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4.5배…급팽창한 서울 역사, ‘메가시티’ 구상 마중물 돼[서울시 김포구?]
중앙 지시에 3대 거점 구축, 메가시티 바탕 만들어
[스페셜 리포트 : 서울시 김포구?]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메가시티(Mega City)’ 논쟁이 불붙고 있다. 한 도시가 인근 지역을 흡수하며 성장한 것은 도시 발전사에서 흔한 일이다. 서울도 수십 년간 경기도 지역을 흡수하며 세계적 도시로 성장했다. 강북 도심에서 시작해 동서남북으로 그 영토를 확장했다.
특히 강남권을 비롯해 한강 이남은 수십 년 전만 해도 모두 경기도에 속했다. 이들 지역이 중앙정부 계획에 따라 서울에 편입된 뒤 현재 행정구역이 완성되기까지 채 100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의 과도한 집중현상이 문제로 지적될 때까지 그 확장은 지속됐다.
최근 수년간은 ‘메가시티화’가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충청 지역 등 지방 광역시까지 확장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영등포·강남 날개 단 서울, 대도시로 진화
인구 약 941만 명(2023년 8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면적 605㎢, 총 25개 자치구로 구성된 대한민국 수도 서울특별시는 불과 100년이라는 기간 동안 급성장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1936년 134㎢였던 서울 면적은 확장을 거듭하며 4.5배가량 넓어졌다.
1943년 7개에 불과하던 서울 내 자치구 역시 약 50년 만인 1995년에 4.5배로 늘었다. 일부 자치구는 기존에 경기도 지역이 편입되며 생겼지만, 급격한 인구 증가 등으로 기존 행정구역이 쪼개지며 신설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서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중앙정부 계획에 따른 것이다. 이후 서울은 본격적으로 한강 이남까지 넓어지게 된다.
1936년 일제는 병참기지화를 목적으로 경기도 시흥군에 속했던 영등포 지역을 ‘경성부’에 편입했다. 한 나라의 수도로서 서울의 위상을 축소하려던 일제의 도시계획에 일대 전환이 일어난 사건이었다.
일제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1910년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한 뒤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시행했다. 서울의 옛 행정구역인 한성부는 조선 후기 사대문 바깥으로 인구와 상업 기능이 확장되며 기존 도성 지역과 인근 성저십리(城底十里, 도성 밖 10리)로 넓어졌다. 대도시로서 발달 과정을 거치며 행정구역 역시 커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1910년부터 1914년까지 성저십리에 속한 대부분 지역이 일제에 의해 경기도로 편입되며 인구와 면적은 대폭 줄었다.
조선총독부는 1931년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전략을 바꾸게 된다. 한반도를 대륙침략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1936년 생산, 물류에 필요한 지역들이 경성부로 편입됐다. 이때 서울에 포함된 영등포에는 첫 철도노선이었던 경인선이 정차했고 이에 따라 철도역 일대에는 공단이 조성돼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중앙이 계획한 ‘서울 공화국’, 선례로 남아
해방 이후인 1949년 서울은 서울특별시로 승격되면서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추진된 영동개발로 인해 경기도 광주, 시흥에 속했던 지역이 현재의 강남으로 변신했다.
1963년 대규모 서울 편입이 이뤄졌다. 박정희 정부는 서울 확대에 따른 도시정비를 위해 도시계획구역에 경기도 지역을 대규모로 포함시켰다. 양주군 노해면과 구리면 일부가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로 바뀌며 서울로 들어왔다. 광주군 이에 속해 있던 중대면, 언주면, 대왕면(일부) 등은 송파구, 강동구, 강남구로 들어왔다. 지금의 삼성동은 이전까지 경기도 광주군 삼성리였다. 서쪽으로는 김포군 일부가 강서구, 양천구로 흡수됐고, 현재 금천구와 관악구는 시흥군 동면 등에 포함된 지역이었다.
이 중 강남개발은 당시 강북에 쏠린 인구를 분산하는 동시에 ‘수출산업화’ 기조에 따라 동남권을 개발한다는 맥락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계획이었다. 1970년 서울특별시장이 인구 60만 명을 목표로 ‘남서울개발계획’을 밝히며 개발은 본격화됐다. 해당 계획에는 삼성동에 신청사를 지어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 12곳을 이전하는 방안도 담겼다. 이때 영동1지구는 후에 서초구, 강남구가 됐고 2지구에는 1980년 강동구로 새 행정구역이 신설됐다가 나중에 송파구가 분구했다.
1973년에는 경기도 고양군 구파발, 진관외리, 진관내리 등이 추가로 서대문구와 은평구로 편입됐다.
이후에는 대규모 편입 대신 행정구역 경계 조정이 있었고, 마지막 서울의 확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2016년 위례신도시 건설 때다. 당시 서울특별시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시·하남시 간 관할 구역 조정이 일부 있었다.
이처럼 기존 강북 도심에 국한된 ‘단핵도시’였던 서울은 일제와 개발독재 시기를 거치며 영등포와 강남이 2개 업무지구가 더해진 ‘다핵도시’로 거듭났다. 인구가 유엔 경제사회부(DESA)의 ‘메가시티’ 기준인 1000만 명에 육박한다는 점, 지역 내 거점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서울이 이미 메가시티로서 조건을 갖췄다고 보기도 한다.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일본 도쿄도 등 선진국 대도시들도 이 같은 행정개편을 거쳐 지금 크기에 이르렀다. 수도로 각종 기능이 집중되며 난개발 문제가 심각해지자 광역권 개발을 통해 도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인구를 분산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 1572㎢에 달하는 ‘그레이터 런던(Greater London)’은 1965년 대확장을 통해 런던 카운티와 인근 지역이 합쳐져 탄생했다. 독일 수도 베를린은 1920년 대확장을 거치며 도시 면적이 66㎢에서 878㎢로 10배 이상 커지기도 했다.
최근 불거진 김포·광명·고양·구리·하남 등의 서울 행정구역 편입 역시 이 같은 사례를 참고하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한 도시공학 전문가는 “선거를 앞두고 메가시티 구상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은 좀 특별하긴 하지만 그동안 국내외에서 비슷한 대규모 행정구역 개편이 없었던 일은 아니다”며 “도시계획의 학문적 관점에서 지형이나 인프라 차원의 유불리를 논할 수는 있으나 행정 경계는 강남개발처럼 정치적, 행정적 목적에 따라 만들어지므로 그에 따른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방까지 번진 ‘메가시티’ 열풍
정치적 의도로 시작된 서울의 ‘메가시티화’ 논의와 달리 지방 광역시는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문제에 대응하며 지방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부산이다. 부산은 서울에 이은 ‘제2의 도시’지만 지역 내 제조업이 쇠퇴하며 인구감소 문제를 겪고 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김해와 양산의 부산 편입을 주장하며 “부산도 메가시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3개 도시가 통합되면 메가부산은 인구 418만 명, 면적 720.4㎢에 달하는 자족도시가 된다”고 덧붙였다. 강철호 부산시의원은 총선 1호 공약으로 ‘부·울·경 메가시티’를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됐다 좌초된 부·울·경 메가시티 계획을 재추진하자는 것이다. 강 시의원은 “부산 역시 이웃 유치 도시들(중국 상하이, 일본 오사카부)과 비견되는 규모, 위상을 갖추고 2030 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를 개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가시티 구상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민의힘 지도부는 비(非)수도권 지역의 메가시티 추진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부산과 광주 등 주요 광역시를 중심으로 인접 도시를 편입해 인구 500만 명 이상의 자족도시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경태 국민의힘 뉴시티프로젝트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11월 7일 열린 첫 회의에서 “서울이 기폭제가 돼서 서울·부산·광주 ‘3축 메가시티’, 더 나아가서 대전과 대구를 잇는 ‘초강력 메가시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 편입을 통한 대도시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핵심 거점 개발과 지역 내 일일 생활권을 가능케 하는 교통 인프라 확충이 필수”라며 “이 같은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행정구역만 합치게 된다면 편입된 지역들이 하나의 도시로서 시너지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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