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도 전에 이미 5000억원 손실…中 크루즈 도전은 성공할까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3. 11. 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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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언론 집계 핵심기술 자립도 22.5% 불과…
EU 기술이 64%, 나머지는 한·미·일 등이 채워
시험 운항 중인 '아도라 매직시티'(Adora Magic City, 중국명 '아이다(愛達) 매직시티')/사진=바이두

'핵심기술 자립도 22.5%, 한··일 등 17개국이 주요기술 공급, 이탈리아 핀칸티에리(Fincantieri)사가 선내 건설작업 및 자재공급망 100% 주도, 건조 전담 중국 국영 와이가오차오(外高橋)조선 이미 28억위안(약 5000억원) 손실...'

중국의 첫 초대형 크루즈선 '아도라 매직시티'(Adora Magic City, 중국명 '아이다(愛達) 매직시티')가 숱한 화제를 뿌리며 내년 1월 1일 한국과 일본을 향해 출항한다. 건조 계획 발표 이후 7년여간 중국 내에선 조선산업의 새로운 전기가 열린다는 기대감이 고조됐다. 그러나 막상 출항을 앞두고 낮은 기술자립도와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는 손실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12일 중국매체들에 따르면 아이다 매직시티는 내년 1월 1일 모항인 상하이항을 출항해 첫 향해에 나선다. 코스는 한국과 일본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유럽과 일본에 이어 대형 크루즈선 건조에 성공한 세 번째 주자가 된다. 조선 최강국인 한국도 밟지 못한 미답의 영역이다. (관련기사☞ 韓 못한 크루즈선 건조 꿈 이룬 中..1월 1일 상하이 출항)

중국 현지언론은 특히 출항이 가시권에 들어온 올해 들어 연이어 특집보도를 통해 아이다 매직시티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아이다 매직시티는 길이 323.6m, 총 톤수 13만5500톤이며 2000개가 넘는 객실에 승객 5246명을 포함해 최대 6500명을 태울 수 있다. CSSC(중국국영조선공사) 계열 CSSC크루즈와 상하이 와이가오차오가 공동 설계하고 선조했다.

크루즈선은 초대형 선박과 최고급 호텔, 엔터테인먼트 등이 결합된 종합 예술작품이다. 설계·건조기간이 길고 선주사의 주문 변경도 숱하다. 핵심 노하우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크루즈를 '왕관의 보석'이라고 부른다. 조선산업이라는 왕관의 마침표이자 가장 가치있는 영역이 크루즈라는 의미다. 항공모함과 크루즈선, 초대형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을 3대 선박으로 묶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일본도 잔혹사뿐, 높은 크루즈의 장벽
아이다 매직시티엔 크루즈선 역사상 최초로 수제맥주를 직접 만들어 공급하는 설비가 갖춰져 있다./사진=바이두
크루즈 건조 핵심기술은 150년 이상 유럽 조선소들이 독점해 왔다.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독일 메이어 베르프트, 프랑스 아틀란티크 등이 전세계 크루즈의 90%를 점유해 왔다.

한국도 크루즈시장에 도전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한때 재계를 풍미했던 강덕수 회장의 STX그룹이 2008년 노르웨이 크루즈 조선사 아커야즈(STX유럽)를 인수하며 한국 최초 크루즈선 건조의 꿈을 키웠다. 조선 후발주자였던 STX가 HD현대(당시 현대중공업),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빅3를 넘기 위해선 뭔가가 필요했고, 그때 선택한 게 크루즈였다.

STX유럽은 같은 해 첫 번째 크루즈선을 성공적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수주와 건조가 모두 STX로 인수되기 전에 이뤄져 한국의 크루즈라고 할 수는 없었다. STX유럽은 이후 3년여에 걸쳐 상당량의 선박을 수주했지만 끝내 크루즈선을 인도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STX의 크루즈사업 진출은 그룹의 퇴장을 가속화하는 결정이 됐다. STX그룹이 분해되면서 STX유럽은 핀란드 국영펀드에 매각됐다.

일본도 재미를 못봤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두 차례에 걸쳐 독자적 설계와 건조기술로 대형 크루즈선을 지었으나, 두 번 모두 프로젝트 예산이 당초 계획을 크게 상회했다. 한 번은 심지어 선박에 불이 나 미쓰비시중공업은 큰 손해를 입어야 했다. 결국 2016년에 더 이상 대형 크루즈선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일본의 크루즈 도전기도 막을 내렸다.

한국과 일본의 실패를 옆에서 본 중국은 크루즈 사업에 극도로 신중하게 접근했다. CSSC는 2018년 세계 최대 크루즈 운영사인 카니발과 60대 40 지분비율로 합작사 CSSC카니발을 설립했다. 카니발은 중국 내에서 이전부터 크루즈 사업을 오래 진행해 왔다. 중국 조선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또 카니발을 통해 이탈리아 핀칸티에리까지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였다.

낮은 국산화율에 발목…벌써 손해보고 있는 中
크루즈선 내부에 화려한 샹들리에를 조립하는 과정./사진=현지언론 캡쳐
그러나 원천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추진한 합작들이 오히려 독이 되는 분위기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아이다 매직시티의 핵심기술 국산화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며, 심지어 국내 첫 대형 항공기 프로젝트에 비해서도 국산화율이 더 낮다"고 지적했다. 아이다 매직시티의 핵심 장비는 한국와 미국,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무려 17개국 공급업체가 공급했다. 중국산이라 하기 민망한 다국적 선박이다.

중국 내에서 집계한 아이다 매직시티 핵심기술 중국 자급률은 22.5%다. 유럽 보유 기술이 63.8%를 차지했고 나머지를 한국과 미국, 일본 기술이 채웠다. 장비 물량을 기준으로 보면 유럽 의존율이 최대 88.2%에 달할 수 있다는 통계도 있다. 또 선박 건조는 명목상 CSSC 산하 와이가오차오가 맡지만 실제 전체 건조공정과 자재 공급망을 통제하는 건 핀칸티에리다.

기술과 자재 공급을 모두 외국에 의존하니 수익을 내기도 쉽지 않다. CSSC 공시에 따르면 와이가오차오는 아이다 매직시티 건조 과정에서 지금까지 28억위안(약 5000억원)의 손실을 냈다. CSSC는 이미 손해가 날 줄 알고 약 40억위안가량 손실충당금을 지난해 설정했다. 그런데 동시 건조 중인 2호선 쪽에선 손실이 더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충당금으로 다 감당이 안 될 상황이다.

진수되는 아이다 매직시티호./사진=바이두

중국 정부는 일정 손해가 있더라도 크루즈 사업을 통해 얻는 부분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CSSC 크루즈 프로젝트 한 고위 관계자는 "크루즈는 국제적인 제품으로 우리는 비용보다 효율성, 안전성, 최종 제품에 대한 국제사회의 수용 여부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크루즈의 극도로 높은 문턱을 감안하면 현지화가 하루에 이뤄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이다 매직시티를 둘러싼 분위기는 어둡다. 코로나19와 미중 무역분쟁은 적어도 아이다 매직시티를 건조하기 시작했던 당시엔 상상도 하지 못한 변수들이다. 시장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다. 한 현지 크루즈사 관계자는 "카니발의 중국 사업 플랫폼인 코스타 크루즈가 작년 10월에 한·중·일·싱가포르 등 중요 지역에서 철수했다"며 "1900만달러(약 247억원) 정도 손실을 봤다더라"고 말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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