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키워준다”는 거짓말…‘출산지원금’이란 덫
예산 증가율과 반비례하는 출산율…현금성 지원보다 공공 산후조리원 등 인프라 확대 우선돼야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서울 송파구의 송아무개씨(36)는 지난 10월 첫아이를 낳았다. 곧바로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송씨는 온라인으로 '첫만남 이용권'을 신청했다. 이는 정부가 출생아 1명당 무조건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이다. 곧 송씨 통장에는 200만원이 입금됐다. 여윳돈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조리원 퇴소를 앞두고 받아든 비용 명세서에는 370만원이란 금액이 적혀 있었다. 조리원 원장은 "보통 첫만남 이용권 전액을 조리원 비용에 쓴다"며 지원금과 자비로 분할 결제할 것을 권했다.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기도 전에 지원금이 전부 동난 셈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출산지원금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올해 태어난 아이가 영·유아기 때 정부 지원금만 최대 4000만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내년에는 재정 확대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출산율은 오히려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물가 인상으로 부모가 체감하는 실질적 혜택도 줄어들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원금 550만원, 조리원·마사지 결제하니 '0'
현재 출산 전후로 정부가 지급하고 있는 지원금은 △건강보험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100만원) △첫만남 이용권(200만원) △부모급여(0세 월 70만원, 1세 35만원) △아동수당(0~7세 월 10만원) 등이다. 또 서울시는 임신한 시민을 대상으로 △서울형 산후조리경비(100만원) △임산부 교통비(70만원) 등을 지급하고 있다. 모두 소득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보편복지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중 부모급여와 아동수당 첫 달치만 포함해 출산 후 1개월 내에 들어오는 지원금을 모아보면 총 550만원이다. 그 밖에 소득액과 거주 지역, 첫째·둘째 여부 등에 따라 추가 지급되는 지원금이 따로 있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첫째 아이 출산 시 정부·서울시 지원금과 별도로 200만원을 준다. 다만 정부가 2022년부터 첫만남 이용권을 지급하면서 서울 25개 자치구 중 20곳은 자체 지원금을 중단했다. 즉 서울에 사는 대다수 부모의 경우 지출이 많은 출산 직후에는 정부와 서울시 지원금 550만원에 의존하게 된다.
부모는 지원금을 신청하자마자 청구서를 받아들게 된다. 산부인과에 내는 입원비·수술비 등 분만비는 별론으로 하고, 부모를 허탈하게 하는 첫 번째 관문은 산후조리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산후조리원 전국 평균 이용요금(2주 일반실 이용 기준)은 2017년 241만원에서 2022년 307만원으로 약 60만원 올랐다. 서울만 놓고 보면 같은 시기 317만원에서 410만원으로 올랐다. 인상 폭이 100만원 가까이 된다. 출산지원금으로 볼 수 있는 이득이 조리원 요금 인상 폭으로 인해 모두 상쇄돼 버린 셈이다.
요금이 저렴한 공공 산후조리원이 있긴 하다. 그러나 현재 서울에서는 송파구에 있는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가 유일하다. 송파 구민은 물론 다른 지역 주민도 200만원 내외로 이용할 수 있어 인기가 많지만 그만큼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다.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 관계자는 "내년 2월 중순까지 입소 대기자가 모두 차서 지금 예약하면 그 이후에 입소가 가능할 것"이라며 "예약이 아주 빨리 끝나기 때문에 서두르는 게 좋다"고 했다.
'조리원 무용론' 있지만 선호도는 절대적
그 외에 조리원이 외부 위탁업체에 맡긴 산후마사지 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 부담은 더 커진다. 서울시가 지급하는 산후조리 경비 100만원의 용처는 산후마사지와 산후도우미 고용, 체형교정 등 산후조리 관련 서비스로 제한돼 있다. 산후마사지는 1회당 15만~25만원 선이다. 일부 업체는 아예 마사지 횟수를 정해 놓고 100만원 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산후조리 경비 100만원 중 마사지에 쓸 수 있는 상한선은 50만원이니 나머지 금액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산모 송씨는 "마사지 비용이 너무 비싸 고민했지만 산후조리 경비는 사용기한이 있는 데다 마땅히 쓸 만한 곳도 없어 의도치 않게 과소비를 하게 됐다"고 했다.
산후조리원 요금 인상으로 불만이 쌓이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고까운 시선이 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산후조리원을 왜 굳이 비싼 돈 주고 이용하느냐'는 것이다. '우리 때는 산후조리원 없이도 잘 키웠다'는 장년 세대의 시각도 무시하기 힘들다. 일단 산후조리원이 한국에만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코트라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2010년대 초반에 이미 산후조리원 산업 규모가 27억 위안(4800억원)으로 성장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도 산후조리원 이용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작 외국은 조리원을 한국의 선진 출산 문화로 보고 배우려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조리원이 산모 건강 회복에 효과가 있느냐 여부는 의학적으로 논쟁 대상이다. 하지만 그 선호도와 만족도만 놓고 보면 이미 다수의 선택을 받은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산모들이 선호하는 산후조리 장소는 조리원이 78.1%로 본인 집(16.9%)에 비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9로 친정(4.2)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최소한 플라세보 효과는 부인하기 힘든 셈이다.
학계에선 조리원 이용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배경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남편이 산모와 함께 육아휴직을 내기 힘든 국내 현실이 조리원 의존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최근 산모와 함께 서울 금천구의 한 조리원에서 숙식한 남편 김아무개씨(36)는 "모유 수유, 유축, 육아 교육 등 조리원 일정이 생각보다 바쁘다는 사실에 놀랐고, 남편들이 2주간 휴가 내기 힘들어 조리원에서 혼자 지내는 산모가 많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고 말했다. 한국산후조리원협회 사무국장은 "맞벌이가 일반화된 한국 현실에서 산모의 빠른 사회 복귀를 돕는 조리원을 허영심으로 간주하는 건 편협한 시각"이라며 "출산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연로한 친정 엄마가 손주를 돌보기 힘든 현실도 간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산후조리원을 나오면 집에서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육아용품 지출액이 점점 커진다. 요즘은 '당근'을 필두로 한 중고 거래가 활발하기 때문에 웬만한 육아용품은 중고로 얻는 게 가능하다. 그럼에도 기저귀, 물티슈, 의약품, 분유 등 소모품은 구입할 수밖에 없다. 젖병은 세균 오염 때문에 사용한 지 4~5개월이 지난 제품은 교체가 권장된다. 따라서 새 제품으로 구입하는 편이 좋다. 엄마들이 가장 선호하는 영·유아 브랜드로 꼽힌 일본 D사의 젖병은 1개당 약 3만원이다. 2~3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해야 하는 유아 특성상 젖병은 1개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비싸진 육아용품…'맘마존 국민템' 50만원↑
또 최근 수유에 도움을 줘서 '육아 필수템'으로 떠오른 제품들이 있다. 젖병소독기, 분유포트, 분유제조기 등이 그것이다. 소위 '맘마존'이라고 불리는 이들 제품은 새것으로 구입하면 50만원이 넘는다. 경기 성남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진아무개씨(35)는 "육아시장의 상술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 산후조리원 등을 일절 이용하지 않았고, 분유도 구입하지 않고 완모(오로지 모유만 수유하는 것)를 했다"며 "그럼에도 최소한의 육아용품만 사는 데 100만원이 넘게 들어갔다"고 떠올렸다.
지금은 부담이 더 커졌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 10월 종이기저귀 가격 수준은 전년 동월 대비 7.2% 올랐다. 유아용 학습교재는 7.5%, 분유는 10.5%, 유아동복은 13.6% 각각 증가했다. 모두 같은 기간 물가 총지수 인상률인 3.8%를 크게 웃돈다. 물가 상승 폭은 고스란히 지원금 혜택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육아용품도 아끼려면 얼마든지 아낄 수 있다. 젖병을 매번 열탕에 삶으면 젖병소독기를 안 써도 살균이 가능하다. 맘카페에서도 '육아는 템빨(육아용품이 있으면 육아가 월등히 쉬워진다는 뜻)' '과도한 마케팅의 산물' 등 의견이 분분하다. 익명을 요구한 18년 차 산후도우미 A씨(65)는 "과거에는 육아용품 없이 힘들게 아이를 키웠으니 젊은 세대도 견디라고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육아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힘든데 문명의 혜택을 억지로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지원금 회계를 아무리 '짠물 경영'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적자를 면하기 힘들다. 정부는 출산 후에도 부모급여(70만원)와 아동수당(10만원)으로 매달 80만원을 지급한다. 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도 가족과 출산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영·유아 자녀 1인당 지출액은 월평균 60만6000원으로 조사됐다. 초반에는 지원금이 지출액을 웃돌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그런데 부모급여는 1세부터 월 35만원으로 줄어든다. 즉 1년이 지나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것이다. 정부가 내년부터는 부모급여를 늘려 0세에게 월 100만원, 1세에게 50만원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흑자 회계가 다소 연장될 전망이다. 그래도 결국 지출액을 충당하긴 힘들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월평균 지출액은 78만5000원, 중·고등학생이 되면 91만9000원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서울시가 키워준다'는 각오로 안심 돌봄, 편한 외출, 건강 힐링, 일·생활 균형 4대 분야 사업 28건을 추진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9월 '엄마아빠 행복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면서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직접 주재하며 부모급여 인상 방안 등을 논의했다. 모두 '나라가 키워준다'는 취지를 깔고 있다. 공통된 방법은 예산 확대다. 서울시는 엄마아빠 행복 프로젝트에 5년간 2조4000여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의 저출산 대응 예산은 매년 증가해 2022년 51조7000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했다.
반면 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2015년 이후 매년 하락하고 있다. 2018년 0.98명을 기록해 1명 밑으로 떨어지더니 2022년에는 0.78명으로 주저앉았다. 통계청은 올 4분기에는 0.6명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실상 통계만으로 보면 돈을 쓰면 쓸수록 아이 울음소리가 더 잦아드는 모양새다.
'돈 범벅'인 저출산 대책…"정부의 고집"
예산 확대가 저출산 해결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이미 구문(舊聞)이 된 지 오래다. 실증적 근거도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2009~21년 226개 기초단체의 출산장려정책 효과를 분석한 결과, 출산장려금 100만원 지급 시 합계출산율은 0.03명 증가했고, 인프라 예산 100만원 상승 시에는 0.098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프라 확대가 현금성 지원보다 3배 이상 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여야는 국회에서 각각 공공 산후조리원 확대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현재 전국 산후조리원 477곳 중 공공 조리원은 16곳(3.5%)에 불과하다.
종교계 차원의 저출산 해결법을 모색해온 이재훈 온누리교회 담임목사(한동대 이사장)는 시사저널에 "정부에서 인구문제에 관해 엉뚱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직격했다. 이어 "저출산은 결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다양한 채널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도 정부는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하던 것만 고집한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교육 개혁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녀 양육비 중 모든 기간 통틀어 사교육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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