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주석궁의 네 번째 주인 준비하는 김주애
김정은의 10세 딸 김주애 띄우기 포석인 듯
(시사저널=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북한이 최고권력자 김정은의 딸 김주애를 공개한 지 1년 되는 시점에 후계자 지명을 염두에 둔 듯한 움직임을 벌이고 있다. 당초 10세 정도로 추정되는 김주애의 등장을 권력 승계 문제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건 무리라던 우리 정부 안팎에서도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 평양 권력 내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1월초 상무회의를 개최해 11월18일을 '미사일공업절'로 제정했다. 지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서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올린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게 북한 관영매체들의 11월5일자 보도다. 조선중앙통신이 "우리식 국방 발전의 성스러운 여정에 특기할 대사변이 이룩된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서도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북 정보 당국은 미사일공업절 자체보다 북한 권력의 후계 문제와 관련됐을 가능성에 더 주목한다. 김정은이 당시 순안공항에 딸 김주애를 동행해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발사 장면을 지켜봤다는 점에서다. 김주애는 이때 처음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최고지도자의 가족 사항을 노출하지 않던 관례를 깬 이례적 조치의 배경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김주애 데뷔한 11월18일을 '미사일공업절'로
특히 김주애가 북한 4대 세습의 후계자가 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북한 선전매체들이 그를 "사랑하는 자제분"이란 표현을 써가며 소개한 데 이어 '존귀하신'이나 '존경하는' 등의 수식어가 동원됐고, 노동당과 군부의 고위 간부들이 최고지도자의 딸을 극진하게 예우하는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일성광장에서 벌어진 군사 퍼레이드 때는 주석단이라 불리는 단상의 정중앙을 차지하기도 했다.
물론 반론도 적지 않았다. 김주애의 나이가 10세 안팎으로 너무 어린 데다 딸이란 점도 지적됐다. 아들이 왕권을 넘겨받는 장자승계 원칙이 북한 권력 내부에서도 지켜져 왔다는 점에서 굳이 어린 딸을 후계자로 내세울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북한은 '후계자론'에서 여성도 수령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기는 하다.
김정일은 32세이던 1974년 2월 노동당 중앙위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내정됐으며,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공식 추대됐다. 또 김정은의 경우 26세이던 2010년 10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후계 지위에 올랐고, 이듬해 12월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으로 최고권력을 거머쥐었다. 올해 김정은의 나이가 39세에 불과한 상황에서 굳이 권력 누수를 부를 수 있는 후계 문제를, 그것도 어린 딸을 대상으로 조기에 공론화할 가능성은 작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등장 1년 동안 20차례 가까운 공개활동을 하면서 김정은의 통치에 관여하는 폭을 넓혀 왔다는 점에서 김주애를 보는 우리 정부 당국의 시각에도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 보고 등을 통해 "후계 문제와 연관 짓는 건 무리"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최근 들어 정부 고위 당국자의 입을 통해 결이 다른 듯한 발언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후계로 보긴 무리"라던 정부도 기류 변화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11월6일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주애가 공개 석상에 나온 게 16차례 정도인데 이는 결국 세습을 하겠다는 의지를 김정은이 대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얘기다. 김 장관의 언급은 정부 대북 부처와 국정원이 다소 신중한 입장에서 김주애의 행보를 판단해온 기류에 변화가 생긴 것이란 점에서 이목을 집중시킨다. 고위 정부 당국자가 처음으로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김주애의 나이가 10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을 의식한 듯한 특이한 움직임을 드러냈다. 평양 외국문출판사는 최근 새로 발간한 화보집 '전승을 안아오신 위대한 영장'에 김일성이 내각 수상 겸 군 최고사령관이던 1952년 6월 아들 김정일을 데리고 전투기 조종석을 살펴보는 장면을 실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소련이 제공한 미그-15기를 김일성 부자가 둘러보는 모습인데, '1942년 백두산 출생'(실제로는 한 해 전 소련군 대위였던 김일성의 브야츠크 병영에서 태어남)이란 북한 주장을 고려하면 김정일의 당시 나이가 딱 10세다. 북한이 그동안 공개하지 않던 사진을 실은 건 '김정일도 10세 나이에 수령인 아버지를 따라다녔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지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핵과 미사일 도발에 몰두하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자초했다. 코로나19 사태 등이 겹치며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적 어려움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남조선 것 받지 말라"는 등의 지시를 내려 대북 지원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 자칫 이런 사실이 주민들에게 소상히 알려질 경우 주민들의 불만이 김정은에 대한 반발과 체제 이반으로 번질 수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김정은은 ICBM 발사를 포함한 도발의 명분을 세우는 데 집중해 왔다. 지난해 화성-17형 발사장에 딸을 데리고 나옴으로써 미사일 발사가 미래세대를 지키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지금 세대들이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주애의 등장은 바로 미래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시키려는 이미지 전략 차원이라 할 수 있다.
다음 달이면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12년을 채우게 된다. 그는 최고지도자에 오른 직후 첫 공개 연설을 통해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세습권력의 유지를 위한 폭압적 통치는 북한 체제를 국제사회와 고립된 갈라파고스로 만들었다. 할아버지 김일성 때부터 약속한 '이밥에 고깃국, 기와집에 비단옷'이라는 약속은 언제 지켜질 수 있을지 요원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김정은의 머릿속은 패밀리 비즈니스로 변질된 북한 4대 세습통치의 밑그림 그리기로 부산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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