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더니…황당 포퓰리즘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기존 입장을 뒤집는 경우가 있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가 중요하다면서도 이를 번복한다. 정부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을 대상으로 2024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경우도 그렇다. 개인투자자를 바라본 2024년 총선용이라는 것 외에 이를 도입할 시기나 이유 등이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금융위원장, 8개월 만에 입장 바꿔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023년 11월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증권시장 공매도 금지 조치’안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공매도 금지 이유는 시장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외국 투자은행(IB)들의 관행적인 불공정거래 등으로 공정한 가격 형성, 거래 질서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2023년 3월 김 위원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자본시장 육성, 국내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의 보호 육성 관점에서 공매도도 당연히 정상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8개월 만에 입장을 바꿨다.
불확실성으로 공매도 금지 조치를 했는데 시장 반응은 오히려 더 출렁였다. 정부 조처 시행 첫날인 11월6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34.03포인트(5.66%) 올랐다가 다음날엔 58.41포인트(2.33%) 하락해 2443.96으로 장을 마쳤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도 57.40포인트(7.34%) 올랐다가 다음날 15.08포인트(1.80%) 하락해 널뛰기했다. 코스닥 시장에선 이틀 연속 ‘사이드카’(매매호가 효력 일시 정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공매도가 (변동성의) 요인 중 하나지만 이것 하나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매도는 주식 종목의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거래하는 투자 방식이다. 삼성전자가 1주에 7만원이라면 향후 하락하리라 예상하는 투자자가 우선 7만원에 빌려 팔고 상환 기간 안에 떨어졌을 때 사서 갚아 차익을 노리는 방식이다. 예상과 달리 주가가 7만원 이상으로 오르면 더 비싼 값에 사서 갚아야 해 손실을 본다. 크게 무차입 공매도(Naked Short Selling)와 차입 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로 두 방식이 있는데, 국내에선 차입 공매도만 허락하고 있다. 공매도는 하락장을 이끄는데다 개인투자자가 참여하기엔 규제 등 장벽이 있어 기관과 개인 간 불평등을 가져와 개인투자자의 원성을 사왔다. 반면 주식시장 급등을 막고 거래 활성화를 통한 유동성 공급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23년 2월 ‘공매도 규제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인식과 달리 공매도는 가격 발견에 기여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공매도의) 순기능을 부인하기 어렵다면 전면 금지와 같은 극단적인 접근 방식보다는 그 기능은 유지하되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공매도 규제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 선진국에선 공매도를 허용한다. 코로나19 때 한국은 14개월간 금지했지만 미국과 영국, 일본, 독일 등은 그때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연합(EU) 국가만 2020년 3월 공매도 금지 조치를 도입했다가 2개월 만에 해제했다.
선거용 금투세·부동산세 개편… “세제 신뢰 잃어”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도입한 조처에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청한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이번 조처는 규제의 일관성, 합리성 등을 찾기 힘들어 ‘총선용’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주식시장은 변동성이 커졌고, 외국인 자금은 이탈 가능성이 높아져 장기적으론 개인투자자도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임원도 “보수 정부가 시장원리를 저버리고 이번 조처를 한 것이 이해가 안 간다”며 “자동차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그걸 고쳐야지 아예 브레이크를 빼버렸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정책 신뢰도다. 선거를 앞두고 정책이 바뀌는 탓이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선거가 정책을 압도했다”며 “정부의 변덕스러운 조처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도 “한국 주식시장이 다시 후진국이 된 것”이라며 “2023년 들어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분위기였는데 정부 조처를 믿을 수 없다며 다시 떠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과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나 부동산 보유세 등도 선거로 애초 정책이 뒤집혔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소득세법을 고쳐 2023년부터 증권거래세(코스피 농어촌특별세는 유지)를 없애고 금투세를 도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후보는 주식 양도소득세를 전면 폐지하기로 공약했고, 취임 뒤에는 금투세 도입을 2년 미루고 증권거래세 인하만 추진하기로 했다. 자본시장 선진화라는 목표는 선거로 후퇴했다.
부동산세도 비슷했다. 문재인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으로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함께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종부세 최고 세율은 3.2%에서 6%까지, 양도세 최고세율은 50%에서 70%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2021년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하자 양도세 공제 한도를 12억원으로 높이는 등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2020년 발표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종부세 완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윤석열 후보는 보유세를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고, 양도세 역시 강화된 세율 적용을 2년 유예하겠다고 약속했고, 당선 뒤 이를 시행했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김수현 세종대 교수(공공정책대학원)는 <부동산과 정치>에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동산 세제는 신뢰를 잃어버렸다. 부동산 세금을 시끄럽게 만듦으로써 세금 불복 심리만 높이고, 버티면 된다는 믿음을 주고 말았다”고 짚었다.
조정해야 할 단계·기간 유예해
잦은 정책 변경은 향후 위험을 키우는 악수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부풀려진 주택시장이나 가계부채 등을 안정화해야 할 단계에서 오히려 기간을 유예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코로나 시기에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고 가계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총선을 의식해 조정할 시기를 뒤로 미루고 있다”며 “그럴수록 나중에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10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송언석 국민의힘 예산특위 간사가 같은 당 의원에게 “김포 다음 공매도로 포커싱하려고 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문자메시지대로 김포의 서울 편입, 공매도 금지 조처가 잇따라 나왔다. 2024년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또 다른 정책 변경이 나올 수 있다. 그럴수록 정부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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