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편 지연 '정신적 피해'도 배상해야…대법, 항공사 배상 책임 인정

승객 수백명, 아시아나·제주항공 상대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법원 "운송 지연에 따른 조치 없어…1명당 40만~70만원 배상"

(서울=뉴스1) 황두현 기자 = 항공기의 출발 지연에 따른 정신적 피해도 항공사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국제항공운송 규칙을 규정한 '몬트리올 협약'에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국내법상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이모씨 등 269명이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에 1억760만원을 배상하고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씨 등은 2019년 9월13일 태국 방콕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던 중 아시아나 측의 운항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에 일부는 대체 항공편을 이용하고 나머지는 22시간이 지나 귀국했다.

이들은 출발 지연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1명당 70만원의 위자료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쟁점은 '몬트리올 협약'에 따라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그렇지 않다면 별도 법리를 적용할 수 있는지였다. 협약 19조에 따르면 운송인(항공사)은 운송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이씨 등은 "항공사가 출발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을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아시아나 측은 "운항 지연 관련 정신적 손해배상은 배상 대상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1·2심은 몬트리올 협약 19조가 운항 지연에 따른 구체적 손해를 규정하지 않지만, 국내법상 책임이 있다며 1명당 4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국내 손해배상 법리에 따르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는 경제적·재산상 손해뿐 아니라 정신적 손해도 포함되고, 이는 몬트리올 협약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지난달 26일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인용한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같은날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김모씨 등 77명이 제주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 등은 2019년 1월 필리핀에서 제주항공을 통해 국내에 입국할 예정이었으나 항공기 정비 문제로 19시간 넘게 출발이 늦어지자 1명당 180만원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몬트리올 협약에 따라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도 "손해의 배상과 범위는 국내법에 따르지만 이는 몬트리올 협약을 경제적·재산상 손해로 한정하지는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제주항공 또한 항공 운송 지연에 따른 합리적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며 1명당 각각 40만~70만원 배상 판결한 원심이 정당하다고 봤다.

ausu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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