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Meme)을 만든 리처드 도킨스가 습득한 인생 책들[책볼래]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내놓은 '이기적 유전자'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조지 윌리엄즈, 윌리엄 D. 해밀턴, 로버트 트리버즈, 존 메이너드 스미스 등 진화생물학자들의 연구를 집대성해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이들은 개체, 종분화, 생물체 중심의 다윈주의에서 더 나아가 진화가 유전자, 표현형, 입단수준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한 이론을 수립한 신다윈주의 학자들이다.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트리버즈의 '호혜적 이타주의', 메이너드 스미스의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등은 다윈이 설명하지 못했거나 부족한 부분을 메꾸면서 대중들에게 진화론을 알렸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인간의 유전자(gene)와 같이 번식하면서 세대를 이어 전해져 오는 문화 구성 요소인 밈(Meme) 개념을 처음 선보여 진화생물학을 넘어 인문, 사회과학 영역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밈은 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총칭한다.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 요소를 '밈'으로 정의했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는 '문화 요소'이자 대중문화의 일부로 우리에게 더 친숙해진 용어다.

그는 진화생물학계가 주목하는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과학저술가로 명성이 높다. 주로 대중들에게 난해한 어려운 학술 이론이나 주제들을 쉽게 풀어 쓰며 대중에게 친숙함을 주는 데 기여했다. 실제 그의 책 '이기적인 유전자' 흥행 이후 진화생물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가 80세 생일을 맞아 '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원제 Books Do Furnish A Life)을 펴냈다.

닐 디그래스 타이슨부터 스티븐 핑커, 로렌스 크라우스, 매트 리들리 등 세계적 석학들과의 대화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부터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프레드 호일의 '검은 구름', 댄 바커의 '신은 없다' 등 도킨스가 그동안 감탄하며 읽은 책들에 대해 쓴 서문과 후기, 에세이, 서평, 대화 등을 한데 모아 자신의 통찰을 담아낸 경이로운 과학 안내서다.

그의 나이 80세 생일을 기념해 정리했다는 점에서 그의 50년 과학 인생과 연구자로서의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두는 자연에 대한 찬사, 인간에 대한 탐구, 신앙에 대한 질문 등 진화론·자연선택·과학철학·종교를 아우르는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이어서 도킨스의 '인생 책'들이 펼쳐진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헤이든 천체투영관 관장 닐 디그래스 타이슨과의 대담은 이 책의 전반적인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신비주의적·초월적 의식에서 벗어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데이비스와의 대담은 도킨스가 "내가 그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 수백 개의 인터뷰 가운데 내 과학 인생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160쪽) 인터뷰라고 고백했을 만큼 특별하다. 이 글에서 도킨스의 학술적 성과를 대표하는 핵심 개념인 '이기적 유전자'와 '확장된 표현형', 그리고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윈과 DNA'에 관한 매트 리들리와의 대화도 흥미롭다. 두 사람은 '유행이 진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지' '다윈의 이론도 언젠가는 대체될 것인지' 등 진화에 관한 다채로운 논의를 이어나간다.

이들 대담을 통해 도킨스는 우리 시대의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생각할 지점을 열어둔다. 세계적인 석학들과의 대화는 내내 흥미롭다. 생각의 지점이 깊어질 때쯤 도킨스는 진화의 신비함과 매력을 담아낸 책의 세계로 안내한다.

세계적인 학자들의 책을 소개하며 자신의 생각을 유쾌하게 드러내는가 하면 신랄하면서도 풍자 넘치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옥스포드대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과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저서 '혁신에 대한 모든 것'으로 잘 알려진 매트 리들리는 이 책을 두고 "재능과 열정, 심도 있는 지식이 결합된 도킨스의 에세이, 리뷰, 서문, 단상, 대화의 풍성한 향연이 펼쳐진다"고 호평했다.

도킨스는 책에서 '왜 굳이 과학을 설명하는 일에 힘을 쓰느냐?'는 질문에 미국의 천문학자이자 미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을 지낸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과학을 설명하지 않겠다는 것은 비틀린 심보처럼 느껴진다. 사랑에 빠지면 온 세상에 말하고 싶지 않나. 이 책은 과학을 향한 평생에 걸친 사랑을 고백하는 일종의 자기소개서다"라고 웅변한다.

리처드 도킨 지음 |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6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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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민수 기자 maxpres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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