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공항서 22시간 비행기 지연... 대법 “승객 정신피해 배상해야”
항공기가 장시간 지연될 때 항공사가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승객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A씨 등 269명이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A씨 등은 2019년 9월13일 오전 1시10분쯤 태국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출발해 같은 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체 결함으로 운항이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발이 묶였다. 대부분 승객은 예정보다 약 22시간 늦은 오후 11시40분에야 한국행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이후 승객들은 항공사를 상대로 1인당 7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국제항공운송에서의 일부규칙 통일에 관한 협약(일명 몬트리올 협약)’을 적용해 항공사의 정신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몬트리올 협약은 출발지와 도착지가 모두 협약 당사국인 경우 각 나라의 민법·상법보다 우선 적용되는 규약이다. 태국과 한국 모두 이 협약에 가입돼 있다.
이 협약 19조는 항공운송인이 승객이나 수하물의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원칙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이 ‘손해’가 재산상의 손해만을 뜻하는지 정신적 손해도 포함하는지가 명시되지 않아 법원에선 매번 달리 판단해왔다. 다만 어느 경우라도 항공운송인이 승객의 손해를 피하기 위한 조치를 다 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책임을 면한다.
1·2심은 몬트리올 협약이 규정하는 손해에는 정신적 손해도 포함된다며 아시아나항공이 승객들에게 1인당 4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아시아나항공이 항공기 결함 사실을 알면서도 승객들에게 항공편 취소를 뒤늦게 알린 점 등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로 봤다.
대법원도 아시아나항공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몬트리올 협약 19조의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재산상 손해만을 의미하고 정신적 손해는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면서도 국내법 기준에 따라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했다.
같은 날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도 B씨 등 77명이 제주항공을 상대로 제기한 유사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항공사가 1인당 40~70만원을 배상하도록 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 등은 2019년 1월 필리핀에서 제주항공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항공기가 엔진 연료공급 이상으로 출발하지 못해 19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제주항공은 승객의 손해 방지를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했으므로 면책된다고 주장했지만 1·2심에 이어 대법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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