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위에 건물주” 팝업 뜰수록 미소짓는 성수동 건물주, 왜?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2023. 11. 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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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 팝업에 참석한 가수 이효리(왼쪽). 성수동 버버리 팝업 스토어(오른쪽). [헤럴드POP][버버리]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디올, 샤넬, 루이비통, 버버리, 자크뮈스. 청담동부터 두드렸던 명품 브랜드들이 이제 성수로 향한다. 잠깐 떴다 사라지는 ‘팝업’(Pop-up) 스토어를 위해서다. 공교롭게도 명품 팝업이 뜰수록 조용히 미소 짓는 건 성수동 건물주란 얘기가 나온다. ‘억’ 소리나는 임대료가 주 단위로 따박따박 들어온다는 성수동.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성수동 그 자리, 일주일에 2억원?”

성수동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300평 단위 대형 물건의 일주일 임대료는 2억원까지 치솟는다. 수백 만원대 임대료로 빌릴 수 있는 공간은 10평 안팎 소형 공간 뿐이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뛴 가격이다.

“건물주 앞에서 거의 PT(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브랜드도 있어요.” 일주일에 억 단위로 치솟는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빈 자리는 찾기 힘들다. 팝업 매장들이 밀집한 연무장길 메인 대로는 내년 초까지 단기 임대가 꽉 차있다.

자크뮈스 성수동 팝업스토어 ‘Le Cafe Fleur’. [자크뮈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기 있는 자리는 건물주가 갑이다. 원하는 일정에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여러 브랜드끼리 ‘입점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벌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리를 따내기 위해 건물주 앞에서 거의 PT(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브랜드도 있더라”며 “비용은 브랜드가 내지만 건물주가 사실상 갑(甲)”이라고 말했다.

팝업 열풍 속에 성수동 부동산 시장도 심상치 않다. 지난 10월,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연무장길 ‘무신사캠퍼스E1’을 1115억원에 매각하면서 무려 895억원의 매매차익을 남겼다. 토지를 매입해 건물을 새로 지은 지 단 4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인스타그램]
“팝업 왜 가냐고요? 사진 맛집이잖아요”

업계는 이 같은 팝업 마케팅의 인기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말한다. 코로나 엔데믹(전염병 풍토병화) 이후 오프라인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그들을 불러들일 미끼 콘텐츠로 낙점된 게 팝업스토어라는 설명이다.

팝업 스토어는 매장 자체가 하나의 광고판이다. VIP들의 방문과 매장 디스플레이가 볼거리를 제공하고, 오프라인 공간을 찾아온 충성심 높은 소비자들의 인증샷이 인스타그램 피드(feed)를 가득 채운다. 이 모든 과정은 놀랍도록 매끄럽고, 자발적이며, 자연스럽다.

'미스 디올' 성수동 팝업 스토어에 방문한 블랙핑크 지수. [디올]

팝업이 성수동에 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연쇄작용의 핵심인 Z세대가 청담동이 아닌 성수동으로 향하기 때문. 이들은 명품 시장이 정조준하고 있는 새로운 소비층이다. 기존 포트폴리오 내에선 시계·쥬얼리 등 고부가가치 품목을 중심으로 M(밀레니얼)세대 소비자를 흡수하고, 이보다 젊고 주머니가 가벼운 Z세대를 대상으로 의류·가방·스몰럭셔리 마케팅에 나서는 양상이다.

“치솟는 임대료…이러다 다 죽어” 자치구, 칼 빼든 이유 봤더니

“최근 연무장길(성수동 2가)에서 평당 1억원하던 곳이 1억5000만원, 2억원으로 연달아올랐다. 이젠 급기야 2억5000만원에 팔리는 사례도 나왔다.” (정원오 성동구청장).

계속된 성수동 팝업 열풍은 어느새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 임대료 상승 현상)의 그늘을 우려해야 할 수준까지 왔다. 팝업스토어처럼 임대 기간이 짧으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등의 제약 없이 임대료를 올려도 막을 길이 없다. 이들이 쏘아올린 임대료 상승이 성수동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온 터줏대감 가게들을 쫓아내면, 상권 전체가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성수동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동구청]

성동구 자체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성동 지역 상가 임대료는 서울 시내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폭(2020년 대비 42%)을 보였다. 최근 포착된 성수동 부동산의 손바뀜 징후들도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올 3분기 성수동의 상가주택, 토지, 원룸, 다가구, 단독주택, 건물의 거래 건수(28건)는 강남구 역삼동(24건), 논현동 (22건)을 앞설 정도로 활발했다.

천정부지로 오른 임대료에 칼을 빼든 건 구청이다. 지난 10월 29일 발표된 성동구청은 성수동 전체 지역에 대한 토지거래허가 구역 지정을 서울시에 요청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재산권 침해라는 실(失)보다 부동산 가격 억제에 집중한 결정이다.

“당장 눈 앞의 이익을 쫓기보단 장기적으로 동네가 발전돼야 한다.” 8년 전 어느 날,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건물주 52명을 포함해 상가 임차인 등 100여명은 상생협약을 위해 모였다. 이 자리에서 한 건물주는 “거품만 키우면 터진다”며 상생을 강조했다. 황금알 낳는 거위를 죽이지 말자는 성동구의 제안, 2023년의 건물주들 역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핫플’ 성수의 운명이 또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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