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시원과 과정에 대한 은유…박광수 개인전 '구리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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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무수한 선들로 밀도 있게 숲의 세계를 담았던 박광수는 2021년 '따뜻한 만들기' 작업부터 유화를 주 매체로 색이 담긴 풍경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박광수는 물감이 굳는 시간 동안 마치 점토와 같이 유연한 상태의 재료를 주무르듯 선이 그어진 뒤 또 다른 궤적들을 그리며 선을 겹치고 긁어 파내고 없애 화면 안에서 공간감과 납작한 부피감을 만들며 빠르게 선들을 세우거나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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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학고재갤러리는 오는 12월9일까지 박광수 작가의 개인전 '구리와 손(Copper and Hand)을 개최한다.
무채색의 무수한 선들로 밀도 있게 숲의 세계를 담았던 박광수는 2021년 '따뜻한 만들기' 작업부터 유화를 주 매체로 색이 담긴 풍경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로 있는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유화를 공부했다. 박광수는 물감이 굳는 시간 동안 마치 점토와 같이 유연한 상태의 재료를 주무르듯 선이 그어진 뒤 또 다른 궤적들을 그리며 선을 겹치고 긁어 파내고 없애 화면 안에서 공간감과 납작한 부피감을 만들며 빠르게 선들을 세우거나 무너뜨린다.
물감이 굳기 전 색과 선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최대한 빠르게 결정하는 그는 작업 속 생동하는 선과 색들을 통해 새로운 형태와 공간을 창출해 나가며 연결점을 갖고 움직임의 궤적들을 화면에 고스란히 쌓는다.
현란한 색채로 뒤덮인 표현은 마치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무언가'를 연상시킨다. 그 무언가는 현대미술에서의 구상적 회화임에도 산수화의 구성이 보이기도 하고, 윌리엄 블레이크의 회화에서처럼 사물과 환경이 주인공과 일체화되는 형식에 근접하기도 한다.
박광수의 회화는 동서양 회화의 정수를 추출해 화합해 내는 동시에 더 높은 경지로 도약하는 것이다. 화면에서 주인공은 숲과 하나가 되며 구리를 추출하는 모습은 문명의 올바른 방향성을 상징한다.
전시명은 다소 엉뚱한 조합으로 보이지만 문명의 시원과 과정에 대한 은유이다. 영어로 구리는 'copper'로 어원은 그리스어 'Cyprus'이다. '키프로스' 혹은 '사이프러스'라고 부르는 이곳은 기원전 9000년부터 문명을 시작한 곳으로 기원전 2500년전 부터는 구리제품을 교역한 인류 문명의 요람이다. 그래서 구리는 문명의 시작을 의미한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손은 '눈에 보이는 '뇌'이다. 단순히 붙잡고 움켜쥐고 모으는 기능을 넘어서 우리의 온갖 생각과 개념을 실현해 주는 최전선에 손이 있다. 박광수가 말하는 '구리와 손'은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포괄한다.
전시 대표작인 '구리와 손'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생긴 괴리감, 부조화, 모순, 소외에서 괴로워하는 화가의 자의식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이를 극복해야 하는 근원적 태도로서의 천지일신론과 같은 사유를 제시한다. 자연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박광수는 "이제까지 그린 그림에 나오는 모든 만드는 행위들의 결과물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박광수는 2017년 밴드 혁오의 정규 1집 앨범 '23'의 타이틀곡 '톰보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젊은 세대에게 각인됐다. 애니메이션 형식의 이 뮤직비디오에는 유채색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 대부분의 작품은 유화 작업의 결과물로, 작가의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의 변신을 선언하는 자리이다. 박광수의 인기를 방증하듯 전시에 걸린 모든 작품은 이미 판매가 완료됐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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