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약혼녀와 잠자리 갖다 들통났다네요”...썸남의 과거를 알게된 그녀 [씨네프레소]
[씨네프레소-100]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실패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시간은 금으로도 살 수 없는 희소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경험하기에 앞서 기존 평가를 참고한다.
식당에 먼저 다녀온 사람의 리뷰를 읽고, 영화를 이미 본 관객의 별점을 살펴본다.
그렇게 우린 영 아닌 식당과 작품을 거를 수 있다. 신뢰할 만한 인물의 평가를 들어보는 것은 실패하거나 실망할 가능성을 줄여준다. 시간을 낭비할 확률을 낮춰준다.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브리짓(르네 젤웨거)은 한 남자를 직접 알아보기에 앞서 판단할 만한 근거를 찾는다.
그중 하나가 타인의 평가다. 브리짓이 그 남자에 대해 수집한 정보 중엔 그가 파렴치한이라는 증언이 있었다. 결혼을 앞둔 친구의 약혼녀와 잠자리를 갖다가 현장에서 발각됐단 것이다.
그러나 해당 정보만 제외한다면, 남자는 누구보다도 착하고 성실해 보인다. 과연, 브리짓은 이 남자의 평판에도 한번 사귀어 보겠다는 결심을 내릴 것인가.
그녀 모친은 브리짓이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변호사 마크 다시(콜린 퍼스)를 소개하는데 매너가 별로다. 남자는 브리짓과 인사를 나눈 뒤 돌아서서 본인 어머니에게 브리짓의 험담을 한다.
“맞선은 필요 없어요. 특히나 수다쟁이에 패션 감각 빵점인 골초 주정뱅이 노처녀는 싫다고요.”
브리짓 몰래 한 이야기였지만, 브리짓은 모두 듣고 상처를 받는다.
“난 불현듯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혼자서 술이나 마시다가 뚱보로 죽어 3주 후 독일산 셰퍼드한테 반은 뜯어 먹힌 채 발견될 것임을”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란 이름의 그 남자는 출판사 편집장이다. 잘생긴 얼굴에 지성미를 갖춰 여자에게 인기도 많다.
바람둥이는 만나지 말자는 게 브리짓의 새해 결심이었으나, 다니엘에겐 마음을 연다. 타인의 매력에 끌리는 인간 본능은 새해 결심 같은 건 가볍게 이기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브리짓에겐 좋은 일이었는데, 실연의 아픔에 자포자기하는 대신 각성하고, 직장을 떠나 본인에게 더 잘 어울리는 일자리를 얻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엄마가 소개해줬던 남자, 다시 말해 자신을 무시하는 줄로만 알았던 마크 다시에게 인생 최고의 고백을 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좋아해요.”
친구의 약혼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과거는 한 사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기본적으로 연인 사이에도 행위규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일 수 있다.
아울러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단 것이니, 그가 얼마나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충동적인 인물인지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외도 전력이 있는 사람과 연애·결혼을 가급적 피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해를 씻은 두 사람이 연인이 돼 포옹하는 장면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류의 행복한 동화처럼 책장을 따스하게 닫는다.
설사 판타지라 하더라도 우리에겐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바라보게 해줄 만한 서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 한화로 327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3,697억원의 티켓 수입을 올린 것은 ‘그럼에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
한 사람의 진실을 알기 위해선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영화나 음식을 남의 별점만 보고도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인간은 복잡다단한 존재인 것이다. 남들은 다 손가락질하고 욕해도 나한테는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한 사람이 직접 쓴 일기‘조차도’ 타인을 파악하는 정보로선 불완전할 수 있음을 얘기한다. 직접 대화 나누고, 시간을 보내며 그에 대해 판단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단 얘기다. 일기도 그럴진대 우리는 외부의 정보를 근거로 너무 많은 인연을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소중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실패와 실망의 가능성을 끌어안아야 함을 영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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