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인 나는 협동조합의 주인인가?
[조수미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교육·기획 팀장(coopy_coop@daum.net)]
최근 뉴스들을 보면 2년 전에 세계협동조합대회를 개최한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회적경제와 협동조합에 대한 정책 환경들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 농협, 신협 등과 같은 오래된 역사와 규모를 가진 협동조합들과 90년대 등장한 생협, 그리고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 이후 설립된 다양한 유형의 협동조합이 공존하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사업, 규모, 정책, 분야가 전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의 협동조합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조합원, 협동조합의 가치를 결정하는 주체
2019년부터 필자는 쿠피협동조합의 연구원으로 쿱인덱스 진단용역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협동조합을 평가하는데 조합원이 참여하는 개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협동조합을 평가하는 것은 협동조합이 가진 사회적 임팩트를 측정하는 것이고, 이를 설명하는 지표들은 매출액, 고용인원 등을 객관적인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을 통해서 얼마나 만족을 얻고 삶의 수준을 높였는지에 대해서는 측정하기 어렵거나 내부적인 문제로 여겨져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쿠피협동조합은 2019년 캐나다의 협동조합 전문가들로부터 만들어진 협동조합 자가진단 모델인 쿱인덱스(Coop-index)를 한국의 상황에 맞게 다시 개발하였다. 이 과정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협동조합을 평가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고자 하는 연구 용역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쿱인덱스가 지향하는 것은 분명했다. 협동조합 평가과정에 조합원을 참여시키고, 조합원이 스스로 협동조합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협동조합을 발전시키는데 조합원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우리 조합원은 협동조합에 대해서 무엇이 불만인가? 우리 조합원은 협동조합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주식회사에서 이익을 극대화하여 주주 가치를 얼마나 돌려줄 것인가와 같은 질문과 유사하다. 왜냐하면 협동조합은 멤버십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합원들이 다들 이런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었네요. 우리끼리는 이런 얘기 못해요."
쿱인덱스에 참여한 협동조합 중 설립연도가 오래될수록 진단결과의 해석은 각 협동조합의 역사에 따라 달라진다. 10년 이상의 시간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조합의 어려운 시간을 보낸 조합원들은 쿱인덱스를 통해서 각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협동조합에 애정을 가지고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사업의 지속가능성,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충분히 참여할 수 있다는 마음도 세부적인 진단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인터뷰 했던 한 협동조합의 이사는 쿱인덱스를 하면서 이사회에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 같아 전략을 결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증언했다.
"조합원들은 권리를 주장하면서 의무는 다하지 않아요. 협동조합을 잘못 알려준 것 같아요."
막상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여러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경영진들은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잘하는데 협동조합의 경영진과 이사회는 잘하고 있지 않다’는 조합원들의 인식도 세부적인 진단결과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협동조합을 통해서 조합원으로 얻을 혜택에만 큰 관심을 두거나, 의사결정 과정에 조합원의 의결권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모습들을 보고 나면 경영진으로서는 사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 마저도 현재 우리 조합원의 평가라면, 협동조합을 제대로 교육하고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즉, 협동조합의 생존은 조합원의 참여에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
한국의 협동조합 기본법이 설립 조건에 5명의 조합원(발기인)을 두고 있지만, 실제 협동조합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조합원이 5명 미만인 곳도 상당하다. 특히 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협동조합들의 다수는 사업자 협동조합 유형을 가지고 있는데(‘기본법 협동조합 유형’ 참고). 이 경우 멤버십을 구성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독립된 사업자 혹은 생산자로 협동조합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할 주체들이다.
'조합원인 나는 협동조합의 주인인가?' 조합원인 내가 나서지 않으면 협동조합은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조합의 활동에 동의하지 않으면 결코 민주적인 운영은 지속될 수 없다. 협동조합의 멤버십은 그런 의미이다.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조합원은 소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조합이 지속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생산자협동조합에서 조합원은 유/무형의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조합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사업자협동조합은 각 사업자들이 의기투합하여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협동조합이 외부에 서비스를 제공할 때 문제가 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
조합원이 소유하고, 통제하며, 조합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사업체
조합원이 소유하고, 통제하며, 조합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사업체. 협동조합을 정의하는 말이다. 이 문장만큼 협동조합의 핵심을 설명하는 것은 없다. 더 줄이고, 더 핵심을 뽑아낸다면 '멤버십(membership)'이다. 한국말로 번역할 때는 보통 '조합원 제도'라고 하는데, 멤버십은 좀 더 어떤 개인이 한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며, 그룹의 일원으로서 가지는 권리, 의무 등을 설명한다. 멤버십은 협동조합을 운영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조직의 DNA와 같은 역할을 하며 조직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조합원은 협동조합의 주인이다. 조합원은 협동조합의 존재 이유이며, 조합원을 중심으로 운영되지 못하면 협동조합은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협동조합 은행은 경영 의사결정에 조합원을 중심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 멤버십 보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투자자 소유 기업 중심의 경영 실천들을 적용했기 때문에 멤버십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질문에 떠오른다. 그렇다면 멤버십을 기반으로 하는 협동조합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처음과 마지막, 멤버십
전세계적으로 사회연대경제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민주적 거버넌스와 자율성, 자발적이고 개방된 멤버십을 지키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사회적 가치, 사회 혁신, 지역 등의 이슈에 '멤버십'이 밀려서는 안되며, 협동조합은 사회를 구성하는 조합원들을 위한 사업체이자 결사체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멤버십은 조합원만을 말하지 않는다. 조합원과 협동조합이 서로 관계를 맺고 만들어나가는 다양한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다. 협동조합을 설립했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인에게는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주어진다. 협동조합을 통제하고 협동조합으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동시에 협동조합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참여할 의무가 있다.
* 글을 쓴 조수미 박사는 협동조합을 연구하는 지식생산자들이 함께 소유하고 관리하는 쿠피협동조합의 조합원이자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조수미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교육·기획 팀장(coopy_co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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