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옥 '고독한 결단' 무위로?…무력한 '소수여당' 어찌하오리까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정치 기사를 책임지는 'the300' 기자들이 여의도 국회의 톡 쏘는 뒷이야기들을 풀어드립니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9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의사진행 지연을 위한 무제한 토론)를 포기하는 '초강수'를 쓰면서까지 이 위원장 등에 대한 탄핵안을 저지했다.
이 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면 방통위는 회의 소집 최소 인원도 채우지 못한 채 기능정지 상태에 빠진다. 이 경우 YTN 매각 등 방송 관련 핵심 사안에 대한 허가가 이뤄지지 않게 된다. 다른 장관이 탄핵되면 대행할 차관이 있지만 방통위엔 없다. 윤 원내대표는 9일 본회의 산회 후 기자들과 만나 "필리버스터를 안 한다는 결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국가기관 마비 상태는 막아야 했단 것이다.
윤 원내대표의 이같은 '필리버스터 포기' 방침은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조차 직전까지 몰랐던 회심의 카드였다. 보안을 위해 김기현 대표에게만 의원총회 전 알리는 등 '첩보작전'을 폈다. 대통령실과의 교감도 없었다. 윤 원내대표는 본회의가 열린 9일 아침부터 만방으로 뛰었다. 김진표 국회의장과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오전 내내 탄핵안은 상정하지 말자고 읍소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내세워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을 본회의에 직회부한 데 이어 본회의에서 단독 의결하는 것만으로 정치적 부담이 큰데, 탄핵안까지 얹는 것은 과하다는 호소였다. 그러나 그의 읍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이 위원장 탄핵안이 법적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성토한다. 민주당은 이 위원장이 방통위를 2인 체제로 운영한 게 방통위법 위반이고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팩트체크 시스템을 점검하겠다며 KBS·MBC 등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게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논란으로 촉발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추진과 비교해도 이 위원장 탄핵안 발의는 급하게 추진된 측면이 있다. 이 장관의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9:0 만장일치로 기각됐다. 임명된 지 3개월 된 이 위원장 탄핵안도 기각될 가능성이 높단 점에서 정쟁 유발용 탄핵 카드 남발이라는 게 여당의 시선이다.
윤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 '기습 포기'로 이뤄낸 반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국회 의사국에서 9일 본회의에 보고된 이 위원장 등 탄핵안은 일사부재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리면서다.
국회법 제90조2항에 따르면 본회의에서 의제가 된 의안 철회할 때에는 본회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국민의힘은 이를 근거로 본회의를 열지 않고는 민주당 단독으로 탄핵소추안을 철회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의사국은 전날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상정되지 않고 단순히 공지된 상황이므로 '의제가 된 의안'이 아니며 따라서 본회의 동의 없이도 철회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탄핵안 철회서를 제출했고,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를 결재했다. 탄핵소추안은 보고 후 72시간이 지나기 전에 표결하지 않으면 폐기되기 때문에 민주당은 기존 탄핵안을 철회한 뒤 재발의해 다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브리핑에서 "이달 30일, 오는 12월1일 연이어 잡힌 본회의에서 탄핵 추진을 흔들림없이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크게 반발했으나 이미 탄핵안이 철회된 현실을 뒤집을 순 없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회의장이 민주당의 탄핵안 철회 건을 일방 처리해) 우리 동의권이 침해됐으므로 권한쟁의심판을 빠른 시간 안에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번 정기국회 내 동일한 내용의 탄핵안이 상정돼선 안 된다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철회 결정을 내리기 전 이미 법적 검토를 충분히 거쳤다고 한다. 단지 국회 사무처가 국회법 해석에 있어 민주당에 편향된 판단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은 10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탄핵소추에 관한 국회법 90조에 대해 "법률적 미비인지 해석의 차이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국회법 90조에 대한 특별 규정을 두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법)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윤 원내대표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소수여당'의 무력한 현실이다. 앞으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윤 원내대표는 신사협정 원칙을 지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야당의 탄핵안 발의에 대한 규탄대회를 국회의사당 밖에서 비를 맞으며 진행했다. 야당이 지키든 말든 약속을 지키겠단 의지다. 국회법도 거대야당의 폭주를 막긴 어려운 현실이다. 기댈 곳은 국민의 민심밖에 없다는 게 소수여당의 절박한 호소다.
국민의힘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를 재추진한다고 밝힌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방송 정상화를 늦추기 위한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2일 논평을 통해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킨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손준성·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민주당이 스스로 거둬드리고선 다시 발의하겠다고 한다"며 "국회법도 아랑곳하지 않은 민주당식 나쁜정치, 탄핵을 위한 온갖 꼼수를 동원하는 무도함이 도를 넘었다"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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