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수능 D-5...수학 킬러문항 배제, 현실성 있나

이채린 기자,김진화 기자,손인하 기자 2023. 11.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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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동아 제공

11월 16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집니다. 이번 수능이 있기까지 많은 수험생을 잠 못 이루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초고난도 문항을 가리키는 ‘킬러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한다고 정부가 발표하며 불거진 킬러문항 논란입니다. 

'수학동아'는 수능을 앞두고 수학 영역을 중심으로 킬러문항 논란을 파헤쳐 본 결과 대다수 전문가들은 다양한 이유로 ‘킬러문항은 수능에서 사라질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정부 발표부터 9월 모의평가 결과 분석까지, 킬러문항 논란 일지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제공

1. 교육부 “학교서 다루지 않은 내용,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수능을 불과 150여 일 앞둔 시점 사실상 수능 출제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됩니다. 지난 6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던 중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을 수능에서 출제하면 사교육에 무조건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뒤인 6월 19일 교육부는 잘못된 사교육계의 관행을 척결하겠다며 수능에서 초고난도 문항을 가리키는 이른바 킬러문항을 내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2. ‘입시 전략 바꿔야 하나?’ 시름 깊어진 수험생 

정부의 방침 때문에 올해 수능이 평년보다 쉽게 출제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공부 방향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수험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정부의 방향을 환영하는 입장도 있지만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출제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은 수험생의 혼란을 부추긴다’, ‘재수생이 늘어나서 오히려 사교육비를 늘린다’부터 ‘킬러문항이 도대체 무엇이냐’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러자 교육부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치 수능과 올해 6월 모의평가(모평)를 분석해 26개 문제의 킬러문항 예시를 공개했는데 수학 영역에선 9문제가 포함됐습니다.

3. 수학 영역에서 초고난도 문항 사라진 9월 모의평가

이후 실시된 2024학년도 수능 9월 모평 수학 영역의 수준은 6월 모평 대비 평이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10월 4일 발표한 9월 모평 채점 결과에 따르면 수학 영역의 경우 표준점수 최고점이 144점으로 지난해 수능 145점보다 1점, 6월 모평 151점보다 7점 하락했기 떄문입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 수학 교사 A 씨는 “초고난도 문항이 없어진 대신 킬러문항보다 한 단계 아래 난도인 ‘준킬러문항’의 개수가 늘어났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수학 영역 만점자는 지난해 수능 934명, 지난 6월 모평 648명이었는데 이번 9월 모평 2520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최상위권 변별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교육부는 “전국 의대 모집 정원이 3000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만점자) 2500명 정도 수준으로 충분히 변별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수능은 9월 모평과 유사한 문제 유형과 난도로 출제될 거란 분석이 유력합니다.

2019학년도 수능이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렵게 출제되자 입시 전략에 비상이 걸린 수험생들이 몰려 북적였던 ‘2019학년도 정시대학입학정보박람회’의 모습. 연합뉴스 제공

킬러문항 사라질 수 없다! 

킬러문항 논란은 이번에 처음 불거졌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반복되는 이슈였습니다. 전문가들은 킬러문항 등장 시기에 대해 5년, 10년 심지어 15년 전이라는 등 다양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수능에서 변별력이 나날이 중요해지며 시험에서 한두 문제는 누구나 쉽게 풀 수 없는 킬러문항이 나왔으니까요. 

수학과 국어 영역은 최상위권 대학에 지원하려면 대부분 응시과목으로 선택해야 한 데다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 영역이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이 두 영역에서 최상위권 변별력을 높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킬러문항의 난도가 점점 높아지며 사교육계에서 문제집, 강의 이름에 ‘킬러’라는 이름을 붙이고 킬러문항에 대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6년 전부터 킬러문항이 교육적인 목적에 어긋날 정도로 어렵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습니다. 정답률을 낮추기 위해 교육과정 외의 내용 또는 지나치게 꼰 문제를 출제해 사실상 비싼 사교육비를 내고 엄선한 문제를 반복해 푼 학생에게 유리해졌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2019년에는 킬러문항에 뿔난 학생과 학부모가 해당 문항이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났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킬러문항 논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논란을 곱게 보지 않는 시각도 있습니다. 오히려 과거 한 수능 출제위원의 말에 따르면 2019년 소송을 계기로 내부에서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수능에서 킬러문항을 줄이는 방향으로 출제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각에선 이번 킬러문항 논란이 정치 싸움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킬러문항 논의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의미인데 킬러문항이 사라질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이유 1. 킬러문항 정의는 제각각

킬러문항이 사라질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킬러문항의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킬러문항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문항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경기 지역 고등학교 수학 교사 B 씨는 “교사들마다도 킬러문항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면서 “킬러문항이 무엇인지 논의하지 않고 이번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의미로 말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거 수능 수학 영역 출제에 참여했던 대학 교수 C 씨는 “지나치게 계산력을 많이 요구하고 단순 반복적인 과정으로 답을 도출해내는 문항을 킬러문항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 수학 교사 D 씨는 “공교육에서 한 공부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라고 정의했습니다. 경기 지역 고등학생 E 씨는 “친구들은 대체로 수학 1, 2등급만 풀 수 있는 문제, 풀이 과정이 복잡해 오답을 유도하는 문제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사교육계에선 수학 영역 문제 중 정답률이 한 자릿수인 것은 킬러, 그 이상부터 30%대인 것은 준킬러라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최근 3년간 수능 및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의 평가 소위 킬러문항 사례. 교육부 제공

심지어 교육부가 지난 6월 26일 킬러문항 예시를 발표하며 킬러문항 기준을 밝혔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도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 특히 ‘여러 개의 수학적 개념을 결합해 과도하게 복잡한 사고 또는 고차원적인 해결 방식을 요구하는 문항’을 두고 여러 개의 수학적 개념을 결합했다고 해서 킬러문항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평 공통 22번, 미적분 30번과 2023학년도 수능 미적분 30번, 2021학년도 수능 나형 30번입니다.

한 대형학원 입시 강사 F 씨는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평 미적분 30번에 대해 “교육부는 등비수열 등 여러 가지 수열의 일반항 및 합, 등비급수 등 다수의 수학적 개념이 결합됐으니 킬러문항이라 했는데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등비급수를 알려면 당연히 등비수열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개념이 섞여 있는 문항이라고 볼 수 없고 곱셈 문제를 두고 덧셈과 곱셈의 개념이 섞여 있어 문제라고 하는 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 미적분 30번

교육부의 킬러문항 기준 중 ‘출제자가 기대하는 풀이 방법 외 다른 방법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는 “수학의 매력은 수학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풀 수 있는 것이며 그게 창의성”이라며 “출제자가 기대하는 풀이 방법과 다르다고 해서 문제 있는 풀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계산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부분은 대부분 동의했어요. 입시 강사 F 씨는 “과도하게 계산 과정이 복잡해 실수를 일으키는 문제는 학생들을 변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을 뿐 사고력을 높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이유 2. 킬러문항의 수학 교육적 가치

두 번째 이유는 교육부가 킬러문항이라고 꼽은 일부 문항이 오히려 수학 교육적으로 바람직하기 때문에 무조건 없애면 안 된다는 것 입니다. 

세종 지역 고등학교 수학 교사 G 씨는 “수학과 교육과정엔 수학의 지식을 이해하고 기능을 습득하는 것과 더불어 문제 해결, 추론, 창의 융합, 의사소통, 정보 처리, 태도 및 실천의 6가지 수학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적혀 있다”면서 “복잡한 사고 없이 단순히 유형 공부만 해서 기계적으로 푸는 것은 수학 공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교사 A 씨도 “기출 문제를 다시 풀어보며 학생들의 수학적 사고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시험에서 수학 교육적으로 좋은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 공통 22번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평 공통 22번 문항은 교육부가 ‘문제 해결 과정이 복잡한 문항’이라고 밝혔지만 한국수학교육학회 회장인 고호경 아주대 교수는 오히려 ‘훌륭한 문제’라고 평했습니다.

그는 “3차 함수의 기울기, 증가와 감소 개념을 배웠다면 충분히 풀 수 있다. 그래프를 직접 그려보며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좋은 문제”라고 분석했습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상우 책임연구원은 “교육 과정 성취기준에 명시된 사항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직접 그래프를 그려보는 수학적으로 의미 있는 행동을 하며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2022학년도 수능 미적분 29번 문항도 교육부는 ‘삼각함수, 사인법칙 및 함수의 극한이 결합돼 공교육에서 다루는 수준보다 다소 복잡한 형태의 함수를 다루고 있어 수험생의 심리적 부담을 유발할 수 있음’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고 교수에 따르면 계산 과정에서 실수할 수도 있지만 어려운 개념은 사용하지 않고 대수적인 감각이 있는 학생,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학생, 꼼꼼하게 계산하는 학생 등 저마다의 역량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좋은 문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교육 전문가들은 오히려 무조건 정답률이 낮은 킬러문항을 없앨 게 아니라 수학 교육적으로 좋지 못한 문제를 걸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2024학년도 수능 9월 모평 공통 12번 문항은 첫째항 a1을 자연수 k에 대해서 4k, 4k-1, 4k-2, 4k-3으로 나누는 기법을 이용해야 한다고 에 적혀있습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이 풀이는 대학전공 수학인 '정수론'에서 다루는 분할법을 이용한 것이며 사교육 현장에서 반복 학습하면 빠르게 기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장관이 말한 킬러문항의 의미인 ‘사교육 현장에서 문제 풀이를 반복 연습하면 유리한 문항’인 셈입니다. 

2024학년도 수능 9월 모의평가 공통 12번

물론 수학 교육적인 가치뿐 아니라 수능의 특수성을 모두 고려해서 좋은 문제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 수학 교사 H 씨는 “아무리 바람직한 문항이라도 제한된 시간 내에 풀어야 하는 수능의 특성상 지나치게 난도가 높은 문항은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이유 3. 변별력을 놓칠 수 없는 수능

킬러문항이 등장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변별력 확보. 물론 수능은 대학 교육에 필요한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수능은 철저히 수험생을 1등급에서 9등급까지 촘촘하게 나누는 등급제로 자연스레 줄을 세웁니다. 대학 서열이 공고한 우리나라에서 선발적 기능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학동아 제공

특히 수학 영역의 경우 최상위권을 변별하기 위한 척도로 인식됩니다. 2024학년도 수학 영역 응시를 선택하지 않은 수험생 비율이 5.3%로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비율은 2016학년도(6.4%) 이후 최고인데 이는 대입 수시 선발 비중(4년제 일반대 기준)이 역대 최고인 78.8%인 것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수시 합격생의 경우 수능에서 2개 영역만 일정 등급(최저학력 기준) 이상의 성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최상위권을 노리는 학생이 아닌 경우 비교적 평이한 영어나 탐구 영역에 집중하고 까다로운 수학은 애초에 포기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최상위권 학생이 지원하는 대학에선 대부분 수학 영역 점수를 요구해 최상위권 학생들은 수학 영역에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고난도 문제를 이용해 이들을 변별하는 것이 수학에서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9월 모평에서 수학 만점자가 2520명이 쏟아지며, 수학에서 변별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이사는 “9월 모평은 반수생이 포함되지 않는 시험”이라며 ‘최상위권 변별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육부의 설명과 달리 “반수생이 들어왔을 때 의대 모집 정원보다 높은 수의 수학 만점자가 나올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덧붙여 킬러문항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최상위권 학생의 변별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또한 쉽게 출제된 수능을 일컫는 ‘물수능’이 되어 버리면 계산 실수로 당락이 결정되는 ‘나쁜 시험’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교사 B 씨는 “높은 사고력을 요하는 문항이 사라지면 결국 누가 실수를 덜 했는지로 변별이 될 것이고 이는 좋지 못한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이유 4. 킬러문항 없애도 사교육비 부담 주는 문항 등장

심지어 킬러문항이 사라진다고 정부가 목표로 내건 사교육비 경감이 실현될 거라는 기대감이 높지 않습니다.

교사 A 씨는 “풍선 효과가 일어날 거라 생각한다”면서 “수학이 쉬워지면 어떻게든 변별력을 위해 국어가 어려워지거나 대학별 논구술이 어려워지면서 이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돈을 사교육에 투자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교사 D 씨도 “킬러문항이 없어지면 준킬러문항이 많아질 것이며, 덩달아 준킬러를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 수업이 늘어날 것 같다”고 걱정했습니다. 킬러문항 출제 배제로 인해 이를 대상으로 한 고액 과외는 단기적으로 줄어들더라도 사교육의 시장 규모는 쉽게 작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동아일보 제공

지금까지 킬러문항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많은 교육 전문가가 논란에 그칠 것이 아니라 “킬러문항이 논란된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없애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중엔 수능이라는 평가 과정과 수학 교육 과정에 원인이 있다는 입장이 있는데 이처럼 킬러문항 논란은 수능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인지, 바람직한 수학 교육이란 무엇인지, 공교육의 역할이 무엇인지까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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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동아 11월호, 정부 발표부터 9월 모의평가 결과 분석까지, 킬러문항 논란 일지

[이채린 기자,김진화 기자,손인하 기자 rini113@donga.com,evolution@donga.com,cown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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