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시리즈 우승하고도 안 울었는데…” ‘헐크’ 이만수 울린 첫 승[이헌재의 인생홈런]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포수로 활약했던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65)은 지난달 20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대통령궁 앞에서 ‘속옷 세리머니’를 했다. 이 감독은 상의를 탈의한 채 라오스 야구 대표팀 선수단 및 관계자 40여 명과 함께 대통령궁 주변을 돌았다. 라오스 대표팀의 항저우 아시안게임 1승 공약을 실천한 것이다.
이 전 감독이 처음 이 공약을 내세운 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부터다. 하지만 당시 예선 두 경기에서 모두 패하면서 다시 5년 뒤로 미뤄졌다.
올해도 쉽지 않았다. 라오스는 태국과의 예선 라운드 첫 경기에서 1-4로 패했다. 마지막 기회는 싱가포르와의 9월 27일 열린 예선 2차전이었다. 라오스 대표팀은 이날 안타를 5개밖에 치지 못했다. 실책도 4개나 범했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8-7 승리였다. 이 전 감독이 라오스에 야구의 씨앗을 뿌린 지 10년째에 거둔 값진 1승이었다. 이 전 감독은 “경기 후 아무도 없는 코치실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을 때도, 선수로 타격 3관왕을 했을 때도 울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은 왠지 모르는 눈물이 한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고 말했다.
꿈에 그리던 속옷 세리머니는 역사적인 승리 후 약 3주 후에 현실이 됐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건 아니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에서 대통령궁 앞에서 상의를 벗고 달린다는 것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이 전 감독의 헌신을 잘 알고 있는 라오스 정부도 이례적으로 이 행사를 허가했다. 다만 속옷이 아닌 마라톤 복장을 갖추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 전 감독은 “대통령궁이 보이는 곳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소리 지르면서 한 바퀴 돌았다”며 “2007년 5월 2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만원 관중 달성 공약이었던 팬티 퍼포먼스를 펼친 것처럼 이번에도 기분 좋게 세리머니를 했다”고 전했다.
이 전 감독의 팬티 세리머니 역시 당시로선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SK 수석코치이던 이 전 감독은 “홈구장이 만원 관중으로 들어차면 팬티만 입고 뛰겠다”고 약속했고, 3만400명의 만원 관중이 들어서자 흔쾌히 약속을 지켰다. 이 전 감독은 원숭이 엉덩이 모양을 덧붙인 익살스런 팬티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달라지지 않은 것은 이 전 감독의 몸이었다. 2007년 팬티 세리머니 당시 그는 40대 후반에도 탄탄한 몸을 자랑했다. 그런데 어느덧 6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그는 여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40살, 많게는 50살 가까이 차이나는 선수들 틈에서도 그는 전혀 부끄럽지 않은 몸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유니폼을 입으면 그는 더욱 ‘청춘’이 된다. “유니폼만 입으면 없던 힘도 생겨난다”는 그는 지금도 기회가 될 때마다 직접 야구를 한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주최한 ‘2023 NO Brand배 고교 동창 야구 대회’에도 선수로 출전했다. 타석에서는 곧잘 안타를 때렸고, 올스타전에서는 모처럼 포수 마스크도 썼다. 그의 모교인 대구상원고는 지난 달 29일 서울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군산상일고에 8-9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평생을 했던 야구라서 그런지 지금도 공이 잘 맞더라”며 “65살이 된 지금도 공을 칠 수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다. 행여 다칠까 봐 풀 스윙을 하진 않는다”며 웃었다.
현역 선수 시절 그의 몸무게는 82kg이었다. 현재 그의 몸무게도 82kg이다. 꾸준히 몸무게를 유지한 것 같지만 그도 불어나는 살이 큰 고민이었던 적이 있다. 그는 SK에서 2007~2011년까지 수석코치와 2군 감독 생활을 했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3년간 감독을 했다. 엄청난 승부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사 탓에 그때 살이 많이 쪘다. 감독직을 내려놓고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운동량은 줄었는데 먹는 건 그대로니 살이 찌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때 그의 몸무게는 94kg까지 올라갔다. 건강 검진 결과 모든 검사 수치가 빨간색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그는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하루에 두 끼만 먹고, 만 보 이상을 걷는 거였다. 선수 시절부터 그는 결심한 게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독종이었다. 그는 지금도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려 애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인 2021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그는 베트남 야구협회 일을 돕기 위해 베트남에 입국했다가 2주간 격리 통보를 받았다. 약 5평 안팎의 호텔 방안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걸었다. 2주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루 2만 5000보씩을 걸었다. 식사로 나온 도시락은 반 정도만 먹었다. 그는 “처음엔 열심히 하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아 걱정이 되기도 했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 살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이후 쑥쑥 빠지더라. 10kg이상 넘게 감량한 지금은 예전처럼 가벼운 몸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식생활과 걷기보다 그의 현재의 탄탄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바쁘고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간다. 재능기부를 하기 위해 1년에 전국 50여 곳을 돈다. 고등학교는 3박 4일, 중학교는 2박 3일, 초등학교는 당일이 기본이다. 고교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을 찾아 미래의 포수들을 찾는 것도 그의 일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재능기부 위원 자격으로 유소년 캠프에도 빠짐없이 나간다. 여기에 라오스와 베트남 등 외국도 종종 나가니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는 이달 말에도 야구를 전수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출국한다.
이 전 감독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는 제주도에서 열린 ‘리커버리 야구단’의 미니캠프에도 참가했다. 리커버리 야구단은 홈리스와 조현병 환자, 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인 야구단이다. 그는 이 야구단 총재도 맡고 있다.
그가 또 많은 신경쓰는 건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티볼 활동이다. 발달장애인 야구단 협회 명예회장을 맡고있는 그는 6월에 제1회 발달장애인 티볼 야구대회를 열었다. 그는 “야구가 사회에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 리커버리 야구단과 발달장애인 티볼 등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며 “몸은 하나인데 할 일이 너무 많다. 이 모든 일들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야구를 다소 늦게 시작한 그는 ‘성실한 선수’의 대명사였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하루 4시간만 자면서 훈련에 매진했다. ‘독종’과 함께 ‘쌍코피’라는 별명도 그때 생겼다. 그는 “한양대에 다닐 때 오전 4시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뛰어 여자 친구 집에 갔다. 오전 5시부터 데이트를 한 것이다. 그 여자친구가 지금은 내 아내로 평생 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6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는다.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인생을 산다”며 “지금도 야구가 너무 좋다. 유니폼을 입으면 신이 나서 강연을 할 때도 꼭 유니폼을 입는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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