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은 왜 대구를 찍었나?…YS에 쫓겨난 JP 자민련 돌풍 모델
이미 지난해 9월 대구 찾아 "죽비 들어달라" 호소
지난해 9월 4일. 국민의힘 대표직에서 쫓겨난 이준석 전 대표는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대구를 찾았다.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 직무 정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이후 9일 만이다. 그는 대구 중구에 조성된 김광석 거리에서 지역 당원들을 만났고, 여기서 긴 기자회견문까지 낭독했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보다 더 위험하다"
"2022년 지금, 대구는 다시 한번 죽비를 들어야 한다"
"공천 한 번 받아보기 위해 불의에 귀부한다면 대구도 그들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
"권력자의 눈치만 보고 타성에 젖은 정치인들이 대구를 대표해서는 안 된다"
그는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리에서 1996년 15대 총선 당시 대구 선거를 언급했다. 총선이 있던 1996년은 가수 김광석 씨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이 전 대표는 26년 뒤 김광석 거리에서 "대구 시민들이 다시 죽비를 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15대 총선 때 대구에선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김영삼 정부 4년 차인 1996년에 치러진 15대 총선. 총선 1년 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함께 대표적인 후진국형 참사로 기록됐다. 대구 민심은 흉흉했다.
정치적으로도 그랬다. 15대 총선을 앞두고 집권 여당은 김종필 총재를 내쫓으려 했고 결국 JP의 자민련이 만들어졌다. 자민련은 충청권뿐 아니라 대구에서도 '박정희 향수'를 일으키며 선거에 힘을 쏟았다. 민정계를 앞세웠다. 그 결과 자민련 소속인 박준규·김복동·이정무·이의익·안택수·박철언·박구일·박종근 후보가 당선되면서 13곳 가운데 무려 8자리를 차지했다. 신한국당은 단 2곳을 얻는 데 그쳤다. 게다가 15대 총선에서 과반 확보도 실패했다.
이후에도 YS와 JP의 화해는 없었다. 총선 이후 YS의 당 장악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고, 이회창 대선 후보가 '3김 청산'을 앞세우며 YS와 날을 세웠다. 이듬해 치러진 15대 대선에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 이뤄지면서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YS와 JP 결별의 나비효과인 셈이다. 좀처럼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JP와의 결별을 후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는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의 핵심적 지역 기반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확실한 지역적 기반이 다져졌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듯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이후 위기를 감지할 때마다 대구를 찾았다. 윤 대통령은 "대구 시민 생각하면 힘이 난다" "대구에 오니까 힘이 난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대구는 보수정치 세력에게 그런 존재다. 지난해 '보수의 심장'을 찾아 죽비를 들어달라 호소했던 이준석 전 대표의 시선이 현재 대구를 향하고 있다.
지난 9일 이준석 전 대표는 대구를 다시 찾았다. 그는 동대구역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에는 가장 쉬운 도전일 수 있지만 새로 뭔가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어려운 도전이 그 아성(대구·경북)을 깨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구에 출마한다면 12개 지역구 모두 다 신당으로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도전일 것"이라며 "만약 (대구 출마를) 한다면 가장 반개혁적인 인물과 승부를 보겠다"고 대구 출마를 시사했다.
다시 한번 96년 15대 총선을 언급했다. 그는 "대구 도전이 어렵다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1996년 대구는 이미 다른 선택을 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60대, 70대가 돼서 윤석열 정부를 많이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30대, 40대 때 했던 선택"이라며 "다시 한번 변화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9월 김광석 거리에서 했던 '대구 죽비' 발언과 유사하다.
그럼, 누구랑 함께 할까? 신당을 만든다면 국민의힘 쪽 인사들도 당연히 함께 할 수 있겠지만 더 큰 관심은 다른 쪽 인사들의 참여 여부다.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해 낭독했던 대구 기자회견문에 민주당 현역 의원이 등장한다. 바로 조응천 의원. 이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 때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은 위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린 휘슬블로어(내부고발자)였다"고 했다. "진실을 알린 대구 출신 조응천 비서관은 보수진영에서 파문당했다"며 "그 휘슬블로어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보수진영은 탄핵에 이르는 사태를 겪지 않았을 것이고 절대자는 불행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12월까지 민주당을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안 된다면 탈당할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준석 전 대표의 연말 신당 창당과 대구 출마 계획의 밑그림이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힘 현 지도부와는 확실한 '결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보수의 심장'이자 확실한 지역 기반을 놓고 양측이 경쟁해야 할 수도 있다. 최근 윤 대통령은 12일 동안 두 차례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국민의힘의 휘슬블로어를 자처하는 이준석 전 대표가 15대 총선에서의 JP가 될 수 있을지는 결국 민심의 선택에 달렸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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