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잿값 부풀려 20억 꿀꺽하고 '횡령죄' 아니라는 유치원…'사기죄'로 64명 잡은 경찰

최지은 기자 2023. 11. 12.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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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에게는 사기 혐의, 교재 회사 대표에게는 특정 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가 적용됐다.

부패범죄나 재산범죄는 물적 증거로 범행이 입증되는 경우가 드문데 자금의 흐름이나 간접 증거 등을 통해 범죄 혐의를 밝혀낼 때 수사관으로서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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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대전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조우경 경위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대전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조우경 경위(30). 조 경위는 지난달 사립유치원·어린이집 원장 63명과 유아용 교재 회사 대표 등 64명을 사기 및 특정 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사진=조우경 경위 제공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의 비리를 제보합니다."

지난해 8월 대전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첩보 하나가 접수됐다.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이 유아용 교재 회사와 결탁해 약 3년에 걸쳐 학부모들로부터 교재비 등을 부풀려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제보자는 원장들과 교재회사가 교재비를 부풀려 발생한 차액을 나눠가졌다고 주장했다.

첩보에 따르면 이들은 2016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총 11개 과목 교재비를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3배까지 높게 책정해 학부모들에게 청구했다. 공립유치원이나 병설 유치원에 1만원 수준으로 공급하는 교재를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에는 2만~2만5000원 상당으로 부풀려 제공한 것이다.

첩보를 입수한 조우경 경위(30)는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관행처럼 굳어진 비리를 밝혀내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특정 사립유치원이나 어린이집만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비리를 저지른 곳들을 모두 밝혀내는 것이 중요했다.

조 경위는 적용 법리부터 다시 고민했다. 통상 리베이트(어떤 계약을 했을 때 그 거래의 대가로 수수료 등을 지급받는 행위)의 경우 횡령죄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원장들의 개인 자산이기 때문에 횡령이 성립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조 경위는 횡령죄 대신 사기죄를 적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기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각 피해자들마다의 피해액을 정확히 특정해야 했다. 하지만 유아들이 재원한 기간, 학부모의 수, 학부모 명단 등을 파악하는 게 난제였다.

이때 생각해낸 방법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전산 자료를 받아 분석하는 것이었다. 학부모들이 보육료나 수업료를 국가에서 지원받기 위해 동사무소나 유치원, 어린이집에 결제한 내역을 받아냈다.

이렇게 대전·충남·세종 지역에서 문제가 된 교재회사와 거래한 적이 있는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118개소의 피해자 명단과 1인당 피해액을 특정했다. 조 경위와 팀원들이 1년2개월에 걸쳐 이뤄낸 결실이었다. 분석한 회계 자료의 분량만 13만 페이지에 달했다. 회계 자료를 제외한 수사 기록만 5000페이지였다.

사립유치원, 어린이집 원장들과 교재 회사 대표 등 64명은 지난달 검찰에 송치됐다.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에게는 사기 혐의, 교재 회사 대표에게는 특정 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은 학부모 5390명으로부터 교재비 등을 부풀려 차액 19억7000만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조 경위는 2016년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입직한 뒤 의무복무 2년을 제외하고 줄곧 경제·지능범죄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 2021년에는 공무원의 부동산 투기이익 혐의나 관세청 직원들의 세종시 특공 논란을 수사했다. 부패범죄나 재산범죄는 물적 증거로 범행이 입증되는 경우가 드문데 자금의 흐름이나 간접 증거 등을 통해 범죄 혐의를 밝혀낼 때 수사관으로서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조 경위는 "경제·부패 범죄의 경우 다른 범죄에 비해 피해 규모가 훨씬 더 큰 경우가 많은데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며 "사실상 이런 범죄가 민생과 훨씬 더 직결된 범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기라는 건 속아서 당했다는 건데 몰라서 분노하지 못하는 거지 속내를 알면 분개할 사안들이 적지 않다"며 "숨겨져 있는 범죄들을 파헤치고 알리는데 수사를 통해 일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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