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마신 음료의 정체…정말 술이 맞을까 [전형민의 와인프릭]
가죽채찍을 들고 중절모를 멋들어지게 쓴 채 역사를 쫓아 모험을 즐기는 꽃중년 이야기를 아시나요? 영화 인디아나존스 시리즈 입니다. 시리즈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서 개봉했습니다만, 1990년대를 넘어 2000년대까지 추석이나 설날이면 언제나 TV를 통해 방영되던 단골 영화로 세대를 넘어 사랑 받았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건 3번째 작품인 최후의 성전(The last crusade)편인데요. 극 중 앞선 두 편의 활약으로 ‘핵인싸’가 된 인디아나 존스 박사(해리슨 포드)가 성배(聖盃·Holy Grail)를 찾기 위해 아버지(숀 코너리)와 함께 이탈리아 베니스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요르단 페트라 등을 오가며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성배.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이하 ‘예수’로 표기)가 최후의 만찬 당시 제자들에게 마시게 한 포도주를 담았던 잔으로 알려져있죠.
성경 속 구절 덕분에 성배는 운명의 창(聖槍·Holy Lance,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로마 백인대장 성 론지노의 창)과 더불어 중세 이후 현재까지 각종 문학과 전설 속 최고의 떡밥(화젯거리·화두를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이기도 합니다. 온갖 신화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성배와 포도주의 이야기, 와인 애호가의 시각에서 한번 파헤쳐볼까요?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장 27~29절)
일부에서는 성배를 예수의 죽음 후 그의 장례를 책임졌던 아리마대의 성 요셉이 예수의 피를 받기 위해 십자가 아래 두었던 잔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액체를 담기 위한 그릇이었음은 확실합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유리잔은 아니었겠죠. 당시 박해받던 예수의 상황과 지역의 문화 수준을 봤을 때, 나무잔이라는 게 가장 현실적인 추론입니다.
아무튼 신화와 전설에 따르면 예수 사후 수세기 동안 감춰진 채 모처에서 보관됐다는 성배는 12세기 무렵 십자군 전쟁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십자군 전쟁의 명분으로 활용된 건데요. 이 과정에서 성배에 포도주를 담아 마시면 영생을 누린다는 등 성배의 신묘한 능력에 대한 여러 컬트적 상상력이 결합돼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근데 대부분 성배와 관련한 이야기들은 허구에 가깝습니다. 오죽하면 성배를 뜻하는 영어 단어, grail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룰(찾을) 수 없는 것’이라는 뜻도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성배를 찾는다는건 곧 신을 찾는다는 것하고 같은 의미야. 신이 진짜로 존재하는지는 나도 모르네. 하지만 내 나이가 되면 그렇다고 믿고 싶어지지.” (마커스 브로디, 인디아나 존스에서)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기원 후 30~40년 사이 고대 로마 시대에 유행한 음료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죠. 다행히도 예수와 로마 시대보다 수천 년 전부터 레반트(현재의 시리아와 이스라엘 부근) 지역에서 포도주는 흔하게 음용되는 음료였습니다.
여러 역사서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동부 지중해 전역에서 포도주는 일반적인 가정 식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현대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죠. 현대의 포도주에 포함된 알코올 농도가 대체로 12~15%인 것에 비해 당시는 포도주 알코올 농도가 4~6%를 조금 넘지 않는 수준까지 포도주에 물을 타서 마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풍습은 당시 레반트 지역을 정벌한 로마 군인들을 통해 지역에 전파 됩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매일 일정량의 포스카(Posca)라고 불리는 신 와인을 보급 받아 여기에 허브 등 향을 곁들인 다음 물에 타서 마셨다고 하는데요. 이 문화가 현지에 퍼진 것이죠.
군인들이 포스카를 물에 타 마신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시어진 와인과 허브는 당시 정수되지 않은 물을 소독하고 갈증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시큼한 맛 덕분에 갈증 해소에도 제격이었고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로마 군단은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현지의 물을 그냥 마시기보다 신 와인을 타서 먹었던 것이죠.
실제로 성경에도 포스카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그 시절 그 장소에서 와인을 물에 타먹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는 방증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Golgotha·해골이라는 뜻) 언덕을 오를 때 로마 병사가 그를 희롱하며 건네던 바로 그 음료 입니다.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누가복음 23장 36~37절)
구체적으로는 어떤 품종의 포도였을지가 관건이겠군요. 가장 유력한 것은 레반트 지역에서 오랜 기간 키워온 포도,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원산지로 하는 포도 품종인 함다니(Hamdani)입니다. 마라위(Marawi)라고도 불리는데요. 기원 전부터 이 지역에서 널리 길렀던 품종으로 전해집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성배에 와인을 따라주며 ‘이것은 나의 피’라고 언급하는 만큼 당연하게도 우리는 레드와인을 떠올립니다만, 함다니는 청포도 품종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만약 적포도 품종으로 빚은 레드와인이었다면, 현대의 발라디(Baladi) 품종이 가장 유력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 원산의 적포도로 바삭바삭한 식감과 적당한 산미가 특징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베들레햄 근처에서 자생한 품종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발견되는 포도주 항아리 유적들에서도 당대 레드와인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한 항아리에는 ‘검은 건포도로 만든 포도주’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항아리의 비문에는 ‘매우 진한 포도주’와 같은 설명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주목해야할 점은 건포도로 만든 포도주라는 대목 입니다. 레반트 지역의 덥고 건조한 기후를 감안하면, 이탈리아 북부에서 아마로네를 만들던 아파시멘토 기법(로미오와 줄리엣의 와인…‘달콤 쌉싸름’ 맛에 빠지다편 참고)과 비슷한 방식의 건포도 와인을 양조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추측이 나옵니다.
특히 현재 베들레헴에 있는 크레미산 수도원의 살레시안 수도사들이 양조하는 포도주가 건포도 뉘앙스를 지녔다는 점도 묘하게 연결됩니다. 크레미산 와이너리는 현대 와인 중 당시의 맛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명성을 자랑하는데요. 이 와이너리의 발라디 포도로 만든 레드와인에서는 건포도의 향과 맛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앞서 소개했던 인디아나 존스 3편에서 백미로 꼽히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성배를 찾았지만, 성전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인디아나는 갈라진 땅 틈에 떨어질 위기에 처하면서도 손이 닿을듯 말듯한 성배에 욕심을 냅니다. 아버지가 40년 간 찾아해멘 물건이자 세상에 다시 없을 보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정작 누구보다 성배를 원했을 아버지가 인디아나에게 나직히 “Let it go(내버려두자)”라고 설득하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인디아나는 아버지와 힘을 합쳐 무너지는 신전을 무사히 탈출합니다. 때론 과감히 욕심을 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교훈 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도 없이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때로는 그 욕심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과도한 욕심은 언젠가 화를 부르는 법, 오늘 저녁은 와인 한 잔과 함께 욕심 때문에 소홀했던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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