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비판받으며 자란 아이, 자기 비난 키운다
나는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처음 생각한 때는 언제였을까. 대체로 타인과 인간관계를 신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도 저 사람은 또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 기대하기보다 이번에도 얼마나 이상한 사람일지 경계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이렇게 애초에 사람과 인간관계를 잘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싸이클을 보이곤 한다(Shaver et al., 2016).
① 타인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
② 믿을만하지 않다는 결론에 부합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집
③ 이번에도 역시 실망. 부정적인 경험(+1) 추가
④ 사람과 관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신념을 강화.
다시 ①부터 반복. 이런 싸이클의 시작은 무엇일까.
비판적인 양육방식은 자기 비난을 키운다. 여러가지 계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흔히 나타나는 원인 중 하나가 ‘비판적이고 가혹한 양육자’다.
자녀의 행동을 일거수일투족 통제하려 들고 ‘너는 왜 그것밖에 안 되니?’, ‘이 멍청아’ 등의 비난을 일삼거나 또 고함을 치고 체벌을 하는 등의 폭력적인 양육방식을 보인 양육자의 자녀들이 그렇지 않은 양육자의 자녀들에 비해 우울, 불안 수준이 높고 타인에 대한 공격성 또한 높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다(Gershoff, 2013).
특히 ‘그래 다 내가 멍청한 탓이지. 나는 왜 이모양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양육자의 비난을 ‘내면화’한 사람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은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Sachs-Ericsson et al., 2006).
자신은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관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거절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저 사람은 날 사랑한 게 아니었다거나 어차피 우리 관계는 잘 안 될 거였다는 식으로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헤어지려는 방어적 행동을 더 많이 보이기도 한다(Erez & Judge, 2001).
●완벽주의는 불행의 레시피
그런데 양육자가 자녀에게 가혹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캐나다 요크대의 심리학자 오렌 애미타이 등의 연구(Amitay et al., 2008)에 의하면 완벽주의적인 양육자가 그렇지 않은 양육자에 비해 자녀에게 차갑고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는 편이라고 한다.
완벽주의는 ‘완벽’이라는 지나치게 높고 비현실적인 목표를 위해 애쓰거나 적어도 남들에게 완벽해 ‘보이려고’ 애쓰는 태도를 말한다. 완벽주의가 심할수록 좋은 성과를 내도 잘 만족하지 못하고 99가 괜찮아도 1이 괜찮지 않다면 좌절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완벽’이라는 지나치게 높은 목표 때문에 좌절을 사서하는 경향을 보인다.
애미타이의 연구에서는 이런 완벽주의 경향이 심한 양육자가 그렇지 않은 양육자에 비해 자녀를 통제하려들고 따듯하고 지지적이기보다 차갑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자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기보다 자녀가 좋은 성과를 보이면 사랑을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냉정하게 대하는 ‘조건적 사랑’을 주는 편이었다.
양육자의 차가운 태도는 다시 자녀의 자기 비난 수준과 관련을 보였다. 가혹한 양육방식을 보인 양육자의 자녀가 그렇지 않은 양육자의 자녀에 비해 스스로를 쉽게 비난하는 경향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비난해버릇하는 자녀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연인이 자신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적었고 연인을 다소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벽주의적이고 스스로에게 가혹한 부모 -> 자녀를 향한 비판적인 태도 -> 완벽주의적이고 스스로에게 가혹한 자녀 -> 자녀의 연인을 향한 낮은 신뢰와 부정적인 태도”의 싸이클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들이밀고 가혹한 사람들이 결국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가혹한 기준을 들이밀며, 그 역시 자신과 타인에게 가혹한 사람이 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향한 가혹함의 부작용이 세대를 걸쳐 전염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렸을 때부터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어른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하면서 본인들의 오해나 공격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사과했던 적이 별로 없다.
잘못을 지적하면 사과는 커녕 어른에게 말대꾸를 한다며 더 높은 공격성을 보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그렇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부모가 되는 것이 처음이라서 사실은 많이 서툴다고, 최선을 다하겠지만 여전히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인정했더라면 조금은 자신들의 실수에 덜 당황하고 미안하다고 할 줄 아는 양육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부족함과 한계를 안고 살아간다. 어른이든 아이든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나’ 또한 그러하다. 혹시 자기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날을 세우고 살아가는 편이라면 혹시 나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Amitay, O. A., Mongrain, M., & Fazaa, N. (2008). Love and control: Self-criticism in parents and daughters and perceptions of relationship partner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44, 75-85.
Erez, A., & Judge, T. A. (2001). Relationship of core self-evaluations to goal setting, motivation, and performance.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86, 1270-1279.
Flett, G. L., Blankstein, K. R., Hewitt, P. L., & Koledin, S. (1992). Components of perfectionism and procrastination in college students. Social Behavior and Personality: an international journal, 20, 85-94.
Gershoff, E. T. (2013). Spanking and child development: We know enough now to stop hitting our children. Child Development Perspectives, 7, 133–137.
Hewitt, P. L., & Flett, G. L. (1991). Perfectionism in the self and social contexts: Conceptualization, assessment, and association with psychopatholog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0, 456-470.
Sachs-Ericsson, N., Verona, E., Joiner, T., & Preacher, K. J. (2006). Parental verbal abuse and the mediating role of self-criticism in adult internalizing disorders.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93, 71-78.
Shaver, P. R., Mikulincer, M., Sahdra, B. K., & Gross, J. T. (2016). Attachment security as a foundation for kindness towards self and others. In K. W. Brown & M. R. Leary (Eds.), The Oxford handbook of hypo-egoic phenomena (p. p223-242).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Sub, A., & Prabha, C. (2003). Academic performance in relation to perfectionism, test procrastination and test anxiety of high school children. Psychological Studies, 48(3), 77-8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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