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돋보기]⑪ 원전산업 키운다더니 원전부품 국산화 예산 82% 날렸다

유병훈 기자 2023. 11.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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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R&D 예산 증가 불구
안전부품 R&D 94%·부품 국산화 82% 삭감
전문가들 ”원전 수출에 지장…중소·중견 기업에 직격탄”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경북 울진군 신한울원자력 발전소 3,4호기 부지에서 원전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뉴스1

윤석열 정부의 핵심 공약은 ‘원자력발전 산업의 생태계 복원’이다. 전임인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정조준한 것인데 윤 대통령은 실제로 취임 이후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다. 원전 산업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와 애정도 식을 줄 모르는 듯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윤석열표 원전 산업 생태계 복원 정책 역시 이번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후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사실 표면적으로는 원자력 R&D 예산은 올해보다 늘었다. 하지만 원자력 산업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지속가능한 구조가 되는데 핵심인 원전 안전기술 R&D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원전 안전기술은 원자력의 안전성을 보증하는 수표이자 원전 수명을 늘리는 핵심이기 때문에 원자력 선도국들은 일찌감치 이 분야 R&D에 힘썼다. 게다가 원자력 안전 산업은 중소·중견기업의 사업 분야인 경우가 많아서 R&D 예산 삭감이 원자력 업계 전반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24년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예산안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가 맡은 원자력 R&D 예산은 1826억24000만원으로 올해보다 90억2500만원(5.2%) 늘었다. 전체 R&D 예산이 16.6% 삭감된 가운데 원자력 분야는 칼날을 피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하게 뜯어보면 희비가 엇갈린다.

원자력 R&D 예산 증가는 전년 대비 8.6배 늘어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기술 개발 덕분이다. 이 사업에서만 R&D 예산이 300억원이 늘어나면서 전체 원자력 R&D 예산 증가를 이끌었다. 반면에 다른 사업들은 예산이 깎인 경우가 더 많다. 개별 사업별로는 삭감된 사업이 10개로 증액된 사업 6개보다 더 많았다.

예산이 삭감된 사업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원전 안전부품 경쟁력강화 기술개발’ 사업이다. 올해 22억7300만원이었던 안전부품 R&D사업 예산은 내년엔 1억3600만원으로 94%나 급감했다. ‘원전 안전운영을 위한 핵심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기술개발 사업’ 역시 올해 70억2900만원에서 12억6500만원으로 82% 줄었다.

안전부품 R&D사업은 에너지기술평가원이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원전 안전 관련 기자재 국산화와 품질 향상, 정비 고도화를 지원해 원전산업 생태계 강화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원전 핵심 소·부·장 국산화 사업도 중소·중견기업이 원전 관련 소·부·장을 국산화하다는 점에서 안전부품 R&D사업과 방향성이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2일 경남 창원 성산구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텅 빈 원자로 제작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뉴스1

전문가들은 이런 예산 삭감이 원전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종현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예산이 대량 삭감된다면 연구 사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최소한의 인건비 유지가 중요한데 그보다 적은 예산이면 과제 달성이 어렵고, 원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흐지부지 종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원전 부품 국산화 R&D는 우리 원전의 해외 수출을 위해서라도 꼭 키워야 하는 사업인데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진행 중인 과제를 삭감할 것이라면 연구 목표도 그에 맞춰 조정하거나 차라리 조기 중단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원전 부품 생산업체의 관계자는 “한국 원전산업의 규모를 생각해 봤을 때 예산 삭감이 산업에 치명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액수보다도 원전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정부가 예산안에서는 다른 정책 방향을 보여줬다는 게 업계 입장에서는 심리적인 타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정부의 원전 산업 지원이 효율화에 방점을 찍고 안전성에는 거리를 두는 것처럼 해석되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다른 원자력 R&D 예산들을 살펴봐도 원전 수출이나 효율화를 위한 사업은 예산이 늘었지만, 안전 관리에 쓰이는 사업의 예산은 대부분 삭감됐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분 안전성 확보를 위한 핵심기술개발’ 사업은 예산이 올해 245억5000만원에서 내년 193억5400만원으로 21.2% 줄었고, ‘가동원전 안전성 향상 핵심기술 개발사업’은 441억원에서 286억3000만원으로 삭감됐다. ‘원자력안전연구전문인력양성사업’도 43억원에서 39억원으로 줄었다.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원전 가동 정지 같은 안전 사고가 계속 이어지는데 현장에서 안전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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