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환자 대형병원 쏠림 '원격협진'으로 해결...원격진료 보조"
2000년대 태어난 이른바 코로나학번(2020) 의대생 4명이 경증 환자의 동네병원 방문을 유도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는 협진시스템이다.
지난달 20일 ‘제11회 범정부 공공데이터 창업경진대회 왕중왕전’에서 우수상(중소벤처기업장관상)을 받은 가톨릭대 의대 본과 2학년생 4명을 만났다. 강동하, 명재효, 문승환, 조성연 4명으로 구성된 ‘일점사’ 팀은 예선 참가팀 2724개 중 최종 본선에 오른 10개 팀 중 하나다.
평소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끼리 공모전에 도전했다. 명재호씨는 “일점사라는 이름은 우리끼리 자주 가는 학교 근처 고깃집 이름으로 팀명에서도 알 수 있듯 처음부터 거창하게 사업을 해보자고 모인 건 아니다”라며 “학교에서 안 배우는 경제, 부동산, 의료체계·정책 등을 공부하기 위해 모인 스터디그룹인데 공부하던 중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나왔고 공모전에 한번 제출해보자 했던 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 AI 기반으로 자문의 매칭하는 원격협진, 원격진료와 달라
일점사 팀은 인공지능(AI) 매칭을 통해 1차 병원 의료진 간 협진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아이디어를 기획했다. 2021년 기준 경증환자의 상급병원 의료 지출비는 1조 3000억 원이다. 경증환자의 과도한 대학병원 방문으로, 1차 병원이 ‘대학병원 문지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점을 인지한 일점사 팀은 1차 병원 의사(의뢰의)와 자문의가 협진해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를 통해 1차 병원에 대한 신뢰도와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카카오모빌리티가 AI 배차 시스템을 통해 배차 대기시간을 줄이고 승객 만족도를 높였다는 점에 착안, 환자가 동네병원에 방문해 협진을 의뢰하면 AI 기반 매칭 시스템으로 자문의를 선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공공데이터에 접근해 병원 평가 등급, 교수 경력, 전문 분야, 환자 만족도 등을 확인하고 자문의를 택한 뒤 증상 및 질환에 대한 자문을 얻는 시스템이다.
본과 2학년이 되면서 더 바빠진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대학병원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기획하는 데 뜻을 모았다. 인터뷰 당일 시험을 보고 온 문승환씨는 “학교생활도 바쁘지만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생각하면 지금이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적기인 거 같다”며 “대학병원엔 있고 1차 병원엔 없는 시스템이 뭘까 생각하다가 협진시스템이 떠올랐고 이 시스템을 1차 병원으로 끌어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빅데이터와 AI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지지부진하면서 원격진료 플랫폼 업체들이 폐업 수순을 밟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해당 업체들에게 협진시스템은 원격진료 플랫폼을 더욱 무용지물로 만드는 위협으로 느껴지진 않을까라는 물음에 명재효씨는 “원격진료랑 원격협진은 아예 다른 개념”이라며 “원격진료는 환자가 의사 대면 없이 진료를 받는 것이고, 원격협진은 대면 진료를 받으면서 필요 시 다른 전문의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격진료가 자리 잡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성연씨는 “거동이 불편해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 격리가 필요해 병원에 갈 수 없는 환자 등에게는 원격진료가 필요하다”며 “원격협진은 다양한 진료과가 존재하지 않는 동네병원이나 요양병원 등에서 타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원격협진이 활성화돼도 원격의료 산업이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독창성·공익성 인정 받아...창업 위한 내공 쌓을 것
협진시스템으로 진료 및 치료를 받은 환자에게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땐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의뢰의와 자문의 사이에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묻자 명재효씨는 “협진시스템은 이미 대학병원에 존재하는 시스템으로, 환자 안전성 관련 책임은 주치의인 의뢰의에게 있다”며 “의학적 상황에 따라 자문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므로 충분히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진시스템은 대학병원 환자 쏠림을 막는다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지만, 또 다른 쏠림 현상도 우려된다. 환자는 좋은 평가를 받는 병원에서 근무 경력이 긴 의사에게 자문을 받고 싶기 때문에 특정 병원, 특정 자문의에게 쏠릴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조성연씨는 “쏠림 현상이 당연히 있을 거라고 우리도 생각하고 있다”며 “긴급하게 협진을 받고자 하는 환자와 대기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기다릴 수 있는 환자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하는 방안 등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실제 창업을 할 계획도 있다. 장관상을 받고 독창성과 공익성을 인정받았다 해도 사업을 현실화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좀 더 내력을 쌓는 시간을 갖고 아이템을 구체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회에서 받은 상금도 모두 아이디어를 실현화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창업 외에 각자 의사로서의 꿈도 키워가고 있다. 명재효, 문승환씨는 기피과인 필수과에 지망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환자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학문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필수과가 계속 기피과가 되진 않을 것이란 믿음도 있다. 문승환씨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를 포함한 필수과나 외과계열이 기피과가 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가 의사가 되는 10년 후쯤을 생각하면 오히려 현재 의사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는 인기과가 레드오션이 될 수도 있다”며 “그렇다고 필수과가 유망하다는 건 아니지만 기피해야 할 정도는 아닌 상황이 올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미래 의사로서 의료계 현안도 고민... “작지만 확실한 행복 원해”
올해 의료계에는 의대 정원 확대, 의전원 설립 및 의사과학자 양성, 필수의료 부족 및 응급실 뺑뺑이 등의 이슈가 있었다. 미래 의사로서 의료계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명재효씨는 “의대 정원을 압도적으로 늘린다면 경쟁에 밀려 반강제적으로 필수과를 채우는 인원들이 생기겠지만 이게 정말 사회가 원하는 바람직한 방향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수과 의사뿐 아니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 직업 종사자들은 모두 대우를 받았으면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그는 “자다가도 전화가 오면 뛰쳐나가 수술을 하는 필수과 의사를 비롯해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하는 모든 직업군은 그에 걸맞은 경제적 지위나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한 논리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개인이라는 점에 대한 이해도 부탁했다. 강동하씨는 “필수과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이니 어떤 전공보다 프로의식과 전문성이 많이 요구되는 분야인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동시에 의사도 행복을 누리고 싶고 법적인 관점에서 보호가 필요한 국민이라는 점을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승환씨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만큼 제일 보람이 큰 진료과인 거 같아 흉부외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며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나이 때 갖는 학생으로서의 고민도 전했다. 조성연씨는 “본과에 들어온 뒤 매주 시험이 있어 시험 당일이나 다음 날 정도가 아니면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며 “대학 축제도 가고 이성 친구도 만나고 방학 땐 해외 봉사나 인턴십 등도 하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다. 내가 선택한 전공이니까 감내해야 하지만 가끔 아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강동하씨도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있는 일상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문화생활을 좋아해서 영화를 본다거나 산책을 한다거나 티타임을 갖는 등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커리큘럼에 맞춰 생활하면 사실 주말도 거의 없다”며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이 늘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더욱 늘어날 텐데 그런 후배들에게는 의대 진학만을 목표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도 전했다. 조성연씨는 “의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의대 입학만을 목표로 달려간다면 입학하는 순간 목표가 없어진다. 좀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며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