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수수도 제명 불가” 이상한 지방의원 징계 규정 ②

양창희 2023. 11.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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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법 수의계약 비리를 저지른 광주광역시의 한 기초의원에 대한 징계가 '출석정지 30일'에 그치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KBS광주는 이를 계기로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지방의원 징계 현황을 분석하고, '솜방망이 징계'의 이유를 추적했습니다. 취재 내용을 2차례에 걸쳐 전해드립니다.


지방의회의 중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지방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입니다. 이런 구도 속에서 의원과 공무원은 대부분 '갑'과 '을'의 관계에 놓입니다. '갑'이자 선출직인 지방의원이 '을'이자 시험 봐서 들어온 공무원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질까요?

공무원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백형준 전국공무원노조 광주지역본부장은 "같은 문제를 일으켜도 지방공무원은 파면될 수 있는 반면 지방의원은 그렇지 않다"며 "이 같은 현실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 지방의회 징계기준 "금품 받아도, 인사 청탁해도 제명은 안돼"

화순군의회 징계 기준. ‘화순군의회 의원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 규범 조례’ 발췌.


실제로 규정을 찾아 봤습니다. 각 지방의회는 '윤리 강령' 관련 조례에 자체 징계 기준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의 표는 화순군의회의 군의원 징계 규정입니다. 품위 유지 위반부터 겸직 금지까지 여러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런데, 최고 수위의 징계인 '제명'이 가능한 경우는 단 3가지뿐입니다.

금품을 받아도, 인사 청탁을 해도 제명이 안 됩니다. 성폭력·성희롱 문제도 '출석정지'까지만 가능합니다.

출처: 광주·전남 지방의회


■ 지방의원 징계 규정, 일반 지방공무원에 비하면 '솜방망이'

일반 지방공무원의 징계 규정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합니다. 공무원은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으면 중징계에 파면도 가능합니다. 성폭력 범죄 역시 파면 대상입니다. 어떤 비위 행위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상세히 분류돼 있고, 중한 비위 행위는 대부분 강한 처벌로 이어집니다. 공무원에 비하면 화순군의회의 징계 규정은 그야말로 '솜방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KBS광주 취재진이 광주·전남 지방의원 징계 규정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남에서 10곳·광주에서 1곳이 이와 비슷하게 제명 가능 비위를 극도로 축소한 징계 규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수시의회 징계 기준. ‘여수시의회의원 윤리강령 및 행동강령 조례’ 발췌


이 가운데 여수시의회는 압권입니다. 규정만 보면 모든 비위 행위 가운데 '제명'이 가능한 종류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권 개입 금지', '알선·청탁 금지' 같은 중대한 비위 사항도 공개 사과만 하면 끝납니다.

전남의 다른 지방의회 12곳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겸직금지 관련 징계 규정만 존재하는데 역시 제명은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광주광역시 자치구 4곳은 제명 가능 사유를 7가지로 늘린 규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따로 징계 기준을 정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며 "징계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전국에 적용할 수 있는 표준안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징계 규정 강화, 해결책 될 수 있을까?

지방의원 징계 문제, 규정을 강화하면 개선될 수 있을까요?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하지만 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이번에 물의를 빚은 광주 북구의회의 징계 현황을 추적해 보면 그 이유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북구의회는 2019년 청렴도를 높인다며 의원 징계 관련 조례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조례 강화에도 수의계약 비위 의원 2명은 '공개 사과'로 끝났고,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의원도 5~10일의 출석정지 또는 징계없이 마무리됐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수의계약 비리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기대서 의원의 징계는 상징적입니다. 지난해부터 전국 지방의회에는 징계 시 법률 전문가 등 외부 인사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듣는 절차가 의무화됐습니다.

북구의회에서는 수의계약 비리로 징계에 회부된 기 의원이 첫 적용 사례였습니다. 자문위는 '제명'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동료 의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외부 자문을 듣는 절차는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습니다.

지방의원 ‘솜방망이’ 징계를 비판하는 피켓팅에 나선 공무원노조.


■ "같은 당 소속 동료 의원인데"…견제 막는 정치 지형

지방의원 징계 문제의 대안으로 종종 징계 수위를 세분화하는 방안이 꼽힙니다. 현재 지방자치법에는 '제명' 다음의 징계가 '30일 이내의 출석정지'로 돼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징계의 간극이 너무 커서, '제명은 안 된다'는 온정주의가 통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부족한 절차는 분명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 지방의회 징계는 소속 의원들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틀 안에 있습니다. 제도를 운영하는 의원들의 자정 노력이 없다면, 아무리 규정을 촘촘하게 만들어도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광주 북구청 앞에 내걸린 지방의원 징계 관련 민주당 규탄 현수막.


이런 점에서 지방의회가 자정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는 기울어진 정치 지형의 탓이 크다는 지적이 통렬하게 다가옵니다.

북구의회에서 일련의 의원 징계 과정을 경험한 진보당 손혜진 의원은 "지금 이대로도 제도가 잘만 지켜지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의원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의회가 일당 독점 체제가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았을 수 있다"며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안 되는 이유는, '제 식구 감싸기' 외에는 표현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우식 참여자치21 사무처장도 "결국 지방의원 징계의 문제는 의원 자질의 문제인데, 의회를 독식하고 있는 민주당이 책임 의식을 갖고 자질 높은 의원들을 선정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결국 중요한 건 의원 자정 작용…이번에는?

광주광역시의회에서는 또 다른 징계 안건이 곧 심의됩니다. 대상은 사기업의 법인카드를 사용해 물의를 빚은 임미란 광주광역시의원입니다.

[연관 기사] 광주시의회, 임미란 의원 징계 절차 착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89257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 8월 이미 '출석정지 30일'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의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이를 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석 달 동안 심사를 연장했습니다. 심사 기한은 11월 30일입니다. 지방의원 징계가 화두로 떠오른 광주의 다음 징계 결과는 어떨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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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희 기자 (sha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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