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아쉬움 속에도 빛난 '원신 오케스트라'
원신 오케스트라 연주는 완벽했다. 오랜만에 안두현 지휘자의 우아한 손동작을 감상하니까 반가웠고 눈은 끝없이 즐거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사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행운 자체에 감사해야 할 수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배부른 소리일 수 있어도 오케스트라 입장권이 저렴하지도 않은 만큼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리하자면 원신 오케스트라는 메이플스토리, 로스트아크, 리니지, 테일즈위버 등 최근 개최된 수많은 오케스트라 중 최악이었다. 음악회는 환상적이고 완벽했지만 장소와 운영에서 너무나도 아쉬웠다.
기자는 5시 30분에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 도착했다. 처음 와봤는데 지하철 역과 꽤 멀어서 당황했다. 회기역에서 내리면 약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수많은 관람객이 특전을 받거나 MD를 구매하고 있었다. 음악회 시작까지 30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끝없이 세워진 대기열을 보며 과연 이 분들이 제 시간에 입장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시간이 애매하니까 특전을 받지 않고 곧장 입구로 향했다. 원신 테마로 꾸며진 평화의 전당 입구가 눈을 사로잡았다. 입구 뒤에는 오케스트라 대표 캐릭터들의 등신대가 나열되어 있었다. 기자의 애정 캐릭터 중 하나인 유라를 보니까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메인 홀에는 종려, 타르탈리아, 소, 감우, 유라 등 각 캐릭터들의 코스어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평범한 오케스트라 입장 과정이다.
입장 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대기열을 발견했다. 혹시 팜플렛을 주는 곳인가 봤는데 화장실이다. 화장실이 1층에 1개 밖에 없는 탓에 장사진을 이룬 것이다. 다른 곳에서 화장실을 미리 들리고 평화의 전당으로 가라는 지인의 조언이 적중했다. 다른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다.
5시 46분쯤 입장해 착석했다. 대기 시간에는 원신 로그인 오프닝 곡이 흘러나왔다. 보통 팜플렛이나 가이드북이 제공되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 옆에 앉은 관람객은 친구를 따라온 모양이다. 몬드 성이 무엇인지 물어볼 정도로 원신을 모르는 상태였다. 가이드북이 있다면 원신을 모르는 관람객들도 미리 예습해서 더 몰입할 수 있을 텐데 다소 아쉬웠다.
6시가 됐다. 보통 공연은 시간을 엄수한다. 하지만 정각이 됐는데 오케스트라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연된다는 안내 방송도 없다. 7분 정도 지나서야 오케스트라가 등장했고 9분에 첫 곡 연주가 시작됐다. 사소하지만 피드백이 확실히 필요한 대목이었다.
첫 곡은 원신 로그인 오프닝 곡이다. 대기 시간에는 디지털 음원이었다면 이제는 아날로그 연주다. 확실히 디지털 연주는 왠지 모르게 차갑고 아날로그 연주는 따뜻하다. 음악을 잘 모르는 기자도 두 연주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연주가 시작되니까 여러 문제들이 몰입을 저해했다. 먼저 관람석 각도다. 1층 기준 관람석에 고저차를 두긴 했지만 그 기울기가 너무 완만해서 앞사람이 시야를 방해했다.
두 번째는 조명이다. 바바라 테마곡부터 관람석으로 의미 없이 밝은 조명을 비추니까 시야가 혼란했다. 요이미야 폭죽에 맞춰 조명을 비추는 연출 등 적절한 타이밍에 활용된 조명은 훌륭했지만 전반적인 조명 운영은 확실히 퀄리티가 떨어졌다.
가장 최악은 주최 측 운영이었다. 오케스트라 연주 도중 수많은 관람객들이 움직였다. 앞선 특전 대기열이 결국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한창 연주가 진행 중인데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관람객도 보였다. 그 어떤 공연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다른 관람객들도 불만을 표했다. 인터미션 시간이 되자 주최 측에 항의하는 관람객도 속속 나타났다. 다행히 피드백이 반영됐다. 인터미션 시간이 끝나면 입장할 수 없다고 안내해 2부에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았다.
여러 불만 포인트가 있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연주회는 정말 완벽했다. 솔직히 귀여운 클레와 유라 BGM인 '문라이트 스마일'을 들으니까 운영 미숙 탓에 몰려온 짜증이 사그라들었다.
원신 오케스트라는 각 지역 대표 캐릭터 트레일러 BGM을 우선 선보였다. 이나즈마로 예를 들면 카미사토 아야카, 산고노미야 코코미, 야에 미코 등을 조명하는 방식이다. 캐릭터가 중요한 원신에 적절한 스타일이었다.
안두현 지휘자는 종려보다 멋있었다. 가야금, 빈소 등 오케스트라에서 보기 드문 악기들도 마냥 신기했다. 피리와 비슷한 악기 독주 파트도 있었는데 듣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랜만에 캐릭터 트레일러를 정주행하니까 라이덴 쇼군 트레일러에 호요버스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프레임 단위로 사용된 애니메이션과 텍스쳐 볼륨이 다른 트레일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연주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끝난 줄 알고 관객석에서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안두현 지휘자가 재치 있게 왼손으로 아직 아니라고 신호했다. 지휘자의 임기응변이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 원신 '삼천세계의 순례가 퍼포먼스 버전' 수메르편 두 번째 OST 홍보 MV
아이테르가 수메르 지역으로 이동하면 음악 패턴이 달라진다. 이나즈마까진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조명했던 반면 수메르에서는 각 캐릭터들의 스토리를 조명한다. 닐루, 나히다, 타이나리 등을 모르는 관람객에겐 접근성이 떨어졌지만 원신 팬 입장에선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피날레는 '스카라무슈 보스전'이다. 수메르편 두 번째 OST 홍보 MV에서 봤던 Paolo Andrea Di Pietro 소프라노가 직접 참여해 노래를 불렀다. 정말 웅장하고 몰입감 넘치는 목소리다. 정말 귀를 쫑긋 세우며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목소리와 성량을 마이크와 앰프들이 제대로 잡지 못해 장소 관련 아쉬움이 더 컸다.
마지막은 폰타인 메인 테마로 장식됐다. 입장권을 구매할 때 수메르까지만 언급되어 기대도 하지 않았던 탓인지 폰타인 음악이 연주되자 깜짝 놀랐다. 리니와 리넷도 무척 반가웠다.
순식간에 1시간이 지나갔다. 장소와 운영은 불만족스러웠지만 언제 이렇게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원신 오케스트라를 직접 볼 수 있었던 경험은 정말 행운이라 생각한다. 폰타인 지역에도 매력적인 캐릭터와 음악이 많다. 그 음악들도 오케스트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다음에는 더 좋은 장소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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