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한반도톡] 경선도 하고 유세도 한다…북한 선거 변화로 민심 잡나
후보 선정에 민심 반영하고 유권자와 소통 취지…중국식 복수 출마 가능할지 주목
통일부 "실질적인 선거권 보장과는 거리 있어"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북한에서 사상 처음으로 경선과 유세가 있는 공직 선거가 치러진다. 오는 26일 우리의 광역·기초의회 의원에 해당하는 '지방인민회의 대의원'을 뽑는 선거에서다.
복수의 대의원 후보자들 중에서 주민 손으로 단독 입후보자를 뽑게 했고, 최종 후보자는 유권자들을 만나서 자신의 포부와 의지를 밝힐 수 있게 한 것이다.
민주적 선거제도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노동당이 낙점한 후보자 1인에게 '묻지마' 식으로 찬성표를 몰아주던 기존 선거 방식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이 같은 선거제도 변화는 지난해 8월 열린 제14기 제27차 전원회의에서 대의원 선거법이 개정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선거가 선거법 개정 이후 처음 치러지는 대의원 선거다.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4년에 한 번씩 치러지며, 내년 초 예정인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에 해당) 대의원 선거는 5년마다 열린다.
이번 주 북한 매체 보도를 통해서야 처음 윤곽을 드러낸 개정 선거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바로 '경선' 도입이다.
대의원 후보자 선출에 앞서 선거구마다 선거자회의를 열고 복수의 후보자 중 1명을 가려내는 일종의 경선 절차를 밟는다는 것이다.
과거 선거자회의는 사실상 노동당이 정해서 내려보내는 후보자 1명에 대해 자격심사를 하는 과정에 그쳤고, 주민들은 선택지가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찬성할 수밖01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거구에서 복수의 후보를 놓고 선거자회의에 참석한 지역 주민들이 투표로 최종후보를 결정한다.
후보자가 결정되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진과 이름, 성별, 직장과 직위 등을 공개하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간단한 경력'도 밝히도록 했다. 투표권자들이 후보자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한 셈이다.
또 개정 선거법은 후보자가 선거자회의에서 결정이 되면 곧바로 1∼2일간 선거구에 나가서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유권자들과 상봉모임을 하면서 직접 자기를 소개하고 결의를 다지도록 명시했다.
선거 후보가 직접 거리로 나서 유권자들과 만나서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일종의 유세를 도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지역 선거위원회는 상봉모임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보장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러한 선거 과정은 국회의원 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도 적용될 것임을 선거법에 명시했다.
북한의 이런 선거제도 변화는 민심 장악이 중요하다는 김정은 정권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식량난 등 경제적 어려움이 여전한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조치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들어 평양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에 이어 각 지방에도 주택건설사업을 벌이는 등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주거시설 개선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 위원장이 경제현장 등을 찾아 김덕훈 내각 총리를 비롯한 간부들을 질책하고 성과가 미진한 간부는 해임이나 문책 등을 통해 책임을 물어 민심을 달래기도 한다.
이번 선거제도 개편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주민의 지지를 받을만한 대의원 후보자가 경선을 통해 가려지고, 이 후보자가 주민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함으로써 민심 이반을 막아보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고위층 출신 탈북민은 "과거에는 당에서 선정한 후보에게 무조건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며 "선거자회의라는 제한된 범위의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선거구 유권자가 직접 후보자를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의 선호가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유 보통선거가 통상적인 남쪽에서야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변화"라며 "후보자가 표를 가진 주민들을 직접 만나 소통을 하도록 한 것도 노동당의 일방적 정치에 익숙한 북한에선 큰 변화"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참정권 제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해 가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억압적 정치 시스템이 주민 참정권을 제한하는 만큼 선거제도 변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인권상황 비판을 일부라도 잠재우려고 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이런 선거 과정 변화가 본선거에 복수후보 출마가 가능한 중국식 선거제도 정도로까지 진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는다.
한 전문가는 "중국도 공산당 중심의 일당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지만 말단의 선거에는 복수의 후보가 출마한다"며 "일단 선거 예선에 복수 후보가 허용된 만큼 앞으로 본선거에서도 복수 후보가 나서는 방식으로 변화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선거제도 개선에 대해 "실질적인 주민의 선거권 보장과는 거리가 있다"며 "국제사회의 여러 (선거제도 관련) 비판과 경제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주민 민심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조치로서 약간의 제도를 변경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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