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 생겼어요"…문경의 활력소된 '달빛탐사대' 프로젝트

황수빈 2023. 11. 1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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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 없는 청년에 '문경살이' 체험·창업 연계 프로그램 지원
4년간 165명 참가 37명 문경 정착…"청년정착 지원, 정책과제 돼야"
달빛탐사대 [촬영 황수빈]

(문경=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인구 7만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경북 문경시에 최근 청년들이 하나둘씩 정착하고 있다.

그것도 문경이라는 곳을 전혀 모르며 가본 적도 없는 외지인들이다.

이들이 낯선 지방 도시에 찾아올 용기를 준 것은 '달빛탐사대'라는 정착 지원 프로젝트다.

달빛탐사대에 참가하면 문경살이 체험, 숙소, 취업·창업 연계 프로그램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처음에는 그저 문경에 정착한 외지인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자 내민 한 사람의 손길이 어느덧 달빛탐사대라는 프로젝트로 발전해 젊은 청년들을 불러 모으는 손짓이 됐다.

달빛탐사대를 통해 정착한 청년들은 저마다의 새로운 도전에 나서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활력을 문경에 불어넣고 있다.

내리막길 걷는 도시를 살리고자 했던 한 사람의 고민

천금량씨 [천금량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문경에 정착한 외지인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여기저기 전화해서 '친구 하자!'고 말했죠."

12일 달빛탐사대 창립멤버인 천금량(49)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문경이 고향인 천씨는 도시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자라왔다.

천씨는 광산이 활성화됐던 때에는 거리에 사람이 넘쳐났다고 했다.

그는 "광부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거리를 다니면 어깨가 부딪치는 게 일상일 정도였다"며 "개가 천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던 때였다"고 말했다.

청년 간담회 [천금량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번화했던 도시는 탄광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천씨가 지역 소멸 대응과 관련된 일을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는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벽화 봉사에 나섰다.

2000년대 초였다. 광부들이 더 이상 없어서 공실이 된 건물이 넘쳤고 골목이 방치돼 망가진 곳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벽화 봉사와 함께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미술 심리치료를 하며 십수년간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2017년 천씨는 문득 외지인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착한지 얼마 안 된 외지인들에게 무작정 전화해서 친구가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며 "그렇게 20여명이 모여 활발히 교류도 하고 모임도 가졌다"고 말했다.

천씨는 이후 이들과 함께 '가치살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2020년엔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공모사업에 선정돼 조합이 본격적으로 '달빛탐사대' 프로젝트를 운영하게 됐다.

천씨는 "달빛탐사대는 일정 기간 문경살이를 체험하게 해주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금전적인 지원도 해준다"며 "프로젝트 초기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달빛탐사대 참가자들과 대화하는 천금량씨 [촬영 황수빈]

지난 4년간 달빛탐사대를 거쳐 간 청년들은 165명이며 이 중 37명이 문경에 정착했다.

이들은 식당, 제과점, 농장 등을 운영하며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달빛탐사대에 대한 경북도의 예산 지원은 지난해가 마지막이었지만 문경시에서 이를 이어받아 올해 1억원을 지원했다.

문경시 관계자는 "보통 경북도 사업은 도비 지원 기간이 끝나도 시에서 지원하는 경우는 잘 없다"며 "청년들을 꾸준히 정착시키는 성과가 있다고 평가해 시에서 지원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천씨는 청년 정착 지원 사업에 대한 지원이 더 커졌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귀농·귀촌 사업처럼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하나의 정책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보조금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용역을 통해 사업을 설계하는 등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경에 퍼지는 이국의 향기와 흥겨운 음악

인도음식점 운영하는 전찬우씨 [전찬우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늦은 오후 문경읍의 한 사거리를 걷다 보면 낯선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지난해 호기심 하나로 달빛탐사대에 참가했다가 정착한 전찬우(27)씨가 운영하는 인도 음식점이다.

서울시 영등포구에 살았던 그는 청년 마을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쓰게 되면서 직접 달빛탐사대에 참가해보고 싶어졌다고 한다.

전씨는 "달빛탐사대 공고를 보고 내려왔다"며 "문경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전공도 인도어고 인도를 좋아해 관련 요리를 팔아보자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전씨는 달빛탐사대의 도움을 받아 인도 요리 레시피를 연구했다. 금전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고 맛에 대해 여러 조언도 얻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노력한 끝에 지난 4월 인도 음식점을 열었다.

그는 "빠니뿌리라는 음식이 식당의 주력 메뉴"라며 "인도에 살았을 때 제일 좋아했던 음식인데 이 맛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문경의 여유로운 정취와 적은 인구가 좋다고 했다.

그는 "식당을 여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라 두려움이 있긴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무엇을 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행히 손해는 안 보고 있다"며 웃었다.

달빛탐사대 참가자들 사진 찍는 이희준씨 [촬영 황수빈]

문경에서 음악 활동을 하는 청년도 있었다.

이희준(37)씨는 경기도에서 가수로 활동하다가 2020년 달빛탐사대를 통해 문경을 찾아오게 됐다.

이씨는 "음악팀을 결성했는데 하필 그때 코로나가 터져버려 활동하기가 어려웠다"며 "돌파구를 찾다가 달빛탐사대에서 거리공연을 맡을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홀리듯이 내려왔다"고 했다.

당시 그는 달빛탐사대를 통해 임시 숙소와 연습 공간 등 지원을 받았다.

현재 가야금과 대중음악을 결합한 퓨전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며 수년째 문경에서 살고 있다.

이씨는 이곳에 살면서 '잃어버렸던 동네 친구'가 다시 생겨서 좋다고 했다.

그는 "프로젝트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며 "달빛탐사대를 수년간 옆에서 지켜보니 행안부가 쏘아 올린 청년 마을이 어느 정도 활성화된 것 같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달빛탐사대를 통해 유입된 청년들이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hsb@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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