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올인한다던 손정의 회장은 왜 실패하고 있나[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3. 11.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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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워크가 6일 공식적으로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위워크의 화려한 몰락기는 이미 전해드렸는데요(딥다이브 위워크 편 참조). 위워크를 이야기할 때 자동으로 같이 거론되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손 마사요시)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는 그 엄청난 스케일만큼이나 남다른 투자 실패 리스트로 유명합니다. 위워크는 그 실패 중에서도 정점이라 할 수 있죠. 위워크 파산을 계기로 소프트뱅크의 과거 투자 기록을 들여다봤습니다. 손정의 회장은 왜 실패했는지도 살펴보시죠.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일찌감치 ‘AI 시대가 온다’며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 동아일보DB
*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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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워크 투자는 인생의 오점”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9일 상반기(4~9월)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적자 규모가 무려 1조4087억엔(약 12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90억엔)보다 엄청나게 불어났는데요. 자회사 ARM 상장으로 회계기준이 바뀐 영향이 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사업은 9월 말 기준으로 총 누적 투자손실 규모가 73억 달러(약 9조6000억원)에 달합니다. 그동안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은 총 475곳. 이 중 74%인 354개 사가 투자시점보다 기업가치가 하락했죠.

언론의 관심은 위워크 파산으로 소프트뱅크그룹이 날리게 될 돈이 총 얼마나 되느냐에 쏠렸는데요. 고코 요코미츠 최고재무책임자(CIO)는 주식과 부채를 합친 위워크 투자액이 143억 달러(약 18조8000억원)라고 밝혔습니다. 이 손실의 상당 부분을 이미 회계에 반영했고, 나머지는 이번 분기(10~12월)에 모두 반영할 거라고 합니다.

이미 손정의 회장은 지난 6월 주주총회에서 위워크 투자가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말했죠. “일부 임직원의 충고가 여러 번 있었지만, 위워크에 많은 돈을 쏟아 버렸다”며 투자 실패 책임이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밝혔는데요.

손정의 회장은 뻔뻔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위워크 창업자 아담 노이먼의 비전을 보고 위워크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시장 분석 보고서보다는 자신의 직감을 믿는 그의 대담하면서도 순진한 투자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이죠. 게다가 위워크가 2019년 IPO에 실패한 뒤에도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돈을 더 집어넣었죠.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됐습니다.

손 회장이 투자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워낙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인데요. 투자자로서 손정의 회장이 왜 실패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좀 과거로 돌아가야 합니다. 20여년 전 그의 첫 번째 대실패 시기로 말이죠.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누적 손익 추이. 2020년 말~2021년 초 기술주 주가 급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듯했지만, 지난해 이를 모두 잃고 적자에 빠졌다. 소프트뱅크그룹 실적 자료

유례없는 실패와 컴백의 역사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잃은 사람’.
2000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런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닷컴 버블로 그가 1년 동안 잃은 금액이 무려 700억 달러에 달했기 때문이죠.

이에 앞서 소프트뱅크는 1995년 검색포털 야후에 투자해 대박을 냈죠. 이어 온라인 증권거래회사 이트레이드(E-Trade), IT 미디어 지디넷(ZDNet), 미국 온라인 슈퍼마켓 웹밴(Webvan)을 포함해 800개에 달하는 스타트업 지분을 사 모았는데요. 덕분에 기술주 버블이 절정이었던 1999년, 잠시나마(3일) 손정의 회장은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손 회장은 “그땐 내 개인 순 자산이 매주 100억 달러씩 늘어났다”고 회고했는데요. 그해 말,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2000년 3월 소프트뱅크 주가는 6개월 전의 100분의 1로 폭락합니다. 시가총액의 99%가 증발한 거죠. 손 회장은 “거의 파산할 뻔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 따위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손정의를 잘 아는 사람은 그가 타인에 대한 섬뜩할 정도로 무관심하다고 지적하죠. 일종의 소시오패스 성향인데요. 그래서인지 그는 과거의 실패는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능숙합니다.

폭망의 2000년에 그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습니다. 중국 알리바바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해 최대주주가 된 겁니다. 당시 알리바바는 설립한 지 불과 1년 된 직원 20여 명짜리 회사였죠. 손 회장은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만난 지 6분 만에 투자를 결정합니다. 사업계획도, 수익성도 없어 보였지만 “그의 강렬한 눈빛”을 보고 투자했다고 설명하죠.

이 투자로 그는 이전의 실패를 한 방에 만회합니다. 2014년 알리바바가 뉴욕증시에 상장하자 소프트뱅크의 보유지분 가치가 600억 달러로 불어났죠. 전 세계가 ‘알리바바의 기적’이라며 손정의 회장에 열광합니다.

2000년 손을 맞잡은 손정의 회장과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이는 손정의 회장 인생의 가장 성공적인 투자로 남았다. 소프트뱅크그룹

비전펀드라는 원대한 비전

이런 성공에 안주하면 손정의가 아닙니다. 만 60세가 되면 은퇴한다던 계획도 취소하고 원대한 구상을 향해 나아가는데요. 세계 최대의 벤처캐피털인 비전펀드(Vision Fund)를 2017년 출범시킵니다. 비전펀드는 규모가 무려 1000억 달러에 달해 투자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동시대 다른 펀드보다 30배나 큰,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으니까요.

당초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 1호의 규모를 300억 달러로 잡았습니다. 하지만 손 회장은 중동에 프리젠테이션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목표금액을 1000억 달러로 바꿨죠. “인생은 너무 짧아서 작게 생각할 수 없어”라는 이유였는데요.

그의 터무니없고 야심 찬 목표는 통했습니다. 손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45분 동안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45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합니다. ‘1분당 10억 달러’ 짜리 딜이었죠. 사우디뿐 아니라 애플과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까지 합세하면서 비전펀드 1호는 목표금액을 가뿐히 달성합니다.

손 회장은 비전펀드 출범부터 줄곧 “우리는 한 가지 테마에 집중한다.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AI)”이라고 강조합니다. 기술의 진보로 AI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곧 올 거라고 봤기 때문인데요.

이를 위해 그가 제시한 투자철학이 이른바 ‘AI 군(群) 전략’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중 AI라는 공통의 테마로 엮을 수 있는 최고의 혁신기업만 골라 투자해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개념이죠. 어떤가요. 꽤 괜찮은 전략처럼 보이지 않나요? 과연 오긴 올까 싶었던 AI시대가 이제 성큼 다가오고 있는 걸 보면, 그가 미래를 한발 앞서 내다본 셈입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AI를 열심히 외치고도 손 회장은 지금 실패를 맛보고 있을까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 중 상장사 50곳의 로고(9월 말 기준). 비전펀드1, 2호 모두 위워크에 투자했다. 소프트뱅크그룹

로봇피자와 개 우버의 실패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AI 군 전략이 통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AI나 기술혁신과는 거리가 먼 기업들에 투자금을 낭비했기 때문이죠.

손정의 회장에게 엄청난 액수를 모으는 건 꽤 쉬운 일이었지만 이를 관리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 관리 인력을 수백명으로 확 늘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펀드를 어떻게 운용해나갈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합의된 방향은 없었죠. 결국 의사결정자는 단 한명, 손 회장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야후의 제리 양과 알리바바 마윈의 재능을 알아본 놀라운 직감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그 감이 늘 맞을 순 없죠. 직원들은 시장분석 보고서를 만들어 올렸지만 실제 투자 결정은 손 회장의 직감에 의해 좌우됐습니다. 설득력 있는 기업가들은 그를 만나자마자 마음을 사로잡아 수억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곤 했죠. 손 회장 스스로 밝힌 대로 그는 ‘미친놈(crazy guy)’에 투자하길 좋아합니다.

그 결과 뭐가 혁신인지 모르겠는 스타트업들이 투자 리스트에 대거 이름을 올립니다. 그 중 대표적인 기업 몇 곳만 소개해드리자면.

줌 피자(Zume Pizza)=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피자 브랜드. AI와 빅데이터를 이용해 로봇이 1분에 372개의 피자를 구워내서 4분 30초 안에 갓 구운 피자를 배달해준다는 컨셉이다. 2018년 소프트뱅크에서 3억75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2년 뒤인 2020년 직원 절반을 해고하고 피자 사업을 접었다.

브랜드리스(Brandless)=식품이나 미용용품 같은 자체브랜드 제품을 저렴하게(3달러) 판매하는 미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2018년 소프트뱅크로부터 2억4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2020년 폐업 뒤 다른 곳에 인수됐다.

카테라(Katerra)=실리콘밸리 기반의 건설 스타트업. IT 기술을 활용해 모듈러 방식으로 아파트를 지어 생산성을 높이는 걸 목표로 했다. 2018년 소프트뱅크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10억 달러를 투자금으로 받았다. 2021년 파산했다.

와그(Wag)=LA에 본사를 둔 주문형 강아지 산책 서비스 기업. 모바일 앱을 통해 개 산책이나 애완동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전문가를 찾아준다. ‘개를 위한 우버’로 불린다. 2018년 소프트뱅크로부터 3억 달러를 유치했다. 이후 소프트뱅크는 투자 손실을 감수하고 지분 전체를 회사 측에 다시 매각했다.

물론 아직 운영 중이고, 증시에 상장까지 한 기업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주택담보대출 기업 베터(Better, 5억 달러 투자), 스마트 유리기업 뷰(View, 11억 달러 투자)처럼 상장 후 주가가 형편없이 떨어진 경우도 꽤 있죠.

2018년 손정의 회장의 발표 모습. 자신의 ‘AI 군 전략’을 설명하며 위워크를 주요 사례로 소개했다. 위워크가 고객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부동산, 건설, 식품, 뷰티, 운송 같은 분야의 기업도 AI를 이용해 묶으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보고 비전펀드를 통해 광범위한 투자를 진행했다. 소프트뱅크그룹 영상 화면 캡처

이에야스를 꿈꾸는 손정의

소프트뱅크의 실제 투자 방식은 ‘AI 군 전략’보다는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 전략에 가까웠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격전(Blitzkrieg) 전술에서 따온 개념인데요.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 스타트업 규모를 최대한 빨리 키우는 방식이죠. 초기 손실을 감수해서라도 일단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면, 그 뒤엔 승자독식을 통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인데요.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의 성장이 이런 블리츠스케일링 성공사례로 설명됩니다.

달리 보면 사실상 ‘합법적인 독점’을 추구하는 셈인데요. 문제는 이 방식이 실제 비즈니스 모델이 탄탄한 기술회사에만 통한다는 겁니다. 마진이 낮은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기술회사로 포장한 경우라면, 이렇게 초기에 자본을 쏟아부어 덩치를 키운다 해도 돈을 벌 수 없겠죠. 바로 이 부분에서 왜 손정의 회장의 투자 중 많은 부분(위워크 포함)이 실패로 끝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애초에 그것들은 AI 기술 혁신과는 거리가 먼, 돈이 안 되는 사업이었습니다.

소프트뱅크는 선택된 기업들에 엄청난 투자금을 쏟아부었죠. 손 회장은 자신이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기업가에겐 요구하는 투자금의 두배, 세배를 제공했습니다. 2022년 비전펀드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뒤 손 회장은 “나 자신이 부끄럽다”면서 “가치평가에 있어 일종의 거품 속에 있었다”고 말했는데요. 사실 그 거품을 만든 게 바로 손 회장 자신이었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10월 특별강연에서 “소프트뱅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AI를 활용하는 그룹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 회장은 프리젠테이션 실력으로 유명하죠. 그가 미래 비전에 대해 쏟아내는 스피치를 들으면 청중들이 홀딱 빠진다고 합니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초상화를 보여주면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이에야스가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막대한 군사적 손실을 입었다는 얘기와 함께 말이죠. 언뜻 보면 이에야스에 빗대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내용인데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누구입니까.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선 패배했지만 전쟁에선 승리하고 천하를 통일한 인물이죠. 손 회장은 이게 끝이 아니고 다시 도약할 거라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겁니다.

올해 들어 손정의 회장은 “10년 안에 AI 혁명을 주도하겠다”면서 다시 공격적인 AI 투자 계획을 연이어 밝히고 있습니다. 돈도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소프트뱅크그룹의 보유현금은 5조엔, 여기에 이번 ARM의 상장으로 7451억엔이 추가됐습니다. 무엇보다 ARM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죠. 지난 9월엔 이스라엘 네트워크 보안업체 카토네트웍스(Cato Networks)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AI를 잘 활용하는 그룹이 되고 싶다”는 손정의 회장. 과연 무너진 ‘AI 군 전략’을 재건해낼 수 있을까요. 미래를 알 순 없지만 그가 아주 놀라운 회복능력을 보여준 적 있는 투자자인 건 틀림없습니다. By.딥다이브

‘작게 생각하지 말라. 온 세상이 바뀔 것이다’. 손정의 회장이 비전펀드 담당 직원들에게 많이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크게 생각해야 큰 성공을 거둔다는 뜻이었을 텐데요. 그만큼 실패의 위험도 엄청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위워크 파산으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 실패가 다시 부각됩니다. 무려 143억 달러의 투자금을 날리게 됐는데요. 그는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말합니다.

-손 회장은 2000년 닷컴버블 붕괴로 나락에 떨어졌지만, 곧바로 알리바바 투자로 대박을 친 놀라운 스토리의 주인공입니다. 원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는 2017년 1000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를 출범시켜 투자업계를 놀라게 합니다.

-그는 ‘AI 군 전략’을 내세웠습니다. 최고의 AI 혁신기업을 골라 투자해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야심이었는데요. 하지만 자신의 직감을 믿고 공격적으로 투자한 것이 속속 실패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나 자신이 부끄럽다”며 반성했던 손정의 회장. 최근엔 AI 투자 재개를 선언했습니다. 그의 또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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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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