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 첫 도전…마지막 바퀴째 맥주 생각에 웃음이 [ESC]

정인선 2023. 11. 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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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철인의 탄생]철인의 탄생 철인3종 대회 첫 출전기
3시간13분 기록…내년엔 3시간 이내 ‘서브3’ 목표
지난 9월 강원도 삼척에서 열린 철인3종 경기에 참가한 정인선 기자가 “파이팅”을 외치며 달리기를 하고 있다. 신현두 제공

“자전거 코스가 취소될 수도 있대.”

지난 9월17일 이른 아침, 강원도 삼척 맹방해수욕장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제12회 삼척 이사부장군배 철인3종대회’에 참여하려 모인 트라이애슬릿(철인3종 선수)들이었다. “그게 아니라 마지막 업힐(언덕 오르기) 구간만 빠진대!” 누군가 외치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미 전날부터 적지 않은 양의 비와 너울성 파도 소식이 전해져, 원래는 삼척 앞바다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바다 수영 코스가 해수욕장 바로 옆 마읍천으로 바뀐 상태였다. 야외 수영은 10여년 전 한강에서 서너번 해 본 게 마지막인데 오랜만에, 그것도 바다에서 하려니 살짝 두려웠다. 그런데 강에서라면 해볼 만하다 싶었다. 대회 하루 전 마읍천에 들어가 사전 훈련을 해 보니, 일부 구간이나마 발이 땅에 닿는 깊이에서 헤엄친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이 어마어마했다.

환복 과정에서 시간 허비

그런데 자전거 코스까지 단축됐다고? 수영·자전거·달리기 세 종목 중 자전거 훈련량이 가장 부족했던 나로서는 “날씨 요정이 내 편인가?”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을 떠날 때만 해도 ‘컷오프 시간(3시간30분) 이내 완주’가 목표였지만, ‘서브 3’(3시간 이내 완주)에도 도전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이땐 몰랐다. 자전거 코스가 단축된 대신 달리기 코스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음악에 맞춘 준비 운동이 끝나고,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500여명 선수들이 3명씩 4초 간격을 두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전날보다 수온이 다소 차게 느껴졌다. 100여m쯤 갔을까, 약간 가빠진 호흡을 잠시 가다듬으려 물 속에서 일어나 보려 하니,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놀란 호흡이 더욱 꼬였다. 오른쪽을 향해 헤엄쳐 사람들이 엉킨 레인 주변을 잠시 빠져나왔다. 호흡 주기를 스트로크(팔돌림) 네번에 한번에서, 두번에 한번으로 줄여 숨을 골랐다.

내 페이스를 찾은 뒤부터는 점차 나보다 먼저 출발한 사람들을 앞서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다시 네번에 한번, 여섯번에 한번으로 호흡 주기를 늘려가며 속도를 냈다. 마읍천 하류에 삼각형 모양으로 둘러 친 750m 둘레 코스를 두바퀴 돌아 뭍으로 나오자, 시계는 출발 뒤 3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목표한 35분보다 약간 빨랐다. 벌써 큰 과제를 하나 끝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한손으로는 보온 수트를, 다른 손으로는 수경과 수모를 벗으며 바꿈터로 달려갔다. 바닥에 주저앉아 낑낑대며 보온 수트를 벗고, 미리 준비해 둔 양말과 클릿슈즈(자전거 페달에 고정할 수 있는 신발), 헬멧을 착용한 뒤 자전거를 끌고 사이클 출발선으로 달려갔다. 바꿈터를 벗어나기 직전, 고글을 쓰지 않은 걸 뒤늦게 깨닫고 되돌아가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수영과 환복에 40분가량을 썼으니, 자전거는 1시간 평균 시속 30㎞ 속도를 유지해서 35㎞를 1시간10분 안에 끊어야 서브 3을 안정적으로 이룰 수 있었다.

정인선 기자가 사이클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임희강 제공

하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될 때마다 힘이 조금씩 달려, 막판엔 속도가 시속 20㎞ 초반대로 떨어졌다. 기어비를 가볍게 해 케이던스(발 굴림 주기)를 늘렸다. 반환점 도달 전 마지막 오르막을 지나자 목이 타는 듯했다. 하지만 핸들에서 손을 놓으면 그대로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져 넘어질 것 같아 물병에 손을 뻗을 수 없었다. 목마름을 꾹 참고 반환점을 향해 쉬지 않고 페달을 굴렸다. 1시간20분 정도 지나서야 바꿈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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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가능성 창창…내년 봄대회 기대

오전 내내 비를 흩뿌리던 하늘에 햇볕이 들기 시작했다. 바꿈터에 자전거를 거치한 뒤 허겁지겁 주로로 달려나갔다. 2.5㎞가 조금 넘는 구간을 모두 네바퀴 도는 코스였다. 서브 3을 위해서는 1시간 안에 달리기를 마쳐야 했다. 평소 같으면 거뜬한 페이스다. 하지만 수영 또는 사이클 훈련을 마친 뒤 달리기까지 곧이어 하는 ‘근전환 훈련’을 소홀히 한 탓에 자신이 없었다. 첫 한바퀴를 달리는데 꼭 남의 다리처럼 무거웠다. ‘이 정도 속도라면 1㎞당 8분대밖에 안 되겠는걸?’ 불안한 마음에 시계를 내려다봤다. 1㎞당 5분40초, 내 몸은 평소 연습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잠시뿐일 머릿 속 감각 대신, 기계가 측정해 준 객관적인 몸의 수치를 믿고 다리를 계속 움직였다. 자신의 가족과 친구를 응원하려 몰려든 사람들이 “490번 파이팅!”이라며 일면식도 없는 내 배번호까지 함께 외치며 힘을 보탰고, 나도 팔을 높이 들어 “파이팅!”을 외쳤다. 마지막 한바퀴를 달릴 때는 시계가 가리키는 속도가 1㎞당 8분대까지 떨어졌지만, 곧 시원한 맥주를 들이켤 수 있단 사실에 배실배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철인3종 경기를 위한 장비들. 자전거, 수경, 수영모, 달리기용 모자, 컴프레션 양말, 경기복, 레이스 벨트, 간식, 스트레칭 도구와 요가 매트, 헬멧, 보온 수트, 사이클용 클릿 슈즈, 러닝화, 고글, 바세린 등.

결과는 총 3시간13분2초. 30∼34살 여성 참가자 11명 중 6위. 첫 참가인데다 훈련량이 성에 차지 않았던 걸 감안하면 꽤나 만족스러운 성적이었다. 하지만 수영(1.5㎞, 34분32초)이 같은 연령 그룹 상위권 선수들과 비교해 빠른 편인데도 자전거(35㎞, 1시간20분59초), 달리기(10㎞, 1시간10분25초)에서 시간을 많이 까먹은 게 못내 아쉬웠다. 또 남들은 수영에서 자전거로, 자전거에서 달리기로 ‘모드 전환’을 하는 ‘바꿈’에서 짧으면 1분가량을 쓰는데, 나는 각각 4분57초, 2분12초씩을 썼다.

눈에 띄는 아쉬운 점이 많다는 건, 노력으로 개선할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동안 외면해 온 인터벌 달리기 훈련에 당장 돌입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안장 위에서 목이 마를 때 한손을 놓고 물을 마실 사이클 실력은 갖춰야 한다는 점이 특히 분명해졌다. 이렇게 첫 대회를 가늠자 삼아 본격적인 동계 훈련에 돌입하기로 했다. 목표는 내년 봄 ‘서브 3’ 달성이다.

철인3종경기 출전을 위한 체크리스트

1. 대부분의 국내 대회 참가 신청을 위해서는 먼저 대한철인3종협회에 선수로 등록해야 한다. 4만원의 등록비를 납부하고 온라인 기초 교육을 이수하면 선수 등록이 가능하다. 대회 참가비는 십수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제각각이다.

2. 철인3종 전용 경기복과 오픈워터(야외) 수영용 보온 수트, 수경, 수모, 로드 자전거와 헬멧, 사이클 전용 물병, 러닝화 등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경기복 대신 얇은 사이클용 저지와 빕숏(어깨끈이 있는 일체형 운동복)을 입고 3종목 모두에 임하는 이들도 있다. 종목 간 전환 때 시간을 아끼려 양말을 신지 않는 선수도 적지 않다.(철인에게 발이 신발에 쓸리는 고통쯤이야!)

3. 자전거를 탈 때 페달을 미는 힘뿐 아니라 당기는 힘까지 쓰게 하는 클릿슈즈, 햇빛을 막아 줄 고글·모자, 배번호를 경기복에 옷핀으로 고정하는 시간을 줄여 줄 레이스 벨트, 쥐 예방을 위한 컴프레션(압박) 양말, 에너지 젤, 바나나, 초코바 등 열량 보충을 위한 간식, 피부가 수트에 쓸리는 걸 방지해주는 바셀린 등을 준비하면 좋다.

삼척/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스포츠팀 기자.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수영,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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