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사람까지…5년 만에 밝혀진 영국부부 숨진 이유
영국인 부부 존 쿠퍼(당시 69살)와 수전 쿠퍼(당시 63살)는 2018년 8월20일 이집트 후르가다의 한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딸은 호텔방에 쓰러져 신음하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방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존은 이미 숨졌고, 수전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몇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으며 당시 영국 언론은 쿠퍼 부부의 사망 사건에 주목했고, 영국 정부는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조사를 진행했다. 5년이 지나 쿠퍼 부부의 사망원인이 빈대 살충제 연기를 흡입한 탓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1일(현지시각) 영국 비비시(BBC) 등은 5년 전 쿠퍼 부부가 호텔 옆 방의 빈대살충제 연기를 마신 뒤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5년 전 부부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당시 이집트 당국은 범죄 혐의는 없다며 쿠퍼 부부가 대장균으로 인해 사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유족은 이를 믿지 않았고, 영국 정부도 계속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과정에서 독성 화학 물질 흡입 가능성이 거론됐다.
부부가 살았던 영국 랭커셔주의 제임스 아델리 수석검시관이 최근 밝힌 조사결과를 보면, 당시 호텔은 쿠퍼 부부 사망 전날 바로 옆 객실에서 빈대 방역을 했다. 두 객실은 문 하나로 연결돼있지만, 잠가놓은 상태로 각각 투숙객이 머물 수 있는 구조다. 호텔은 ‘람다’(Lambda)라는 이름의 살충제를 훈증 방식으로 방역했고, 연기가 쿠퍼 부부 객실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객실 사이 문틈을 테이프로 밀봉했다고 한다.
그러나 테이프 밀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옆방으로 살충제 연기가 흘러들어 갔다. 특히 빈대 살충제를 희석하기 위해 사용한 ‘디클로로메탄’이라는 화학물질이 문제가 됐다. 디클로로메탄은 한국에서 유독물질로 지정돼 있는데, 인체에 흡입될 경우 혈액에 일산화탄소 대사물을 발생시켜 저산소증을 유발시키고, 일산화탄소 중독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비비시는 일부 국가에서 디클로로메탄을 살충제 희석제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아델리 검시관은 쿠퍼 부부가 디클로로메탄이 포함된 연기를 마신 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영국 외무부는 이집트 당국에 사건과 관련해 정보를 10여차례 넘게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한다.
성인인 딸 켈리 오메로드는 검시관의 발표 뒤 비비시에 “지난 몇 년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조사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것은 괴로웠지만, 엄마와 아빠를 위해 해야 할 일이었다”며 “받아야 할 답을 얻음으로써 작은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호텔이나 이집트의 입장은 현재 나오지 않았다.
한편, 한국에서는 디클로로메탄이 살충제에 사용되지 않는다. 질병관리청은 빈대 방역에 효과가 없다며 훈증 방식의 빈대 방제를 자제하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빈대 목격 신고가 늘자 지난 7일 정부는 국내에 빈대 방역용으로 승인된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 효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등 대체 살충제를 조속히 도입하기로 했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은 10일 빈대 방제용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디노테퓨란으로 만든 살충제 8개 제품을 긴급 사용 승인했다고 밝혔다. 긴급 사용된 제품은 전문 방역업자가 사용하는 방역용으로 가정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질병관리청은 가정에서 가정용 살충제를 사용하되, 고온 살균 방식을 권장한다. 빈대가 서식하는 가구 틈과 벽 틈에 스팀 고열을 분사하거나 빈대에 오염된 옷들은 50도 이상 건조기에서 30분 이상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또 질병관리청은 진공청소기를 이용해 빈대에 오염된 모든 장소를 청소하고, 진공 흡입물은 봉투에 밀봉하여 폐기하라고 권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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