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민과 안은진의 절절한 사랑으로 '연인'이 끝끝내 하려는 이야기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11. 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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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버렸지만, 꿋꿋하게 살아 사랑하는 ‘연인’에 열광하는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 "네가 말해? 여기가 어디냐? 네 뒤에 있는 자가 누구야?" MBC 금토드라마 <연인>에서 내사옥에 끌려온 이장현(남궁민)은 다짜고짜 고문을 가하며 배후를 묻는 자에게 그렇게 되묻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는 다름 아닌 인조(김종태)의 모습이 보인다. 이장현이 질문하는 저들의 배후가 바로 왕이라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 왕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김무준)가 역심을 품은 건 아닌가 의심한다. 그래서 청나라 심양에서 소현세자가 거뒀던 조선인 포로들을 조선으로 오게 하려 하자 그들을 사병이라 여기고 귀환을 막으려 한다. 겨우겨우 강을 건너 조선 땅에 발을 디뎠던 포로들은 그래서 왕이 보낸 이들에게 공격받고 다시 청나라 심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붙잡힌 이장현과 몇몇 농꾼들은 내사옥에 끌려와 고문을 받다 죽어나간다.

그 소식을 들은 소현세자가 나서 저들은 그저 포로이고 백성이라 강변하지만, 인조의 눈은 멀었고 귀는 막혀 버렸다. 소현세자가 생각하는 백성과 인조가 생각하는 백성은 너무나 다르다. 인조는 백성을 하찮게 여기고 그래서 자신이 저지르는 이런 일도 '대단치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소현세자까지 나서 그들을 구하려 하자, 오히려 이를 의심한다. "그저 백성"이 아니라 "동궁을 보위에 올려줄 자들"이라 몰아세운다.

그런 인조를 보며 소현세자는 눈물로 호소한다. "전하. 저들은 피땀 흘려 심양 논밭을 일군 농꾼이었고, 조선에서 부르던 노래를 심양 땅에서 다시 부르며 조선을 그리워하던 포로들이었고, 목숨을 걸고 도망친 전하의 백성들이옵니다. 저들이 어찌 역심을 품었다 하시옵니까?" 소현세자가 보고 듣는 것을 인조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그저 궁에 앉아 자신의 보위를 누군가 노리고 있지나 않을까를 걱정하는 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반면 그 궁을 떠나 심양까지 끌려간 소현세자는 그 경험으로 오히려 눈과 귀가 열렸다. "소자가 본 것을 전하도 보옵소서. 백성들이 소자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나이다. 소자 그곳에서 백성들이 흘리는 땀 냄새를 맡고, 백성들이 흘리는 눈물 맛을 보았나이다. 세상 그 어떤 진미보다 달고 그 어떤 비단 옷보다 고운 광경. 전하께오서도 보셔야 하옵니다. 보신다면 소자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허면 그들을 살리고 싶으실 것이옵니다." 하지만 이런 아들의 간곡한 간언에도 인조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연인>은 이장현과 유길채(안은진)의 병자호란이라는 전쟁과 그 전후의 대혼란 상황 속에서의 운명적인 만남과 이별, 재회를 그리고 있다. 도망한 포로라는 누명을 쓰고 심양까지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은 유길채를 이장현은 제 온 몸을 던져 구해냈고 짧은 시간이나마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끝내 눈물을 삼키며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조선으로 돌아온 유길채는 남편 구원무(지승현)를 찾았지만 그가 이미 다른 여인을 들였고 심양까지 끌려갔다 돌아온 유길채를 이른바 '환향녀'로 바라보는 것에 이혼해 홀로 자립해 살아간다. 그러다 조선으로 돌아온 이장현을 만나 드디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절절하고 애틋하고 때론 달달한 이장현과 유길채의 사랑을 가로막는 건 조선이라는 나라다. 인조라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고 눈과 귀를 막아버린 왕이다. 그래서 "네 뒤에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물을 때 순간 <연인>이라는 드라마의 날선 대결의식이 드러난다. 그저 원하는 건 소박하게 사랑하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일 뿐이지만, 이 민초들의 작은 바람도 허락하지 않는 나라라니. 나라 때문에 갖은 핍박을 받고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백성들을 역도라 부르고 그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일을 대단치 않은 일이라 말하는 왕이라니.

<연인>은 이러한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사랑하는 이장현과 유길채의 이야기다.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시체들 사이에 쓰러져 있는 이장현을 유길채는 끝끝내 찾아내고 그 식어가는 몸을 자신의 따뜻한 몸으로 덮어준다. 그리고 끝내 그를 구해낸다. 그건 마치 나라가 백성을 버려도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결코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걸 말하는 듯 하다. 어찌 보면 멜로사극의 외피를 입은 <연인>에 지금의 대중들이 열광하는 건 이러한 시대인식이 주는 공감이 커서가 아닐까.

유생들의 대표로 나선 장철(문성근)이 인조를 독대해 쏟아내는 고언들은 그래서 그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지금에도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조선은 백성이 충절과 정절로 위를 섬기고, 섬김 받는 임금은 백성에게 의리를 지키는 나라이옵니다. 헌데 전하께오서 은밀하게 백성을 죽임으로써 그 의리를 저버리시다니요. 하늘을 노엽게 하시다니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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