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 침범해서 사고 났는데 과실 100:0 아니라고? [도통 모르겠으면]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2023. 11. 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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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교통법 모르겠으면’은 손해보험협회의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인정기준·분쟁심의 사례와 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흥미로우면서 전문적인 교통사고 해설을 전합니다. 과실비율을 명쾌히 내놓을 수는 없지만, 여러분의 운전생활에 도움이 될 지식을 담겠습니다. 구독자분들이 교통법규를 몰라서 위반하는 일이 사라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동차가 중앙선을 침범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은 운전대를 잡아보지 않은 어린이들도 모두 알고 있는 규정입니다.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면 같은 이야기를 조금 다른 표현으로 배우게 되는데요. “중앙선을 넘어 사고가 나면 과실이 무조건 100%”라는 것이죠. 아마도 운전면허 학원에서 연수를 받으며 이런 이야기를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제로 저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운전을 해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손해보험협회에서 운용하는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분쟁심의위원회에 접수되는 사건들도 대부분 100% 과실비율이 인정된다고 합니다.

다만 세상에 ‘무조건’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원칙은 흔치 않고, 중앙선을 침범했을 때 과실이 100%가 아닌 예외사항도 존재하는데요.

‘알아두면 쓸모있는 교통상식’ 이번 회차에서는 중앙선을 침범했는데도 100:0이 나오지 않은 사례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혹시나 평소에도 반대편 차량이 넘어올 것을 대비하며 운전해야 하나 우려하실 수 있는데, 평소에 교통규정을 준수하고 사고를 피하겠다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후술될 사례들을 읽어보면 최소한의 피양(避讓)의무도 다하지 않은 경우들에 한해 중앙선을 침범당한 운전자도 과실이 인정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인천 송도에서 발생한 중앙선 침범사고 현장사진
중앙선 넘었다고 일부러 박았나...100M 앞에서 보고도 충돌, 핸들 왼쪽으로 꺾은 일도
지난 2000년 대법원의 판결(2000다16664)에서는 중앙선을 침범당한 트럭운전자의 과실이 30%나 나온 일이 있습니다. 이 트럭운전자는 약 97m 전방에서 상대 오토바이가 중앙선을 넘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2차선으로 피하거나 경적을 울려 위험을 알리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무거운 짐을 싣고 제한속도를 55km/h나 초과한 것도 잘못으로 인정됐습니다.

1986년 대법원 판결(85도2651)도 유사한 논리인데요. 전방 약 100미터 거리에서부터 상대 오토바이가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던 것을 발견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오토바이에게 과실이 인정됐습니다.

지난 1978년 춘천지방법원의 판결(78노362)에서는 오히려 중앙선을 침범당한 운전자가 100% 과실이 인정됐습니다. 상대 차량이 중앙선을 겨우 90cm 넘어왔는데, 핸들을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꺾어 사고가 발생한 사례입니다. 다만 이 사건은 대법원에 가서는 침범당한 운전자에게 전적으로 과실을 물을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여하튼 반대편 차가 중앙선을 침범했다고 무조건 들이받으면 자기 몸이 다칠 수 있는 것은 물론 과실비율로도 큰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게해주는 사건입니다. 신현범 변호사(법무법인 율우, 손해보험협회 과실비율분쟁심의위원회 심의위원)는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 과실 비율을 따지는 것보다는 사고 발생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교통 규정을 준수하면서 서행과 일시정지, 양보 운전을 생활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빙판길·급회전구간 주의의무 안 지키면 …중앙선 침범당해도 과실 생겨
지난 2001년 대법원 판결(2000다67464)에서는 평소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교통법규를 어긴 탓에 중앙선을 침범당한 트랙터 운전자의 과실이 인정됐습니다. 도로가 결빙됐을 때에는 제한속도가 35km/h로 낮아지는데, 이를 30km/h나 초과했기 때문이죠. 또한 트랙터는 2차선이 지정차로인데 1차선으로 달리다 사고가 난 것도 과실에 포함됐습니다.

도로교통법의 중앙선 침범금지 조항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침범’하는 때에 한해 적용되는 점도 중요한데요.

1981년 대법원 판결(80다2569)에는 불가피하게 중앙선을 침범한 것이 일정부분 인정되는 경우가 소개돼있습니다. 산과 낭떠러지 사이에 있어 도로 양쪽으로 피할 곳도 없고, 약 100도 각도로 꺾이는 비탈길에서 벌어진 중앙선 침범사고인데요.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사고구간에서) 반대방향 차량이 올라오는지 식별할 수 없어서 함부로 중앙선을 침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런 경우를 예상해 곡각지점을 회전할 때에는 경음기를 울려 반대편 차량의 운전자에게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며 침범당한 차량의 과실이 인정됐습니다.

현행 도로교통법(제31조)에도 도로가 구부러지고 좌우를 확인할 수 없거나 가파른 비탈길의 내리막에 진입할 때는 서행 또는 일시정지할 것이 명기돼 있습니다. 이런 구간을 지날 때는 혹시나 반대편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을지 주의하면서 운행해야 억울한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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