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하락 원흉’ ‘기울어진 운동장’ 개미 원성에 공매도 전격 금지 나섰지만…
공매도 금지 조치가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시행 첫날인 11월 6일에는 코스닥 시장에서 이차전지주를 중심으로 역대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며 매수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매 호가 5분간 효력 정지)가, 7일에는 전일 대비 과도한 하락폭으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공매도 금지 조치는 11월 5일 금융당국의 전격적인 발표 이후 시행에 들어갔으나 시장 반응은 엇갈린다. 그동안 공매도에 대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불만을 표해온 개인투자자는 환영하는 반면, 전문가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매도는 향후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실제로 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되사들여(쇼트커버링) 빌린 주식을 갚음으로써 이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하지만 주가가 내려가야 돈을 버는 특성 탓에 그동안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기관과 외국인이 있지도 않은 주식을 먼저 팔고 나중에 빌리는 식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일삼았으며, 고의로 주가를 끌어내려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원성을 사왔다
형평성에 어긋난 운영 방식이 문제
금융감독원이 10월 중순 글로벌 투자은행(IB) BNP파리바·HSBC의 560억 원대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한 것이 개인투자자를 하나로 응집하는 도화선이 됐다. 개인투자자들이 국민동의청원에 '증권시장의 안정성 및 공정성 유지를 위한 공매도 제도 개선에 관한 청원'을 올려 공매도 금지 요구에 나선 것이다. 이후 이 청원은 5만 명 이상 동의를 얻으면서 국회 정무위원회에 회부돼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매도를 3~6개월간 금지하고 제도를 개선할 것을 주문한 상황이었다.공매도가 한국에서만 유독 원성을 사온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 운영 방식 때문이다. 공매도 상환기간과 담보 비율 차이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지적됐다. 먼저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상환기간은 90일로 한정된 반면, 기관과 외국인은 1년이며 상호 합의하에 연장도 가능해 사실상 무기한이다. 담보 비율과 관련해서도 개인은 120%, 기관과 외국인은 105%를 적용받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담보 비율의 경우 지난해 금융당국이 120%로 하향 조정하기 전까지는 140%에 달했다.
개인투자자들은 현재 △상환기간 90일 통일 및 상환 후 1개월간 재공매도 금지 △담보 비율 130% 통일과 함께 △시장조성자(거래 부진 종목을 중심으로 매수/매도 호가를 내고, 적정 호가가 없으면 새로운 호가를 제시해 거래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주식시장이 활성화되도록 유도하는 국내외 증권사) 공매도 금지 △공매도 전산화 시스템 구축 △공매도 총량제(시총 3~5% 범위) 실시 △개인투자자 보호 TF팀 운영 △전 증권사 불법 공매도 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는 이와 관련해 "전 세계 증시에서 개인만 이렇게 역차별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며 "가장 큰 단일 시장인 미국의 경우 개인과 법인 간 차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충분히 불만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도를 손질해도 개인투자자가 공매도에 적극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식투자는 주가가 떨어지면 하락폭만큼만 손해를 보지만, 공매도는 최악의 경우 원금 이상의 손실을 볼 수 있어 자본력과 전문성을 갖춘 기관투자자의 영역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박정호 교수도 "한국에서 페널티를 주는 이유는 개인이 공매도를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경우도 공매도를 하는 개인투자자는 금융기관에 종사했던 은퇴자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갑자기 입장 바꿔 불신 키웠다는 지적
그동안 금융당국은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을 알면서도 순기능 때문에 공매도를 유지해왔다. 공매도는 뚜렷한 실적이 없는데도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 거품을 빼 제자리를 찾게 하는 역할을 하기에 세계 주요 증시는 모두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매도를 금지한 나라는 그동안 튀르키예뿐이었다. 또한 금융당국이 공매도를 유지한 데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조건에 '자유로운 공매도 허용'이 들어 있는 것도 이유가 됐다.하지만 이번에 공매도 금지라는 조치가 내려지면서 한국 증권시장의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걸림돌로 작용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리서치 기업 스마트카르마의 브라이언 프레이타스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에 "공매도 금지는 한국이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 선진국 지수로 이동할 가능성을 더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3차례 공매도 금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 외부로부터 온 불가피한 대형 악재에 따른 조처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별다른 위기 없이 단행돼 포퓰리즘 논란도 일고 있다.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매도 불평등 논란에 대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던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1400만 개인투자자의 마음을 얻고자 단기간에 태도를 바꿨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11월 5일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 "국내 증시 변동성과 IB의 대규모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향후 8개월간 공매도 불공정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관과 개인투자자 간 상환기간·담보 비율 차이 등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0여 개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런 금융당국의 설명에도 부정적 시각은 존재한다. 한 경제 전문가는 "올해 초만 해도 일부 공매도 금지 후 제도 개선을 완료하고 공매도를 풀어달라는 개인투자자들의 요구에 공매도 금지는 선진 금융 시스템 도입에 저해된다며 신속히 제도 개선 노력을 하겠다던 정부가 갑자기 공매도를 금지했고, 그 기간 제도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는 상태"라며 "블룸버그 통신이 이번 결정에 대해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강한 논평을 냈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총선을 겨냥한 정책을 순차적으로 내놓을 예정으로, 경기 김포시 서울 편입과 공매도 금지 조치의 후속 타자는 지난해 야당 반발에 무산됐던 상장주식 대주주 요건 완화(현재 1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확대)가 되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연말 양도소득세 부담 때문에 큰손들이 매물을 대량으로 내놓는 걸 막아 주가 하락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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