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물건 꺼내와 작업자 주고 포장·분류도 자동화 [현장]
1800여평(6천여㎡) 규모의 공간에 영양제 등 건강기능식품이 담긴 바구니(가로 60㎝·세로 40㎝·높이 40㎝) 7만6천개가 7m가량 높이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마치, 레고 블록을 빈 곳 하나 없이 빼곡하게 조립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모두 16단으로 켜켜이 놓인 바구니 제일 상단에서는 같은 크기의 붉은색 직육면체 피킹 로봇 140대가 분주히 오가며 바구니를 골라 작업대로 내려보낸다.
씨제이(CJ)대한통운이 지난 8일 공개한 인천광역시 운서동 글로벌권역물류센터(GDC)의 ‘오토스토어’는 여느 물류창고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수많은 작업자가 일일이 찾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온라인 쇼핑몰에 물품 주문이 들어오면, 실시간으로 피킹 로봇이 움직이며 해당 상품이 담긴 바구니를 끌어올려, 리프트를 통해 제일 아래층에 있는 작업대로 내려보냈다. 작업자가 하는 일은 로봇이 보내온 바구니에서 주문 수량에 맞게 물건을 꺼내, 택배 박스에 담는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사람이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사람을 찾아오는 셈이었다.
이경진 씨제이대한통운 초국경택배(CBE)운영팀장은 “고정식 철제 선반에 물품을 보관하는 기존 물류센터 방식과 비교했을 때, 오토스토어는 사람이 지나다닐 공간이 필요없고 물품도 높이 쌓을 수 있기 때문에 공간을 4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며 “24시간 작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류 현장에서 이런 오토스토어를 쓰는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하다고 씨제이대한통운 쪽은 설명했다.
검수·포장·분류 작업도 사람 손을 타지 않았다. 주문 수량에 맞게 상품을 담은 택배 박스를 작업자가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기만 하면, 자동으로 검수와 포장작업을 거쳐 배송될 국가별로 상품이 분류됐다. 검수작업은 택배 박스가 중량검수대를 지날 때, 측정되는 무게와 주문 정보에 표기된 상품 총 무게를 따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팀장은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로봇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봇과 사람이 공존하는 시스템”이라며 “오토스토어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12월부터는 1일 최대출고량이 기존 2만 상자에서 3만 상자로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동화 시스템이 마련된 글로벌권역물류센터는 국외직구가 일상화하면서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배송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주요 대륙별로 구축한 곳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이른바 ‘초국경 택배’의 아시아 거점인 셈이다. 씨제이대한통운은 미국 건강기능식품 기업 아이허브와 배송 계약을 맺고, 2019년부터 이 센터를 운영해 왔다. 아이허브가 주요 상품 주문량을 예측해 이 센터에 한 달 치 물품을 보내놓으면,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씨제이대한통운이 일본·싱가포르·오스트레일리아(호주)·카자흐스탄 등 주변 나라에 배송하는 방식이다. 다만, 국내 소비자는 이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현행법상 국외에서 글로벌권역물류센터로 들어온 상품은 국외 소비자에게만 배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씨제이대한통운이 시장 선점을 위해 물류 작업 자동화 등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초국경 택배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어서다. 앞서 지난해 글로벌 물류 리서치 기관인 ‘트랜스포트 인텔리전스’는 2026년께 초국경 택배 물류시장 규모가 1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2021년 시장 규모는 97조원이었다. 5년 새 시장 규모가 2배가량으로 커질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역량을 확보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 씨제이대한통운의 전략이다. 아이허브와 손잡고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중동지역 물류 거점으로 활용할 글로벌권역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이 회사 허신열 상무는 “우리나라는 일본·싱가포르·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다른 나라에 견줘 물류 거점으로서 지리적 매력이 크고, 항공 편수나 운임 등 운송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높다”며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국경 택배 서비스를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천/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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