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갈등 시한폭탄 된 노란봉투법… '거부권'이 뇌관

이한듬 기자 2023. 11.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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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 국회(정기회) 제11차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적 298인, 재석 174인, 찬성 173인, 반대 0인, 기권 1인으로 가결됐다. / 사진=뉴시스 고범준 기자
'노란봉투법'이 노·사·정 갈등의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야당 주도로 국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놓고 노정·노사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재석 174명 중 찬성 173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국민의힘 의원은 법안 상정에 반발해 본회의장을 퇴장했으며, 민주당 내에서는 이원욱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가압류를 제한하고 사용자의 범위를 원청까지 확대해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한다.

지난 2016년 19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발의된 법안으로 당시 쌍용자동차 파업으로 노동자에 대한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자 손배가압류를 막자는 취지에서 입법이 추진됐다. '노란봉투법'이란 별칭이 붙은 것은 쌍용차 손배액 모금 운동을 제안한 시민이 성금을 노란봉투에 담아 보낸 것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19대와 20대 국회 내내 이해당사자 간 입장이 엇갈리며 법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21대 국회에서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조선소 도크(선박 건조장) 점거농성을 벌인 하청 근로자들에게 47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노란봉투법 입법이 재추진돼 이번에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 통과를 둘러싼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노동계는 적극 환영의 입장을 내비친 반면 정부와 경영계는 단독 처리를 강행한 야당을 비판하면서 노란봉투법이 불러올 부작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노동자들의 숙원 과제였던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드디어 본회의를 통과했다"며 "진짜 사장이 교섭함으로써 불필요한 쟁의 행위와 노사 갈등도 줄어들고 무분별한 손배 가압류의 고통에 절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들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논평을 내고 "현행 노조법은 그 목적과는 달리 오히려 노동 3권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쓰여왔다"며 "오늘 개정으로 비로소 노조법이 제자리를 찾는 중요한 걸음을 내딛게 됐다"고 환영했다.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은 일제히 성명서를 내고 야당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한다고 비판하면서 기업과 국가 경쟁력이 후퇴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정부역시 우려를 표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업현장이 초토화돼 일자리는 사라지고 국가 경쟁력은 추락하고 말 것"이라며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 국민 불편과 국가 경제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시행까지는 난관이 남아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제6단체는 오는 13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다. 이정식 장관도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 요청을 시사했다.

그동안 정부는 노란봉투법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0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통령실에 이송돼 오면 각계의 의견을 듣고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노동계의 반발이다. 노동계의 숙원인 노란봉투법이 이제 겨우 국회 문턱을 넘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격렬한 반발이 예상된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민의를 외면한 채 대통령 권력으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금속노조는 앞장서 투쟁의 들불을 지필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고자 하는 민중과 함께 윤석열 퇴진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대대적인 '동투'(冬鬪·겨울 투쟁)에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지난 11일에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조합원 수십만명이 참가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노란봉투법의 시행을 촉구하며 거부권 행사 움직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참가자들은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 개정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거부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반대와 함께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은 "수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고, 노조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탄시켜온 '손배폭탄'은 지금도 진행형"이라며 "노동자로 살아갈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야만적인 사회를 물려줄 수는 없다. 120만 전태일의 반격으로 노조법 개정 반드시 이뤄내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권의 명줄을 끊어놓겠다'는 심정으로 모두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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