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분의 일초' 문진승의 길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좋은 배우로 성장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목표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이유다. 배우 문진승의 길이다.
15일 개봉되는 영화 ‘만분의 일초’(감독 김성환)는 0%의 확률을 깨뜨릴 0.0001%, 그 찰나를 향해 검을 겨누는 치열한 기록을 그린 작품으로, 문진승은 극 중 꾸준한 노력으로 검도계를 제패한 일인자 태수를 연기했다.
늘 오디션을 보며 누군가 선택해 주길 기다렸던 문진승에게 ‘만 분의 일초’는 먼저 다가와 준 고마운 작품이다. 김성환 감독이 먼저 미팅을 제안했고, 그 자리에서 태수를 연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김성환 감독은 고저 없는 문진승의 목소리 톤이 태수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감독이 그런 목소리 톤을 찾았던 이유는 태수의 캐릭터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절제이기 때문이다. 과거 어떠한 사건의 가해자였던 태수는 재우가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다. 태수는 시시 때때로 감정이 요동치는 재우와는 반대로 감정의 동요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문진승은 그런 태수의 절제된 톤을 유지하는 데에 초점을 뒀다. 그는 “영화가 재우의 시점으로 전개되지 않나. 태수는 재우가 극복해야 하는 상대다. 재우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태수의 역할이 중요했다”라고 설명했다.
절제된 표정과 행동, 말투로 문진승은 태수를 재우가 아무리 부딪혀도 감정의 동요 없이 태산같이 버티고 서있는 인물로 그려냈다. 재우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 관객들이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와 정반대에 서있는 태수를 문진승이 완벽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문진승은 시나리오에서는 비워져 있었던 태수의 서사를 나름대로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태수가 어떻게 사건의 가해자가 됐고,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영화는 불투명한 유리창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정도로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문진승은 “태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자책하고, 벗어나려고 한다. 태수에게 검도는 자신을 반성하는 도구다”라고 했다.
이어 “저는 태수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태수에게 검도는 비극적인 사건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다.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더 매달렸던 것 같다. 단단해졌다기보다는 단단해지려고 했다”며 자신이 생각한 태수의 서사를 설명했다. 문진승의 생각들이 태수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태수를 그저 가해자가 아닌 조금 더 복잡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태수에게 검도가 갖는 의미가 큰 만큼, 문진승은 검도의 기초부터 맹연습했다. 문진승은 “캐스팅 확정되고 나서 검도관에 매일 같이 가서 기본 스텝부터 하나하나 다 배웠다. 용인대에 가서 실제 선수들이 검도하는 걸 보기도 했다”고 했다.
문진승은 “연습하기 전에는 검도가 저에게는 정적인 이미지였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역동적이면서 예의도 있더라. 이렇게 좋은 스포츠인지 몰랐다. 한 번 배우고 나니까 엄청난 운동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단기간에 검도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는 문진승이다. 검도 자세는 어느 정도 흉내 낼 수는 있더라도, 검도 선수들이 지닌 기세는 절대로 짧은 시간 안에 습득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이에 문진승은 검도 선수들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검도를 하는지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했다. 잡생각들을 정화하고 찰나의 순간 완전히 검도에 몰입하려고 하는 검도 선수들의 마음 가짐을 생각하고 연기에 임했다고 했다.
문진승에게 ‘만분의 일초’는 여러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생애 처음으로 영화제에 배우로 참석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기를 스크린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었다.
‘만분의 일초’ 뿐만 아니라 여러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문진승을 배우로 알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문진승은 배우가 아닌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다. 배우가 되기 전 문진승은 IT 개발자였다.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가 늘 생각하며 IT 개발자가 됐고, 독일로 유학까지 갔다. 계속해서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면서 더 나은 삶인 줄 알고 택했던 선택들이 사실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 문진승은 과거 단편 영화와 연극동아리 활동의 기억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케이스다.
물론 예상했던 것보다 배우의 길이 어렵기는 하지만, 꽤나 만족스럽다고. 문진승은 “연기에 정답이 없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깨닫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문진승은 좋은 배우의 길을 걷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문진승은 “대중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를 보고 싶어 하는 건 그 배우게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는 착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더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문진승은 오늘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자신의 길을 걷는 중이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더쿱디스트리뷰션, 한국영화아카데미]
만분의 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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