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가을이 가는 소리, 겨울이 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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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문인 구양수(1007~1072)가 쓴 '추성부(秋聲賦)'의 한 구절로서, 선비와 시동의 대화다.
'추성부도'를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기기도 한다.
죽음을 앞둔 탓인지, 자신의 처지가 무참히 쓸쓸했던 탓인지, 아니면 지나온 영광과 좌절이 한 줌 파편처럼 사무쳤던 탓인지, 늦가을 바람 소리가 그렇게 냉담했던가 보다.
추성부도 이전에 그린 그림으로, 봄을 노래한 김홍도 다른 작품,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에는 친구였던 이인문이 쓴 이런 시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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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 도광환 기자 = "이 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 것이냐?"
"별과 달이 밝게 빛나며 깨끗한 은하수도 하늘에 걸렸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나무 사이에서 소리가 납니다"
송나라 문인 구양수(1007~1072)가 쓴 '추성부(秋聲賦)'의 한 구절로서, 선비와 시동의 대화다.
가을은 소리의 계절이다. 낙엽 밟는 소리가 먼저 떠오르고, 귀뚜라미 소리도 연상되지만, 바람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겨울을 부르는 소리다.
'추성부'가 우리에게 유명해진 건 김홍도 덕분이다. 그가 말년에 추성부 전문을 쓰며 가로 2미터가 넘는 크기로 '추성부도(秋聲賦圖)'(1805)를 그렸다.
오른편 나지막한 산 아래 선비 집이 있다. 늦가을 보름달이 떴다. 달처럼 둥근 창 안에서 글을 읽던 선비는 낯선 소리에 놀라 동자를 불러 묻는다.
동자가 손짓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헛간 같은 곳이 보이고, 주변엔 작고 큰 나무들이 달빛을 받으며 서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잎은 곧 떨쳐버릴 듯하다.
가을밤 바람 소리란 낯선 것이 아니다. 선비는 그 소리가 왜 그렇게 이상했을까?
왼쪽 위로 길게 쓴 추성부 전문 마지막엔 이렇게 적혀 있다.
'을축년 동지 후 사흘 되는 날, 단구가 그리다.' (乙丑冬至後三日 丹邱寫). '단구(丹邱)'는 김홍도 호다.
김홍도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추성부도'처럼 구체적인 날짜까지 밝힌 건 드물다. 을축년은 1805년인데, 그가 죽기 얼마 전으로 추측한다. '추성부도'를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가 가을바람 소리를 듣고 구양수의 시(賦)를 읊으며 이 그림을 그린 건 생의 끝을 예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앞둔 탓인지, 자신의 처지가 무참히 쓸쓸했던 탓인지, 아니면 지나온 영광과 좌절이 한 줌 파편처럼 사무쳤던 탓인지, 늦가을 바람 소리가 그렇게 냉담했던가 보다.
김홍도는 정조가 아끼고 사랑한 화가였다. 정치에서 정약용이었다면, 예술에선 단연 김홍도였다. 그는 정조가 죽은 뒤(1800년) 집권 세력에게 배척당하며, 먹을 것마저 빈한할 정도로 비참함을 겪었다. 김홍도 몰년(沒年)은 1806년으로 추측할 뿐 정확히 모른다.
그는 다음 해 봄을 맞이했을까? 추성부도를 1805년 늦가을에 그렸으니, 이듬해까지는 생존했을 것이다.
추성부도 이전에 그린 그림으로, 봄을 노래한 김홍도 다른 작품,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에는 친구였던 이인문이 쓴 이런 시가 적혀 있다.
'안개와 비를 엮어 봄 강을 짜는구나(惹烟和雨織春江)'
이 그림 봄볕처럼 부디 다사로운 햇빛 아래서 생을 마감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하는 생각도 든다. 회한을 품은 죽음이든, 빛나든 죽음이든, 바람이며, 햇빛, 이슬, 비, 안개가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늘로 떠날 땐 오로지 고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의 체온만이 위로가 되지 않을까? 단 한 사람일지라도….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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