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을 통해 본 195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 - 토니 모리슨 '고향'[PADO]
토니 모리슨은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이자 가장 영향력있는 미국작가중 한 명이다. 흑인여성작가로서 모리슨은 그동안 미국문단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던 흑인문화와 역사, 특히 인종차별과 젠더억압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흑인여성의 이야기를 시적인 문체로 진솔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중적 인기와 비평적 찬사를 동시에 누린 모리슨은 1993년 흑인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빌러비드(Beloved)』로 1988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2019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모리슨은 11권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여러 에세이집과 아동문학작품을 남겼다. 또한 1989년부터 프린스턴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그녀는 2006년 명예교수로 퇴직할때까지 인문대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에게 "자유훈장(Medal of Freedom)"을 수여했으며 2019년 모리슨의 임종을 접하고 "그녀는 국보(national treasure)"였으며 "잠시라도 그녀와 같은 공기를 호흡한 것이 영광"이라는 추모글을 썼다. 모리슨의 소설들이 지금도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고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는 아마도 가장 보편적인 경험(상실, 사랑, 죽음 등)을 미국을 배경으로 풀어내고 여기에 미국흑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그녀의 대표작인 『빌러비드(Beloved)』는 노예제도에 시달리던 흑인여성이 자식들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잡힐 위기에 처하자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두 살배기 딸을 죽이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더 참혹한 사실은 이 소설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미국의 상징성에 가려지고 역사속에 묻힌, 그러나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미국의 이야기를 모리슨의 소설은 들려준다.
모리슨은 2012년에 출판된 그녀의 10번째 중편소설 『고향(Home)』에서도 이런 잊혀진 미국의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특기할만한 점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흑인용사의 귀환과 트라우마가 미국내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고향』을 쓰기 전에 모리슨은 동명의 에세이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굳이 1950년대를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를 밝힌다. 1950년대를 미국인들은 텔레비전, 디즈니랜드, 락앤롤, 맥도날드 등 미국문화를 탄생시킨 긍정적이고 평화로운 호황기로 기억하지만 이 시기는 미국의 냉전체제의 가동과 함께 봉쇄정책 및 맥카시즘 광풍이 불던 시대이기도 했다. 또한 1960년대 민권운동이 시작되는 도화선이 된 인종차별 및 여러 사회부조리가 속에서 곪아가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직도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로 일컬어지고 있는 한국전쟁을 굳이 『고향』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사용한 까닭도 한국전쟁처럼 이 시기의 복합적인 측면이 중요하게 조명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향』 의 주인공인 프랭크 머니(Frank Money)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흑인병사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프랭크는 시애틀의 한 병원에서 침대에 몸이 묶인 상태도 눈을 뜨지만 정작 자신이 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고향』 의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프랭크의 회상으로 천천히, 그리고 비틀거리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를 온전하게 수습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더구나 소설의 각 장을 여는 화자도 도대체 누구의 이야기인지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다. 소설이 4분의 1쯤 진행된 이후에야 프랭크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사실 프랭크의 성이 특이하게도 "머니(Money)"라는 것도 1950년대의 인종차별 현실을 그리고자 했던 모리슨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1955년 미시시피주의 머니(Money)라는 동네에서 백인남성들이 14살 흑인소년인 에밋 틸(Emmett Till)을 백인여성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알아볼 수도 없게 훼손된 에밋의 시신은 너무도 참혹했지만 진실을 알리고자 에밋의 어머니는 관뚜껑을 연채로 장례를 치뤘고 이 사진이 보도되면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민권운동이 불붙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소설의 배경인 미국의 1950년대의 현실이 여러 흑점을 지녔듯이 『고향』 의 조각난 이야기도 독자의 적극적인 읽기를 통해서만 온전하게 수습될 수 있다.
모리슨은 『고향』의 첫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시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집은 누구의 집일까?
누구의 밤이 불빛이 못들어오도록 막는 걸까?
이 안에서?
도대체 누가 이 집을 소유한거지?
내 건 아닌데.
나는 다른 걸 꿈꿨어 더 다정하고 더 밝은
색색깔 보트가 떠있는 호수가 보이고
나를 향해 활짝 열린 두 팔처럼 넓은 들판도 보이는 그런 집.
이 집은 이상하네.
이 집은 그늘져있어.
누가 좀 대답해줘, 왜 내 열쇠가 이 집 자물쇠에 딱 맞는걸까?
Whose house is this?
Whose night keeps out the light
In here?
Say, who owns this house?
It's not mine.
I dreamed another, sweeter, brighter
With a view of lakes crossed in painted boats;
Of fields wide as arms open for me.
This house is strange.
Its shadows lie.
Say, tell me, why does its lock fit my key?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없는 이 집밖에서 서성이는 화자는 불빛 한 점 허락하지 않는 "그늘진" 이 집이 "이상하다." 이 집이 화자의 집이 아닌 것은 확실하고 화자는 이 집을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해보인다. 화자가 꿈꾸는 집은 한가지 색이 아닌 "색색깔 보트"가 보이는 집이고 마치 자신을 환영하듯이 들판이 "활짝 열린 두 팔"처럼 펼쳐진 풍경이 있는 집이다. 그런데 독자로서 더욱더 이상한 상황은 화자의 "열쇠"는 이 집의 현관 "자물쇠"에 "딱 맞는"다는 사실이다. 자기집이 아닌데 맞는 열쇠는 있는 상황, 그런데도 자물쇠를 열고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화자는 우리에게 왜 자신의 열쇠가 이 집에 맞냐고 되묻는다. 이 이상한 집은 말 그대로 "집(house)"이지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우리집 또는 고향(Home)"이 아니다. 우리말로는 "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은 "Home"이라는 제목을 굳이 본글은 "고향"으로 번역할 수 밖에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이 이상한 집이고 흑인은 이 집에 들어갈 열쇠를 갖고 있지만 당당하게 들어가지 못하는 이 상황이 토니 모리슨이 보는 미국의 인종차별의 현실인 것이다. 흑인이 이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댓가를 치뤄야만 한다.
모리슨은 1950년대 미국의 남부와 한국전쟁을 대조하면서 흑인의 몸은 전쟁 이전과 이후에 상관없이 언제나 격전장이었음을 선포한다. "조지아(Georgia)주 로터스(Lotus)는 이 세상 최악의 장소이다. 그 어떤 전쟁보다 더 끔찍한 곳이다. 적어도 전쟁에서는 어떤 목적이나 흥분, 긴장감과 함께 이길 가능성이나마 있지 않은가. 물론 질 가능성이 더 높긴 하지만"(83)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로 인해 억압되어 있던 프랭크와 친구들은 차라리 한국전쟁을 일종의 탈출구로 여기기까지 한다. "마이크, 스터프와 나는 여기서 떠나 더 멀리 가길 바랬다. 군대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84). 전쟁이 끝나 미국에 돌아온 프랭크는 변함없이 그를 맞아주는 것은 인종차별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과거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현재의 모습은 삶자체를 무력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텐데 미래에 대한 계획이 다 무슨 소용인가. "로터스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지 예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래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질질 끌면서 시간만 죽일 뿐이다"(83). 여동생 씨이(Cee)가 아프다는 편지를 받고 그토록 저주하던 미국 남부 조지아에 할 수 없이 다시 돌아가야하는 프랭크의 여정과 그의 회상이 『고향』 의 이야기의 중심축이 된다.
정지된 남부의 시간은 전진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종횡하며 불안정하게 여러 시점에서 말하는 프랭크의 트라우마를 반영한 『고향』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 닮아있다. 예를 들어 미국 남부에서 종종 행해진 흑인에 대한 잔인한 고문과 살해인 린치(lynch)에 대한 프랭크의 기억으로 『고향』 은 시작한다. 어린 시절 텍사스의 반데라 카운티에서 목격한 린치는 프랭크의 뇌리에 생생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마을을 떠나라는 백인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던 흑인남성이 "파이프와 총대에 맞고"(10) 죽은 채로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목련나무에 매달린 모습"(10)은 이제는 재즈클래식이 된 빌리 할리데이의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의 가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1930년대에 실제로 일어난 린치사건을 소재로 쓰여진 이 노래는 포플러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흑인의 주검을 묘사한다. 『고향』의 회상장면은 종마사육장에서 벌어진 린치를 어린시절 프랭크의 시점으로 들려주다가 갑자기 마치 독자를 겨냥하는 듯이 끝을 맺는다. "그렇게 내 얘기를 해주겠다니까 하는 말인데 뭘 생각하고 쓰든지 이것만은 알아둬. 나는 정말 그 암매장은 잊어버렸어. 내가 기억하는 것은 종마들뿐이야. 너무 아름다웠거든. 너무 잔인했는데 마치 사람처럼 서있었어"(5). 프랭크가 단지 종마들만 선택적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상쇄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 임과 동시에 인종차별로 인한 프랭크의 남성성 약화도 암시한다. 흑인남성에 대한 린치와 암매장의 장소가 종마사육장이라는 점은 나중에 여동생 씨이가 인종차별적인 우생학(Eugenics) 실험대상이 되어 불임이 된다는 사실과 미래를 낳지 못하는 프랭크의 정지된 시간을 고려할 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듯 『고향』에서는 남성성 약화나 불임이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나 신체적 장애가 아닌 인종차별의 결과로 제시된다. 오히려 한국전쟁은 프랭크에게는 억압된 남성성과 공격성을 발현할 기회를 준다. "전투는 무섭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다"(93)고 고백하는 프랭크는 죽여도 다시 살아날 것만 같은 적군을 확인사살한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그들은 뒤돌아서서 사타구니에 총을 쏜다"(94)라며 다시 거세당하는 것을 경계하는듯한 프랭크의 말에서 한국전쟁과 인종차별, 적군과 백인우월주의자는 서로 중첩되는 것이다. 잠시 회복된 자신의 남성성이 먹을 것을 구하러 서성이던 한국소녀에 의해 다시 한번 자극을 받자 프랭크는 그만 소녀를 쏴버리고 만다. "그녀는 웃으며 그 병사의 사타구니쪽으로 손을 옮겼어. 그는 그만 놀라버렸지. 냠, 냠? 소녀의 손에서 눈으로 내 시선을 돌리자 이빨이 두 개 빠진 자리와 기대에 찬 눈동자가 보였는데 그 순간 그는 소녀를 날려버렸어. 쓰레기더미 위에 소녀의 손만 떨어졌지, 여전히 보물을 꼭 쥔채로. 곰팡이가 핀 썩은 오렌지 하나"(95) 3인칭과 1인칭을 오가면서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서술하는 프랭크는 짐짓 자신이 그 병사가 아닌 척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보초병은 역겨움 이상의 그 무엇을 느낀 것 같아. 난 그가 유혹을 느꼈기 때문에 죽인 거라고 생각해"(96) 소설 내내 뭔가를 감추는 것 같던 프랭크는 마침내 끝무렵에 가서야 "내가 그 한국인 소녀의 얼굴을 쏴죽였어"(133)라고 인정한다. 프랭크에게 한국전쟁은 언제나 피해자였던 자신이 가해자로 변하고 억압된 남성성이 폭력으로 분출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프랭크가 "내가 어떻게 그 소녀가 계속 살도록 내버려둘 수 있었겠어? 내게 있는줄도 몰랐던 걸 알게 해줬는데"(134)라고 말할 때 남성성의 폭력적 분출과 인종차별, 그리고 전쟁은 원인이 유사한 질환이 다른 증상으로 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즉 한국전쟁이 프랭크의 트라우마의 유일한 원인으로 환원되는 것을 경계하며 『고향』 은 고질병같은 인종차별과 젠더문제를 또 하나의 잊혀진 전쟁으로 볼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인종차별과 젠더문제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예로 모리슨은 지금의 잣대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우생학을 소설속에서 재조명한다. 앞서 말했듯이 프랭크의 여동생 씨이는 우생학 신봉자인 의사 닥터 스캇의 집에 가정부인줄 알고 들어갔다가 실험대상이 되어버린다. 닥터 스캇의 서재에는 매디슨 그랜트가 1916년에 출간한 인종차별적 우생학의 시초가 되는 책인 "『위대한 인종의 소멸(The Passing of the Great Race)』, 그 바로 옆에는 『유전, 인종과 사회(Heredity, Race, and Society)』"(65)가 당당하게 꼳혀있다. 20세기초 서구에서 융성했던 우생학은 인류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우성인종을 지원하고 열성인종은 도태시켜야한다고 주장하는, 소위 과학의 탈을 쓴 인종차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생학은 20세기초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이론이어서 핏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도 언급될 정도였다. 개츠비와 동시대인 1927년 미국연방대법원은 "벅(Buck) 대 벨(Bell)" 판례에서 "부적격자"의 불임시술을 합헌으로 인정했고 버지니아 주에서는 이를 심신미약자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남부의 몇몇 주들도 이에 동참했다. 20세기초 미국에서 약 7만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강제적으로 불임시술을 받았는데 대부분 흑인여성이었다는 통계도 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인들의 장애에 대한 공포는 우생학을 기반으로 특정 인종 자체를 "장애"로 취급하는 태도를 야기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씨이가 우생학에 의해 불임이 되는 것도 결국 열성인종을 후대에 장애처럼 물려주는 것을 막기 위함에 다름아니다. 모리슨의 1973년작 『술라(Sula)』에서 에바 피이스가 다리를 절단하고 보험금을 받아 자식들을 먹여살리듯이 모리슨의 여성캐릭터들은 사회의 편견과 병폐를 자신의 몸에 새긴 채 살아간다. 이들의 장애는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넘어서 사회의 도덕적 불구상태를 상징하는 것이다. 『고향』의 씨이의 몸 또한 잔인한 인종차별을 고발함과 동시에 오빠 프랭크의 정신적 회복을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리슨의 소설속에서 장애를 지닌 여성캐릭터들은 사회적 병폐를 드러냄과 동시에 치유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몸을 돌보는 동시에 공동체의 회복을 가꾼다고 볼 수 있다.
『고향』의 결말에서 프랭크와 씨이 남매는 소설의 첫 장면이었던 린치와 암매장의 장소인 종마사육장으로 돌아간다. 사회적으로는 잊혀진, 아니 암매장당한 인종차별의 현장으로 돌아가면서 프랭크는 씨이에게 그녀가 처음으로 완성한 퀼트 이불을 갖고 가자고 부탁한다. 오빠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씨이는 마을 흑인여성들의 살뜰한 보살핌으로 기력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들 흑인여성들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공동체적인 돌봄으로 아픈 씨이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보듬어준다. 이들 중 한명인 에텔(Ethel)은 씨이가 당한 고초를 듣고 단지 씨이의 육체적 회복만이 아닌 정신적 트라우마 극복도 돕고자 한다. "시시한 남자친구나 악마같은 의사 따위가 너가 누군지 결정하게 내버려두면 안돼. 그건 노예상태야. 네 안 어딘가에 자유로운 사람이 존재한다는 말이야. 그 사람을 찾아내서 이 세상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해보라구"(126). 공동체적인 돌봄으로 마침내 트라우마를 극복한 씨이는 마치 조각난 자신의 몸과 정신을 하나로 온전하게 재창조하듯이 퀼트 이불을 정성스럽게 만든다. 그녀의 회복을 상징하는 이 퀼트 이불로 남매는 이름없이 죽어간 흑인남성의 유골을 보듬어서 제대로된 장례를 치러준다. 어린시절 오빠 옆에서는 차마 무서워서 보지도 못했던 씨이였지만 이제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두려움에 떨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살육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그 어린아이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끔찍하다고해도. 이번에는 그녀는 움츠리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Home 141). 마침내 에텔이 말한 그 "자유로운 사람"이 된 씨이는 프랭크에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자(Let's go home)"(147)라고 말하며 새로운 희망과 치유의 가능성을 연다. 서두의 시에 나온 "더 다정하고 밝은 집"으로, 그저 집이 아닌 내가 쉴 곳인 고향으로, 우리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진주영 순천향대학교 영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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