. 비슷한 감성을 《Shot Glass of Tears》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팝의 레전드인 마이클 잭슨이나 브루노 마스 등을 두루 떠올리게 하는 섬세한 떨림, 감성적이면서도 파워풀한 가창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고루 갖춘 보컬이면서도 앳된 청순함을 간직한 정국의 장점이 잘 담긴 곡이다.

9월23일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에서 BTS 맴버 정국의 공연에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AP 연합

'BTS 이후'를 준비하다

처음에는 《Seven》이라는 싱글 한 곡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음악적인 포부가 하나둘 커지면서 한 장의 풀 앨범으로 확장됐다고 하는 'Golden', 하지만 다 듣고 보니 그 선택의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방탄소년단의 메인보컬로도 충분한 능력을 입증해 왔고, 그간 발표한 몇몇 싱글만으로 일부 갈증을 채워주긴 했지만 여전히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은 많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솔로 앨범을 발표했을 때 미국 주류 팝에 가장 어울리는 멤버'라는 기대감은 결국 'Golden'의 결과물로 해소됐고, 그가 방탄소년단의 틀을 떠나 주류 팝 시장에서 원하는 포맷에 최적화됐을 때 어떤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쇼케이스로서는 의심할 바 없이 좋은 출발이었다. 지난 몇 년간 저스틴 비버와 해리 스타일스로 양분됐던 주류 팝 남성 보컬리스트의 경쟁에 이제 정국이 뛰어들고 있다. 아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한국 대중음악에는 대단한 성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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