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사랑이에요...‘로맨스 스캠’ 고작 징역 1년6개월? [법조인싸]

최예빈 기자(yb12@mk.co.kr) 2023. 11. 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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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빙자 사기죄는 없어 일반 사기죄
피해액 1억원 이하면 징역 1년6개월
로맨스스캠 近 3년간 10배 이상 폭증
“재력 과하게 과시하는 상대 의심해야”
사기 혐의 등으로 검찰 송치가 결정된 전청조 씨가 10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에 나와 동부지검으로 압송되면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2023.11.10 [사진 = 연합뉴스]
“우리 아버지는 검사, 어머니는 산부인과 의사야. 큰형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작은 형은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던 사업가, 작은 처형은 피부과 의사지. 그리고 나도 의사로 근무하고 있어.”

누가 봐도 탐나는 신랑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집안도 대단하고 본인도 능력자네요. 하지만 그의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는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평범한 유부남이었습니다.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 재혼 상대로 알려진 뒤 사기 의혹이 확산한 전청조씨가 3일 오후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정말 안타깝게도 그의 거짓말에 2명의 피해자가 농락당했습니다. 유부남 사기꾼에게 푹 빠져버린 이 여성들은 각각 9484만8073원, 1억7000만원을 뜯겼습니다. 두 여성의 마음과 지갑을 갈취한 이 사기꾼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고작 1년6개월의 실형이었습니다.
사랑을 빙자한 사기는 일반 사기죄
팝 아티스트 낸시랭(오른쪽)과 전 남편 왕진진(전준주)이 지난 2017년 12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사랑을 빙자해 사기를 치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정말 끊이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파라다이스 그룹의 혼외자로 사칭하면서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를 속인 전청조 씨 사건이 세간을 뜨겁게 달궜죠. 그러고 보니 낸시랭을 속인 전준주(왕진진)도 파라다이스 그룹의 혼외자를 사칭했네요. 사기꾼들의 허술한 거짓말에 어떻게 속았을까 싶지만서도 사람의 마음이란 게 쏟아지는 애정공세에 쉽게 녹아내리나 봅니다.

그런데 사랑을 빙자한 흉악 사기범들이 생각보다 가벼운 형량을 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논 만큼 다른 사기죄보다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단순히 금전적 피해만 입은 게 아니라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잖아요. 트라우마로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피해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혼인빙자 사기죄’는 없습니다. 결혼할 것처럼 속여도 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결혼이나 연애를 전제로 금품을 요구한 경우에는 혼인빙자와 무관한 ‘일반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현행법상 양형 기준을 살펴보면 1억원 미만 일반 사기는 기본 6개월에서 1년6개월의 징역에 불과합니다.

사기꾼들이 무죄로 풀려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착오에 빠트렸다는 기망 의도를 입증하기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이에 돈을 빌려줄 때 차용증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죠. 그러다 보니 단순 증여인지 나중에 돌려받을 목적이 있는 것인지 입증할 서류가 없어서 죄를 묻기 쉽지 않습니다.

로맨스 스캠 ‘국제 범죄 조직’도 존재
보이스피싱처럼 조직적으로 사랑을 빙자해 돈을 뜯어내는 국제 범죄 조직도 있습니다. 이들은 국내외 조직을 연결하고 조직원을 관리하는 총책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거짓된 프로필로 피해자를 낚아채는 유인책으로 구성됐습니다. 이후 피해자가 돈을 입금하면 전달책이 해외에 위치한 조직으로 세탁해 보냅니다. 사실상 보이스피싱과 같은 구조죠. 이들은 수사기관의 검거에 대비해 조직원 상호간에도 별명으로 부르면서 자신이 맡은 역할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조직원을 서로 인식할 수 없도록 고도로 점조직화돼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라크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났는데 전역하려면 장군에게 돈을 줘야 합니다. 한국에 가면 돌려줄테니 돈을 보내 주세요.
이 로맨스스캠 조직은 한국의 피해자들 5명에게 수시로 사랑을 고백하며 꼬여내 총 2580만원을 갈취했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전달책으로 활동하던 60대 노인이 꼬리가 밟혀 징역 10개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래도 사랑(?)은 계속된다
이미지와 내용 상관없음. [사진 = ENA 공식 홈페이지]
전청조 씨 사건으로 사랑빙자 사기 혹은 로맨스 스캠이 물밑으로 올라오면서 유사 사건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울산판 전청조 사건이 터졌죠. 소개팅 앱에서 만난 남성 7명을 속여 30억원을 가로챈 40대 여성이 붙잡혔다고 합니다.

실제로 로맨스 스캠 피해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집계한 로맨스스캠 피해액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로맨스 스캠 피해 건수는 총 281건, 피해액은 총 92억2000만 원에 달합니다. 증가세도 가파릅니다. 로맨스 스캠 피해액은 2020년 3억2000만원에서 지난해 39억6000만원으로 늘었습니다.

로맨스 스캠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경찰은 로맨스 스캠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SNS에서 무분별한 친구 추가 자제 ▲외모·재력 등을 과도하게 과시하는 상대는 의심 ▲해외교포·낯선 외국인과의 인터넷상 교제는 신중히 고려 ▲인터넷상으로만 교제하는 경우 부탁을 가장한 금전 요구에 입금 금지 등을 꼭 염두해달라고 당부합니다. 사기꾼들의 사랑은 계속 되겠지만 더 이상 농락당하는 피해자들이 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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